[보도]그리스 위기는 과잉복지 아닌 ‘기형적 지출’ 탓

자유기업원 / 2011-08-12 / 조회: 1,395       경향신문

노인연금 ‘비대’… 노동·가족 분야는 ‘미미’

그리스가 복지 때문에 망했다는 주장은 국내 보수 정계에서 ‘자기복제’를 통해 반복돼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긴급 경제관료 회의에서 “그리스가 10년 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지금 고통받고 있다”며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의 뿌리로 복지 포퓰리즘을 지목한 것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복지를 단순히 예산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그리스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다. 2007년 기준 그리스의 복지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1.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의 평균(19.3%)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다. 1980년대부터 복지지출 규모가 꾸준히 증가했다. 지출만 보면 복지선진국이다. 하지만 그리스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복지후진국이다. 예산 크기가 아닌 지출구조의 왜곡이 심각한 탓이다.


그리스 복지지출의 대부분은 노인연금으로 쏠린다. 2006년 기준으로 노인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6%로, 유럽연합(EU) 국가 중 가장 크다. 사회보장급여에서 은퇴자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84%로 추산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면 정부 지출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이 때문에 다른 부문의 복지지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남유럽 특유의 가부장적 가족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다. 신현중 교수(한남대 행정학과)는 “그리스에서 국가는 가족 중 남성 가장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연금을 보장하면서 가족이 스스로 복지를 책임지도록 했다”면서 “연금이 과다하고, 공공부문 일자리가 많고, 여성의 취업률이 매우 낮은 것은 그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모든 노인세대에게 연금이 골고루 돌아간 것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직종은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대신 연금혜택을 받는 식으로 ‘표 거래’를 했다. 디미트리 소티로풀로스 아테네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그리스는 보편적인 연금제도를 만들면서 여러 직종이 평등하게 참여하지 못했다”면서 “(법조인, 공무원 등) 일부 힘 있는 단체들이 과실을 쓸어갔다”고 지적했다. 복지의 근간이 되는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2010년 그리스 인구 5명 중 1명이 최저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고, 이 중 22%가 연금수령자였다.

이렇듯 ‘힘 있는 노인들’에게 돈이 쏠리면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가족복지와 노동복지 지출은 간과됐다. 그리스에서 보편적 복지인 의료와 교육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문의 복지는 황무지나 다름없다. 가족과 실업자를 위해 쓰이는 복지예산은 전체 사회급여에서 3% 정도(2001년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무상교육도 사교육이 심화되면서 의미가 퇴색했다. 쓸 만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이를 얻기 위한 조기 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그리스노동연구소(INE-GSEE)는 2008년 보고서에서 그리스 노동자 중 22%가 저임금 상태라고 지적했다. 재벌기업들은 파견 형태로 직접고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줄여서 이익을 착취했다.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대학 부교수는 11일 국회 초청 간담회에서 “복지지출이 빈곤층이 아닌 각종 압력단체로 들어갔고 그 효율성도 크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산업 부문을 개발하지 못한 채, 관광업과 해운업에 의존해온 그리스 경제구조는 외부 변수에도 취약했다.

이처럼 새로운 세대를 위한 일자리와 복지를 제공하는 데 실패하면서 그리스의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에 낳는 평균 자녀 수)은 1.53명으로 OECD 평균(1.73명)에 못 미친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고령화는 심화되고, 세수가 줄어들면서 노인들에게 들어갈 정부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진다. 복지를 통해 노동시장을 활성화하고 다시 복지를 튼튼하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간 국가 대신 복지를 담당해온 그리스의 가족들도 경기침체에 따라 한계에 봉착했다. 영국 바스대학의 테오 파파도풀로스 교수는 “90년대 중반까지 그리스 가족들은 취업한 구성원이 실업자인 구성원을 부양하는 식으로 가족복지를 이뤄왔지만, 90년대 후반부터 임금 체계가 와해되고 가족의 주요자산인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루카 카첼리 그리스 노동사회보장부 장관은 지난 4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경제위기는 비효율적인 행정과 과거 정권이 무책임하게 늘려놓은 정부예산 규모 때문”이라면서 “그리스 재정지출의 큰 부분은 (공공부문) 급여와 차관 이자비용일 뿐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규모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적자를 줄이기 위한 재정개혁은 공무원 임금 및 연금을 줄이는 것이며 나머지 복지 부문 지출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부의 전이가 가장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뤄지도록 사회정책의 효율화를 꾀하는 것이 올해 정책의 우선순위”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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