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에 대한 국민 여론이 팽팽하다. 코로나 사태 이전 기본소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포퓰리즘, 심지어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는 손가락질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역병의 창궐과 더불어 비일상적인 정책이 난무하는 오늘날, 기본소득이야말로 당면한 시대적 과제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여야 막론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기본소득 시행을 도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은 절반 정도로 양분되어 있지만 조금씩 찬성 쪽으로 기울고 있는 여론을 되돌리는 것이 악법 저지의 우선적 과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진영은 기본소득에 호의적이거나 반신반의하고 있는 시민들을 어떤 방식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일단 요즘 사람들은 적어도 기본소득이 결코 공짜는 아니며 세금이나 부채로 충당된다는 사실 정도는 다소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논의에 앞서, 국가는 그 자신의 독립적인 재원이 없으며 무언가를 친절하게 베푸는 손을 위해서는 반대편에서 무언가를 폭압적으로 빼앗는 손이 필요하다는 불변의 진리가 사회적으로 합의되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폭압적 약탈’의 개념 속에는 과세와 통화팽창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 이야기할 법한 것들은 재정 여건이나 노동공급 감소 등의 문제다. 이 역시 굉장히 중요한 화두들이다. 기본소득 지지 세력에서 재정이 충분하다거나 노동공급이 감소할 이유가 없다는 등의 왜곡된 주장을 펼 때 이를 경제학적으로 잘 반박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 개개인을 설득하는 미시적인 대화에서는 이 주제들을 논하는 것이 그다지 적절치 않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경제학적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들 “그래서? 그럼 이 난국에 돈 없고 일 없는 사람들은 몽땅 굶어 죽이게?”라는 한 마디면 열뗬던 강론이 무색해지기 십상이다. 이는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어느 푸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정치경제학에서는 2+2가 4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그렇게 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친다. ‘그것은 아주 분명해서 지루하다.’ 그 후 그들은 마치 당신이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한 것처럼 투표한다.” 정말이지 작금의 상황과 이보다 더 잘 들어맞는 푸념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본소득이 단순히 ‘부작용이나 심지어는 파산의 위험성을 지닌 정책’이라는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기본소득이 아주 근본적인 오류 위에 서 있으며 애당초 목표했던 바를 조금도 이뤄낼 수 없는 백해무익의 시스템이라는 사실, 그리고 도덕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 정책의 이면 속에는 인륜적 가치들을 완전히 말살해버리는 파괴적인 속성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논하는 것일 터다. 기본소득의 근본적인 오류라 함은 대표적으로 소득과 노동을 분리시켜버린 것이다. 소득, 먹고 살만 한 여력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사회적으로 기본값이어야 하는가? 적어도 현대 민주 국가에서는 노동 없이도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어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는 단순히 자유주의적 철학 하에서 사실이 아닌 게 아니다. 진실로 어느 누군가는 고된 노동을 감내해야만 ‘소득’이라는 것을 산출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것이다. 바스티아의 말대로 인간은 결핍의 고통이나 노동의 결핍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만 한다. 기본소득은 바로 이 자명한 진리를 간과했기 때문에 잘못됐다. 아니, 사실은 기본소득 지지 세력도 그 사실을 겉으로 내뱉지 않을 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바스티아도 그 두 가지 고통을 모두 피할 한 가지 방법이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노동 산물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은, 노동의 고통은 타인에게 지우고 노동의 결과물인 소득은 자신이 취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하는 것이다. 각자가 노동하여 그 소득을 취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버리고, 모두가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되 일부 재수 없는 이들만이 과잉노동이라는 재앙을 뒤집어쓰게 되는, 그야말로 폭탄게임이 시작된다. 우리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일갈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만일 노동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소득은 내가 껴안는 사실상 노예제와도 같은 그 시스템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좌파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좌파적 사고방식이 저열하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부자증세의 효력이나 정당성 문제가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부자증세는 자본 축적을 위축시키고 고용 지출을 감소시켜 결국 저소득층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좌파적 통념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이면 좋다. 적어도 순수 자유시장에서 부자는 빈자들의 몫을 착취함으로써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최선의 봉사를 제공함으로써 부자가 된다는 논의는 기본소득의 철학적 기반을 무너뜨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삼성과 현대가 굴지의 대기업이 되어 막대한 부를 일군 동안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의 소득 수준 역시 눈부신 성장을 이룬 역사가 입증하듯, 부자들이 부자가 되는 것은 착취 때문이 아니라 자유시장에서의 자발적 거래와 혁신 덕분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실제적인 처우에 대해 논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빈자들의 극심한 빈곤을 방지, 또는 퇴치하고자 하는 목표를 앞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본소득은 그 목표를 이룩할 수 없고 진실로 빈곤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그리고 그와 더불어 ‘선량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선행’임을 강조해야 한다. 결국 빈자를 도울 수 있는 주체는 ‘사재’랄 것도 없는 국가가 아니라 개개인이다. 국가 주도의 재분배와 달리 개인의 자선은 자본을 위축시키지도 않으며 보다 효율적으로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국가의 강제적 재분배 시스템이 없는 완전한 자유시장에서는 결국 기부금이 모이지 않아 사회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소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글에서도 그런 암시를 받을 수 있다.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항상 그들 자신의 소비 능력 증가다. 정치적 요구로서 평등의 원리를 지지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득을 보다 덜 가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치 않는다.” 이 예리한 고언을 들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성찰해 볼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미제스의 말에 불쾌해하며 자신은 진정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평등을 지향했음을 확언한다면, 옳거니 좋다. 그는 자유주의 산파술에 걸려들었다. 이렇게 말해주자. “기본소득이 없어도, 국가의 강제적 재분배가 없어도 우리에겐 당신이 있다. 당신은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정도로 빈자들의 처지를 염려하는 선량한 시민이다. 그러니 그런 당신이라면 기본소득이 없어도, 국가의 재분배 시스템이 없어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당신은 미제스의 저 말이 틀렸음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선량한 시민들의 합인 이 사회는, 결국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빈곤과 맞서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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