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학문일까? 그렇지 않다는, 또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대답을 던진 경제학자들이 여럿 있었고, 올해 노벨 경제학상의 영광도 그런 연구를 해왔던 이들에게 돌아갔다. 이번 경제학상은 ‘전 지구적 빈곤에 실험적으로 접근한 공로를 기려’ 수여됐다. 어떻게 빈곤이 퇴치될 수 있을지에 관해 직접 실험을 해보는 방식으로 해결방안을 찾는 연구를 했던 것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빈곤문제의 해결에 관한 기존의 주장들이 너무 이론적인 나머지, 현실과 괴리가 있는 이야기들만 반복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프리카에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빈민들에게 모기장을 보급하고자 할 때, 무상보급하게 되면 모기장이 본래 원조의 의도와는 달리 모기장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거나 팔려 원조가 효과를 잃게 된다는 이론적인 주장이 있다. 하지만 그냥 실제로 모기장을 유상과 무상으로 각각 나누어주어 결과를 비교해보면, 이 주장은 틀렸음이 드러나게 된다. 때문에 이들은 효과적인 원조를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계산기 두드리고 있는 대신 뭐라도 일단 ‘직접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관점은 ‘실험경제학’이라고 불리는 영역의 태도 중 하나다. 사회과학은 일반적으로 ‘실험’이라는 것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정당한 실험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고려대상에 해당하는 변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통제가 되어야 하는데, 자연과학이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물질적 세계에 비해 사회과학이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인간 사회에서의 변수 통제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실험경제학은 사회과학의 학문 중 하나인 경제학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연과학과 같이 실험을 통해서 지식을 획득하는 성격도 갖도록 하려는 일련의 시도라 이야기할 수 있다. 어떤 원조가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는 직접 해보는 것으로도 (더 나아가서는,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주장은, 이러한 실험경제학적 태도에서 온 것이다.
실험경제학은 때로 주류경제학의 맹점을 지적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이론적 접근에 경도된 주류경제학의 문제를 직접적인 시도를 통한 실증적 자료들로 밝히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실험’이라는 대안적인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개나 태도는 종종 이론적 접근이 나쁘다는 이야기로 이어지곤 한다. 특히 시장에 간섭하고 빈곤층을 세금으로 돕는 일이 경제에 좋지 못하다는 수많은 이론적인 이야기를 반박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것을 좋은 무기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주제가 진보경제학의 한 부분인 것처럼 소개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정말 실험경제학이 이론적인 이야기들을 꺾을, 이론적인 이야기들과 양립할 수 없는 영역일까? 그렇지는 않다. 사실 실험경제학에서 ‘너무 이론적인 나머지 현실과 괴리되는 오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잘 살펴보면 쉬운 모형화를 위해 경제주체에 대한 가정을 성급하게 기정사실화 하고 논리를 전개한 데서 오는 것이다. 이론에 충실해서 저지르게 되는 오류가 아니라, 이론의 기반이 잘못 되어서 저지르게 되는 오류인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기장 원조 문제를 생각해보면, 모기장 무상원조가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은, 모기장 원조를 받은 사람들이 모기를 막는 일보다는 다른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모기장을 모기장으로서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설적인 이야기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모기장이 정말로 필요할 수도 있고, 어차피 모기장은 무상으로 받았으니 이것을 그물로 써서 고기를 잡거나 시장에 내다 파는 등, 다른 무언가를 더 중요시할 수도 있다.
그의 저서 인간행동(Human Action)으로 대표되는 인간관을 통해 후대의 사회과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적어도 타인으로서의 우리들이 어떤 사람의 내면 심리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과학은 인간의 내면 심리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인간의 행동을 다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주류경제학의 모형들이 저지르는 오류는 미제스가 이야기했던 ‘알 수 없기에 주어진 것으로 보아야 하는’ 내면 심리, 특히 경제학 문제에 있어서는 ‘선호체계’에 해당하는 것을 연구자가 임의로 설정하여 기정사실화 하면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이론화라는 과정이 오류 동반의 위험성을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험경제학은 이론적 접근의 맹점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특정 형태의 선호체계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발생하는 오류를 실증적으로 들춰주었을 뿐이다.
결국 이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가 갖는 진정한 의의는 인간에 대한 성급한 가정으로부터 오는 오류를 실증적인 방법으로 들춰낸 데 있는 것이다. 소위 ‘따뜻한 경제학’을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론적인 이야기 자체를 지적하며 실험(혹은 실천)만이 진정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적어도 인간의 행동과 결부된 사회과학의 문제들에 관해서는,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자연과학도 그렇지만) 이론과 경험은 모두 중요하다.
오히려 이번 수상자들의 연구는 늘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나 풀고 계산기나 두드린 뒤’ 이뤄지기 마련인 정부의 빈민 보조 정책과 재분배 정책에 큰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도움이 진정 그 효과를 거두려면 도움을 받게 될 사람들의 내면 심리에 대한 정보가 중요하고, 이번 수상자들의 ‘실험적 빈곤경제학’은 그러한 정보를, 미제스에 따르면 연역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경험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경험적인 정보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만 하는 관료들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시민단체나 운동가들이 많이 갖고 있다. ‘해봐야 알 수 있는 문제’에 관해서는 오히려 정부보다 민간이 우수하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이번 노벨 경제학상의 내용이 ‘원조나 보조 정책은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무책임한 주장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이런 주장은 신중한 이론적 사전검토의 중요성과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을 굳이 해보고선 손해를 보는 바보는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결론은 ‘많이 해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도움이 진정 도움이 되는 길은 도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온 위대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지, 우리가 나서면 문제는 해결되리라는 정부와 정치계의 오만한 오지랖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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