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내용은 Montreal Economic Institute에서의 기조 연설문을 요약 번역한 내용임*
Mario Vargas Llosa, ”My Intellectual Journey: From Marxism to Liberalism”,
October 16 ,2003
바르가스 요사의 지적 여행:
마르크스주의에서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지적여행의 시작.
1936년 페루 아레키파에서 태어난 바르가스 요사는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라틴아메리카의 '붐(boom)’ 세대를 이끌어가는 작가이자 정치인, 언론인이다. 1950년대 페루에서 10대 유년시절을 보낸 바르가스 요사는 남미가 군사 독재 정권에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부패, 인종차별, 불평등, 특권 계층 사람들의 착취가 어느 곳에나 존재하였고 어린 나이였던 그는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사상, 그리고 사회주의에 노출되었다.
바르가스 요사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었고 독서는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물론 그가 공산당이 된 계기도 독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등학교에서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는 독일의 공산주의자인 잔 발틴(Jan Valtin)의 책 한 권을 접하게 된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 좋은 세상을 위해 싸우자!’ 라는 말이 담겨있는 책을 보면서 그는 공산당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가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가족들은 그가 가톨릭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랬었지만 공산당원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산 마르코스 대학에 진학한다.
1952년, 그가 학교를 다닐 무렵 산 마르코스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 큰 충돌이 있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감옥에 가거나 추방을 당했고 두 개의 큰 좌파 세력(Apristas, El Grupo Cahude)만이 남게 되었다. 바르가스 요사는 그 중 하나인 El Grupo Cahude에 당원이 되었다. 당원의 수는 매우 적었지만 그들은 스탈린주의 자들이었고 그들과 같이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에 대하여 공부했다. 그는 폴리처의 책 <철학의 중요한 원리>를 읽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사르트르, 카뮈, 메를로-퐁티는 바르가스 요사뿐만 아니라 남미의 작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르트르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마르크스주의에 가까웠고 요사는 그런 사르트르의 책을 다 읽어 볼 정도로 팬이자 추종자였다.
마르크스주의를 떠나다.
어느 날, 그가 당원들과 함께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앙드레 지드가 쓴 책에 대하여 토론을 할 때였다. 바르가스 요사는 솔직하게 자기가 느낀 흥미로움에 대해 설명하였지만 다른 당원들은 그가 사람보다도 못한 놈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바르가스 요사는 더 이상 그들을 100퍼센트 신뢰하지 못하고 공산당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더 이상 공산당원은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좌파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고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생각을 따랐다.
민주주의로의 전향.
1962년, 모두가 알다시피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졌다. 그때의 바르가스 요사는 프랑스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었고 쿠바에 취재를 하러 가게 되었다. 처음 쿠바에 갔을 때 그 분위기는 마치 조지 오웰이 자원해서 바르셀로나에 싸우러 갔을 때와 비슷했었다. 표면적으로 사회 분위기는 결속력 있고 평등하며, 관대한 긍정적인 분위기였지만 실제로는 심각한 문제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의 위협 때문에 이 심각한 문제들은 은폐되어 있었다. 그 무렵 그는 혁명 문화적 학회에 멤버로서 초청되었다. 그는 UMAP(국가생산을 돕기 위한 군사단체)로 인해서 그 곳이 마치 강제수용소 같다고 느꼈고 이것은 바르가스 요사가 혁명 진행과정을 보면서 목격한 첫 번째 도덕과 정치적 문제였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에게 혁명의 관한 자신의 의견을 편지로 써서 보냈고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서 12시간 가량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바르가스 요사와 만난 피델 카스트로는 무자비한 학대를 정당화하려고만 하였고 그는 이 계기를 통해 사회주의와 거리를 두게 된다. 소련 방문은 바르가스 요사가 사회주의와 더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책에서 소련의 정치는 자기 일생에 가장 끔찍하고 실망스러운 정치라고 설명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평범한 사람들을 차별했고 규모도 라틴아메리카보다 훨씬 컸다. 소련사람들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살고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마치 큰 강제수용소에 사는 것 같았다. 또한 그의 책을 출판하려고 하자 소련의 출판사에서는 그의 허락 없이 책의 40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소련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찢어버리기도 했다.
자유주의에 눈을뜨다.
위 사건들을 통해 바르가스 요사는 이때까지 믿어왔던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의심하게 되었고, 이 후 그는 레몽 아롱, 장-프랑수아 르벨과 같은 평소에 알지 못 했던 작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 책들은 급진적인 사회운동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며 주로 민주주의와 전통자유주의를 수호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들은 바르가스 요사에게 민주주의 사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과거에는 동의하지 못 했던 민주주의 사상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그는 자유민주주의적 사상보다는 사회민주주의적 사상에 더 가까웠다.
그에게 자유민주주의사상의 뿌리가 내리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1960년 후반에 일어난 파디야 사건은 혁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 하였던 에베르토 파디야라는 쿠바출신의 시인이 혁명운동의 문화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게 되며 시작 되었다. 언론에서는 그를 무섭게 공격하였으며, 후에는 미국중앙정보국 요원이라는 누명이 씌워진 채 수감 되었다. 바르가스 요사는 유럽과 미국출신의 지식인들과 함께 성명서를 제출 하는 등 좌파정당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대항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전체주의, 사회주의, 국가통제주의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위해 사상적으로 싸우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바르가스 요사는 이사야 벌린의 책들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사상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특히 바르가스 요사는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관용을 통해 자신의 오류의 인정하고 타인의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 문명화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배웠고 민주주의사상은 인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사야는 이념이 현실적이고 사람들에 의해 수용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세상에 던져져 시험 받아야 하고, 잘못 된 이념이라는 것이 증명 된다면 이념이 바뀌어야지 사람의 본성을 바꾸어선 안 된다고 주장 하였다.
또한 바르가스 요사는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전통적인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하여 계속해서 이어져왔던 문명화는 다양성속에서의 공존을 통해 발전되어 왔으며,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자리잡고 있는 폭력성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다양성을 수용함으로써 경제, 정치, 문화, 종교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자유가 보장 되어야 하며, 이것은 사회를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바르가스 요사는 주장한다.
과거와 현재의 남미
그는 40년전의 남미를 현재의 남미와 비교한다. 40년전 남미에는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부정부패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남미는 급진적 사회운동,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였고 젊은 이상주의자들은 혁명가였으며, 민주주의를 이상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남미에 더 이상 군사독재정권이 남아있지 않다.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쿠바의 군사독재를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젊은이들은 쿠바의 체제가 남미의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남미에 존재하는 좌파정당들 조차도 쿠바체제를 멀리하려는 성향이 있다.
민주주의정치와 시장경제체제 도입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몇몇 남미국가들이 있다. 칠레,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 멕시코 등의 나라가 그 예이다.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있다. 우루과이는 과거 테러리스트였던 무히카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극단적 좌파정권이 집권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히카는 사유기업을 국영화하지 않았으며, 민주주의를 파괴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우루과이에는 외국인투자자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환경이 조성되어 있으며, 우루과이 현지 기업들도 현 정권에서 만족해하며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남미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민주주의정치와 자유경제를 추구하는 좌파정당들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좌파정당은 우루과이에서는 이미 실현 되었으며 남미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바르가스 요사는 남미의 미래가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물리학법칙 같은 어떠한 법칙이 있고 그 법칙에 따라 사회가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사상은 일반시민과 유권자들의 행동의 결과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본다. 바르가스 요사는 '자유주의’는 사회의 한 시점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번역: 인턴 심태완, 인턴 김명완
출처: The booklet “Mario Vargas Llosa” was published by Montreal Economic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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