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집단소송제 확대, 피해구제가 과잉규제가 되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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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자유기업원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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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옵트아웃·소급적용 등 과잉설계 재검토해야 -
국회와 법무부가 집단소송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소액·다수 피해자의 실질적 구제를 강화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피해구제라는 명분만으로 기업이 예측하기 어려운 책임까지 확대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의 조속한 도입보다 소급적용과 옵트아웃, 기존 규제와의 중첩이 가져올 부작용을 면밀히 따지는 일이다.
가장 먼저 재고해야 할 것은 소급적용이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집단소송법안 가운데에는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손해까지 적용 범위에 포함하는 내용이 제시돼 있다. 기업은 행위 당시의 법과 제도를 기준으로 보험과 충당금을 설정하고 투자와 경영을 결정한다. 사후에 만들어진 새로운 소송절차를 과거 사건에 적용하면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훼손할 수 있다.
피해자를 자동으로 소송에 포함하는 옵트아웃 방식도 지나치게 강한 장치다. 국회 논의에서는 피해자가 별도로 제외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판결의 효력이 전체 피해자에게 미치는 방식이 주요 쟁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플랫폼 사고처럼 잠재적 피해자가 수십만, 수백만 명에 이르면 작은 위자료도 막대한 배상액으로 확대될 수 있다.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하는 것과 소송 규모를 자동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손해배상의 기본은 실제 피해에 상응하는 책임이어야 한다. 기업의 위법행위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면 당연히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피해 정도와 개별 당사자의 의사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책임의 총액부터 확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집단소송은 피해회복을 쉽게 하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기업을 처벌하거나 존립을 위협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미국의 집단소송제를 한국에 그대로 대입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기업활동의 앞단에서 촘촘한 사전규제를 가하기보다 문제가 발생한 뒤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등 사후적·사법적 통제를 통해 책임을 묻는 방식이 강하게 발달해 왔다. 집단소송 역시 이러한 규제환경에서 기업의 위법행위를 사후적으로 통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한국은 이미 기업활동의 진입과 운영 과정에서 강한 사전규제가 작동하고 있다. 인허가·신고와 각종 행위규제, 감독·검사에 더해 문제가 발생하면 과징금·시정명령 등 행정제재가 뒤따르고 여러 분야에서 징벌적 손해배상도 시행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식 집단소송이라는 강력한 사후책임 수단까지 추가한다면 규제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사전규제와 사후제재를 중첩시키는 과잉규제가 될 우려가 크다.
집단소송제만 따로 떼어 놓고 소비자 보호 효과만 평가해서도 안 된다. 법무부는 하반기 업무계획에서 '소액·다수 피해자들을 위한 집단소송제 확대’를 공식 추진과제로 제시했다. 입증부담 완화와 증거제출 확대, 징벌적 손해배상, 기존 행정제재까지 여러 책임강화 수단이 동시에 작동한다면 기업이 부담하는 전체 규제비용과 위험이 어느 수준까지 높아지는지 함께 점검해야 한다.
과도한 소송위험은 중소·중견기업과 혁신기업에 더욱 치명적이다. 대기업과 달리 충분한 법무조직과 보험, 충당 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기업은 최종적인 책임이 확정되기도 전에 막대한 소송비용과 평판 훼손을 감당해야 한다. 위험이 커질수록 기업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시도하기보다 법적 위험을 회피하게 되고 그 결과는 투자와 고용, 혁신의 위축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집단소송제의 목적을 피해구제에 맞춘다면 제도 역시 그 목적에 필요한 수준으로 설계해야 한다. 법 시행 이전 사건에 대한 소급적용은 배제하고, 처음부터 광범위한 옵트아웃을 도입하기보다 소송 당사자의 참여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는 방식을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존 징벌적 손해배상과 행정제재 등과의 중복 여부도 함께 정비해야 한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과 기업에 과잉책임을 지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소비자의 권리는 두텁게 보호해야 하지만 기업의 법적 책임 역시 명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사후적 사법통제 수단만 떼어 와 한국의 촘촘한 사전규제 위에 덧붙이지 말아야 한다. 집단소송제가 피해구제의 수단을 넘어 또 하나의 과잉규제가 되지 않도록 입법의 속도보다 제도의 균형을 먼저 살펴야 한다.
2026. 8. 24.
자 유 기 업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