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야, 한 바퀴만 돌고 온나`

정석현 / 2023-11-29 / 조회: 234

내가 일하고 있는 술집은 장사가 지지리도 되지 않는다. 일을 한 지는 벌써 2년째, 적자가 아니었던 달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한 번씩 손님이 있는 거 빼곤 매번 뻘쭘하게 사장님과 단둘이 앉아있게 되는데 그때마다 듣는 말은알바야, 나가서 한 바퀴만 돌고 온나’.


여기서 한 바퀴 돌고 오라는 말은 거리에 나가 다른 술집들은 장사가 잘되는지, 길에 사람은 많은지 등 염탐 즉, 상권 파악을 하고 오라는 말이다. 2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요일별로 어떤 상황인지까지 예상될 정도지만 돌아볼 때마다왜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 오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이 구체화되어만 간다.


술집이 자리 잡은 건물들의 월세를 알아보면 1층 가게가 2층 가게보다 2배 내지 3배에 달하는 월세를 내는데 낮은 층수일수록 소비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는 심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때 자연스럽게비용-편익분석을 하게 된다. 만약 술집을 가고자 할 때 1층과 2층 같은 지리적 요건만 따진다면 합리적 소비자는 2층으로 올라오는 수고스러움에 대한 비용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가까운 1층 가게로 들어갈 것이고 지리적 이점에서 밀린 2층 가게는 1층 가게에 손님이 가득 차 2층으로 밀려나는 낙수효과만을 바래야 한다.


그렇다. 우리 가게는 2층이다.


하지만 2층이라 해서 모든 가게가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국내 수많은 맛집이 전부 1층에만 있는 건 아니듯 2층에 위치한 식당도 잘 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하다. 그런 여건을 만드는 건 시장 참여자의 자유로운 몫이며 소비자에게 지리적 약점으로 인해 느껴지는 비용을 뛰어넘는 편익을 제공해야만 한다. 한 가지 방법으론 가격을 낮추어 소비자들에게 비용보다 편익이 크다는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우선 2층 가게의 경우 1층 가게에 비해 고정비용이 낮기 때문에 총비용 측면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고, 따라서 음식의 가격을 낮추되 비슷한 퀄리티의 음식을 만들어 내어 소비자에게 훨씬 더 큰 편익을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엔 1층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가격에 괜찮은 퀄리티의 음식을 내어주며 박리다매 형식의 술집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주 소비층인 대학생들의 가격 탄력성을 고려했을 때 일반 번화가의 주 소비층보다 높은 민감도를 가짐에 따라 수요는 1층 박리다매 술집으로 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 가게는 가격이 싸지도 않다.


그럼,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실제 시장경제에선 판매하는 재화에서차별점을 가진다면 충분히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가게는 딸기 막걸리를 중점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다른 가게에선 흔히 볼 수 없어 차별성에 따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21년 통계청 주류 출고량 자료에 따르면 전체 국내 주류 출고량 중 약 80%는 소주와 맥주가 차지, 10%만이 탁주가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술을 소비하는 수요층들의 대부분은 소주와 맥주를 위주로 소비하고 막걸리의 경우 흔히비가 오는 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 주로 소비함으로써 막걸리 소비시장 자체의 크기가 매우 작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요자가 많아 계속해서 신규 수요가 창출되는 다른 술집들과 달리 막걸리를 소비하고자 하는 고정 수요층을 타깃으로 장사를 진행해 유지한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우리 가게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었다.


시장은 냉정하다. 선택에 따른 대가는 오로지 참여자의 몫이기에 각자의 결과에 직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냉정함이 시장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시장에 참가하는 순간, 우리는 동질적으로 변모하게 되고, 참여자들 간의 경쟁을 통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는 곧 성장할 끝없는 기회를 의미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도 괜찮다. 실패는 새로운 배움의 시작일 뿐이며, 시장은 그런 도전을 환영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냉정한 시장에서 마주치는 현실이고, 결국 그 안에서 더 나은 선택과 기회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시장이 냉정하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에겐 도전과 성장의 여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유롭고 열린 시장경제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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