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진된 콘서트 티켓과 300퍼센트의 프리미엄, 암표상을 위한 도발적인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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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노승후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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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가수의 연말 콘서트 예매가 시작된 지 단 1초 만에 스마트폰 화면에는 접속 대기자 5만 명이라는 절망적인 숫자가 떠올랐다. 새로고침을 누르며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결과는 당연하게도 전석 매진이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중고 거래 플랫폼을 검색하자, 정가 15만 원짜리 브이아이피석 티켓이 무려 50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수십 장씩 올라와 있었다. 이른바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전문 리셀러들의 게시글이었다. 댓글 창에는 이들을 암표상, 사회의 기생충, 범죄자라며 맹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분노가 가득했고, 나 역시 순간적으로 불공평하다는 감정에 휩싸였다. 정부가 나서서 저 악덕 상인들을 모조리 구속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어느 네티즌의 주장에 조용히 공감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경제학의 렌즈를 끼고 이 분노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매도하는 암표상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인 가격 발견 기능을 최전선에서 수행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리셀러라는 존재가 탄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의 악의적인 탐욕이 아니라, 재화의 극단적인 희소성과 인위적으로 억눌린 최초 가격 사이에 발생하는 거대한 괴리 때문이다. 15만 원이라는 정가는 기획사가 대중적인 여론과 비난을 의식해 시장의 실제 수요보다 훨씬 낮게 책정한 일종의 인위적인 가격 상한선이다. 진짜 시장 가치는 50만 원인데 가격을 15만 원으로 강제로 묶어두니, 그 35만 원의 차익을 노리고 엄청난 수요가 몰려들어 1초 만에 매진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만약 법적인 강력한 규제로 리셀 행위를 완벽하게 원천 차단한다고 가정해 보자. 겉으로는 공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티켓은 오직 운이 좋아 마우스를 빨리 클릭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된다. 정말로 그 가수의 노래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 예를 들어 평생의 소원으로 콘서트에 가고 싶어 하는 칠순의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자녀는 표를 구할 길이 아예 사라져 버린다. 운과 속도라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준이 재화를 배분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리셀 시장이 열려 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50만 원이라는 가격표는 그만큼 간절하지 않은 사람들을 시장에서 걸러내고, 그 재화에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에게 티켓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하고 객관적인 여과 장치로 작동한다. 한정된 자원이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배분된다는 시장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이 정확하게 달성되는 순간이다.
현재 정부와 기획사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단속하고 현장에서의 본인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등 암표상을 근절하겠다며 온갖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통제는 항상 끔찍한 역효과를 낳는다. 단속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거래는 더욱 깊은 음지로 숨어들고, 리셀러들은 적발될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이른바 위험 수당을 티켓 가격에 추가로 얹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암표 가격은 이전보다 훨씬 폭등하게 되며, 익명의 음지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다 보니 돈만 받고 잠적하는 사기 피해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공정이라는 선의로 포장된 탁상행정이 오히려 소비자의 금전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시장의 건전성마저 완전히 파괴하는 전형적인 규제의 역설을 낳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비판해야 할 대상은 희소한 자원의 가치를 가격으로 정직하게 환산해내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원리를 무시한 채 도덕적 잣대만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관료들의 오만함이다. 50만 원이라는 티켓 가격은 누군가에게는 부당한 폭리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소중한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비용이다. 개인의 주관적 가치가 자유롭게 충돌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공간, 그 역동적인 교환의 현장을 범죄로 규정하는 사회는 결코 유연한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없다. 암표상이라는 유령을 쫓는 소모적인 마녀사냥을 멈추고, 그들이 비추고 있는 진실한 가격의 거울을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시장경제의 자생적 질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