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풀린 가격, 시장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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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준석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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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2일,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 흔히 단통법으로 불리던 법이 11년 만에 폐지됐다. 폐지 직후 신도림 테크노마트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출고가 100만 원대 갤럭시 신제품을 10만 원대에 살 수 있고, 일부 구형 모델은 0원에 풀렸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정부가 '공정한 가격'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둔 보조금 상한이 풀리자, 시장은 며칠 만에 가격표를 다시 썼다.
단통법은 2014년 10월, 휴대폰 보조금이 매장마다 달라 '같은 폰을 누구는 공짜로, 누구는 100만 원에' 사는 정보 비대칭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다. 통신사 공시지원금은 최대 30만 원, 대리점 추가 지원금은 그 15%로 묶였다. 취지는 '모두가 같은 가격에 사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11년 뒤 '전 국민 호갱법'이라는 별명만 남기고 사라졌다. 가격을 통제하면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11년 동안 보여준 셈이다.
먼저 가격이 거꾸로 움직였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통신사 지원금을 뺀 단말기 소비자가격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41% 올랐다. 연평균 4%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1.62%의 두 배가 넘는다. 보조금 상한이 가격을 끌어내릴 것이라던 예측은 빗나갔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30만 원 넘는 지원금으로 경쟁할 길이 막혔고, 모두가 비슷한 가격을 제시하는 구조에서 굳이 출고가를 내리거나 할인을 늘릴 이유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공평하게 비싸진 시장이 됐다. 가격을 동결하자 가격을 끌어내리던 경쟁의 동력도 함께 멈춘 것이다.
다음은 소비자 보호가 기업 이익으로 흘러간 문제다. 이동통신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2014년 1조 6,108억 원에서 시행 첫해인 2015년 3조 1,690억 원으로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지원금 경쟁이 사라지면서 마케팅 비용이 줄었고, 그 차액이 통신사 이익에 쌓였다. 소비자 후생을 명분으로 도입한 규제가 소비자 부담을 기업 영업이익으로 이전시킨 셈이다. 경쟁이 사라지면 잉여는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이동한다는 시장경제의 기본 명제가 한국 통신시장에서 11년간 그대로 작동했다.
가격을 묶자 시장은 우회로를 만들었다. '성지'로 불린 신도림과 강변 테크노마트 일부 매장은 통신사 판매장려금을 불법 보조금으로 돌려 정상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값에 단말기를 팔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좌표를 공유한 일부 소비자만 혜택을 봤고, 매장을 그냥 찾은 일반 소비자는 정가에 가까운 값을 치렀다. 단통법이 없애겠다던 정보 비대칭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누르면 시장은 그 가격을 피해 갈 경로를 반드시 만든다. 음성거래는 가격 통제의 부산물이다.
폐지 1년 차인 지금, 시장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통신사들은 다시 보조금 경쟁에 들어갔고, 100만 원대 신제품을 10만 원 이하에 살 수 있는 매장이 늘고 있다. 페이백은 합법화됐고, 자급제폰과 알뜰폰, 중고폰 시장도 활기를 띠며 선택지가 넓어졌다. 물론 단통법이 풀려 했던 정보 비대칭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답은 가격 상한이 아니라 비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시장의 신호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 신호를 잘 읽을 수 있게 돕는 방향이어야 한다.
단통법 11년이 남긴 청구서는 통신비 부담만이 아니다. 공정해 보이는 가격 통제가 결과적으로 누구를 가난하게 만드는지 한 세대가 직접 겪으며 배운 시간이었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 경쟁과 혁신,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를 오가는 신호다. 그 신호를 정부가 통제하는 순간 시장 전체가 방향을 잃는다. 11년 만에 돌아온 답은 단순하다. 가격은 정치가 아니라 경쟁이 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