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비합리성과 조화를 이루는 시장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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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형준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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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일까, 감정적인 존재일까? 경제학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한정된 자원을 최적으로 사용하며,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용과 편익을 비교·분석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고찰한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고 진단하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여럿 존재한다. 우리는 때때로 불합리한 선택을 하고, 후회할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즉, 시장경제는 합리적 인간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작동하지만, 그 틀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은 완전히 이성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인간
인간이란 개념에 대해 고전 경제학에서는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모든 선택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존재라고 가정해왔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이 등장함에 따라 해당 논리는 현실과 다름이 드러났다. 실제로 인간은 제한된 정보와 사회적 압력하에서 판단 내리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장에서 원플러스원이라는 행사 문구에 현혹되어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터, 가격의 구조나 특정 문구가 인간의 판단 기준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이는 인간의 인지 편향과 프레이밍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식시장을 요동치는 인간의 감정
흔히 시장의 선행지수라 불리는 주식시장은 인간의 비이성적 행위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무대다. 만약 인간이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면, 주가가 급등할 때 매도하고 하락할 때 매수하는 전략을 취해야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평범한 투자자는 공포에 휩싸이면 황급히 매도하고, 탐욕이 몰려오면 앞다투어 매수한다. 모두가 사면 나도 사고, 모두가 팔면 나도 파는 군집행동 때문이다. 실제로 COVID-19 초기, 주식시장이 붕괴하던 시기에는 현금이 가장 안전하다는 불안감이 확산하며 주가가 급락했고, 반대로 이후에 유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시장을 다시금 과열시켰다. 결국 시장은 인간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때로는 그 감정이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기업의 꼭두각시
기업들은 인간의 비이성적 특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한정판매, 특별할인, 사전예약 이벤트 등의 마케팅 전략은 모두 인간의 손실 회피 성향을 자극한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손해 본다”라는 불안 심리가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또한, 커피 전문점의 ‘톨, 그란데, 벤티’ 같은 용량 구분은 겉보기엔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의 폭을 제공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비자가 스스로 높은 마진을 남기는 옵션을 고르도록 유도된 미끼 효과의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톨이 4,700원, 그란데가 5,400원, 벤티가 6,100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소비자는 “1,400원만 더 내면 훨씬 큰 벤티를 마실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절대적인 가격이 아니라 비교 기준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비싼 제품이 오히려 ‘조금만 더 투자하면 얻을 수 있는 합리적 선택’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결과적으로 용량이 큰 음료는 사치가 아니라 합리적인 소비로 인식되므로 소비자의 거부감은 자연스레 완화되어, 시장은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비이성적 행동을 통해 끊임없이 조정된다.
자율 조정 메커니즘
다만, 인간의 비이성적인 행위가 시장경제 체제를 붕괴시키지는 않는다. 되려 시장은 인간의 불완전한 면모를 일정 부분 보완하고, 비이성적 행동을 교정해주는 자율 조정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있다. 가령, 잘못된 판단으로 손해를 입은 개인은 그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경쟁에서 뒤처져 혁신을 선도하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자연 도태된다. 이로써 소비자는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되고, 시장은 효율성을 되찾는다. 비록 일시적인 감정과 편향이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뒤흔들 순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경제 주체만이 생존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인간의 실수와 비합리성마저 흡수해, 균형으로 회귀하는 시장의 파워를 발휘한다.
경험이 축적되어 성장하는 인간
인간은 완전히 이성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학습하여 발전을 이룩하는 존재다. 경제적 실패, 소비 후회, 투자 손실은 모두 다음 선택을 더욱 현명하게 만드는 밑바탕이 된다. 이성적이지 않았던 순간들이 누적되어, 마침내 더욱 합리적인 판단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경제 체제는 인간의 비이성까지 포용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제삼자의 규제나 인위적 통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고 선택할 자유다. 그 자유로운 선택의 축적이 시장을 유연하게 움직이고, 인간을 굳건히 성장시킨다.
불완전한 인간이 이끄는 더 나은 시장
인간은 이따금 감정에 휘둘려 충동적 소비나 비논리적 투자를 감행하며, 예측 불가능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프로세스에서 인간은 무언가를 깨우치고, 시장은 끊임없이 조정된다. 완벽한 합리성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시장경제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비이성적 특성은 시장을 더 유연하고, 더 현실적인 체제로 진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