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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육볶음의 시장경제학: 한 끼 식사 속의 가격 원리

글쓴이
권영찬 2025-12-12

대학교 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을 자주 먹는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늘 사람들로 붐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제육볶음 백반이다. 7,000원에 제육, 찌개, 쌈, 반찬이 차려진다. 고기 양도 넉넉하고 밥도 많이 주신다. 가게 사장님은 “요즘 재료비가 많이 올랐지만, 단골(학생)들이 있으니 버텨야지”라며 웃는다. 그런데 예전에 들렀던 쌈밥집에서는 같은 제육볶음이 14,000원이었다. 맛이나 양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가격은 두 배였다. 이 차이는 단순한 ‘가격의 차이’가 아니라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의 차이였다.


이 현상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인 ‘가격의 결정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노포 식당과 쌈밥집은 같은 제육볶음을 팔지만 서로 다른 시장을 대상으로 한다. 노포는 빠르고 저렴한 한 끼를 원하는 직장인•학생들을, 쌈밥집은 여유로운 식사를 즐기려는 가족이나 모임 손님을 타깃으로 한다. 다시 말해, 두 식당은 동일한 상품을 서로 다른 효용을 지닌 고객층에게 판매하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격이 달라진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시장 세분화’라고 한다.


쌈밥집의 제육볶음에는 음식의 맛뿐 아니라 분위기, 인테리어, 서비스 경험이 포함되어 있다. 소비자는 단순히 제육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주는 ‘경험’을 함께 구매한다. 이는 ‘가치 기반 가격’의 대표적 사례다. 가격은 단순히 원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도와 경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14,000원이라는 가격에는 ‘편안한 공간에서 천천히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의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격 전략은 시장에서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쌈밥집의 음식 품질이 그 가격만큼의 만족을 주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비싸기만 하다”고 판단하고 구매를 멈춘다. 그렇게 되면 손님이 줄고, 식당은 자연스럽게 가격을 조정하거나 서비스를 개선하게 된다.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반대로, 노포 식당이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유지하면 원가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게 된다. 따라서 시장은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효율적인 균형점을 형성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있다. 평일에는 7,000원짜리 백반을 먹으면서도,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14,000원짜리 쌈밥을 즐기기도 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지불의사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황적 효용의 변화’다. 인간의 경제적 합리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시간·장소·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이처럼 시장은 다양한 소비자의 선호와 선택을 반영하여 자연스럽게 가격을 조정한다. 그 과정에서 공급자는 품질과 서비스를 개선하고, 소비자는 효용에 맞는 선택을 한다. 정부나 제3자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하거나 특정 업종을 규제한다면 이러한 신호가 왜곡되고,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이 사라진다. 그러면 결국 경쟁력 있는 식당도, 저렴하고 정직한 식당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결국 시장경제는 거대한 기업이나 복잡한 금융 시스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당, 카페, 편의점 같은 공간에서도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한 접시의 제육볶음에도 수요와 공급, 효용과 선택, 그리고 가격 조정의 원리가 모두 담겨 있다.


오늘 점심, 나는 다시 7,000원짜리 제육볶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한 끼 속에는 시장의 질서와 자유, 그리고 자율 조정의 힘이 녹아 있었다. 시장경제는 멀리 있는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밥상 위에서 매일 작동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