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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중고거래에 스며들다.

글쓴이
김동석 2025-12-12

“이거 새것처럼 썼는데 그냥 버리기 아깝더라고요.”


며칠 전 동네 커뮤니티 앱을 통해 책상 하나를 팔았다. 구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아까웠지만 이사를 앞두고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글을 올린 지 30분 만에 거래가 성사됐다. 직거래로 만난 구매자는 “새 책상 사려면 너무 비싸서요”라며 웃었고 우리는 거래 후 서로 “좋은 거래였어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짧은 경험 속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경제적 흐름, 즉 중고거래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거에는 헌 물건을 사고판다는 행위에 다소 부정적인 시선이 따랐지만 이제 중고거래는 물건의 가치를 아는 합리적 소비의 대명사가 되었다.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며 MZ세대뿐 아니라 40‧50대까지 주력 이용자로 급증하고 있다. '나눔’, '리셀’, '제로웨이스트’ 같은 키워드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것이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중고거래의 확산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시장경제의 자율적 조정 기능이 생활 전반으로 확장되는 과정이다. 기업이 생산하고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구매하는 과거 구조에서 벗어나 이제 소비자들이 스스로 '거래 주체'가 되어 물건의 수명과 가치를 재정의한다. 이는 시장의 효율성과 자율성이 개인의 작은 선택 속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경제학적으로 중고거래는 자원의 재배분 메커니즘을 가장 잘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효용이 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만족을 주는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 개인이 물건을 계속 소유할수록 그 물건에서 얻는 추가적인 만족(한계효용)은 점차 줄어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 물건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이전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총효용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이러한 개별 거래에서 작동한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정되며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선택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연결된다.


기술과 신뢰가 메운 '시장 실패’의 틈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경제학적 개념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과거 중고거래가 활성화되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물건의 실제 상태나 판매자에 대한 신뢰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시장 실패'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의 플랫폼들은 후기, 평점, 실시간 채팅, 안전결제 시스템 등을 통해 정보의 투명성을 극적으로 높였다. 기술과 신뢰 시스템이 과거 경제학자들이 고민했던 시장 실패의 틈을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중고거래는 물건의 소유권이 순환하며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낭비를 줄인다. 이는 단순한 개인 간 거래를 넘어, 공유경제와 지속 가능한 소비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의 '소유 중심 경제'에서 '접근 중심 경제'로의 전환이 생활 속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기 거래, 리셀 투기, 허위 매물 등의 부작용은 여전히 시장의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플랫폼의 신고제도나 거래 이력 공개 등은 자율과 책임의 균형을 이루며 시장의 자정 작용으로 기능한다. 이는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보다 더 유연하고, 이용자 스스로 신뢰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순환경제와 시장경제의 교차점


이제 중고거래는 더 이상 '헌 물건 거래'가 아니라 '순환경제의 실천'이자 '시장경제의 생활화'다. 스마트폰 속 거래 앱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은 여전히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다.
각자가 자율적으로 거래하고, 책임 있게 선택하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때 우리는 비로소 경제학 교과서에서 읽던 이상적인 시장의 모습을 일상 속에서 목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