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밥상물가의 원인과 한국 농업의 구조적 문제

이진규 / 2024-05-10 / 조회: 466

사과 가격이 시쳇말로 미쳤다. 실제로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4년 3월 기준 사과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88%, 전월 대비 7.8% 증가했다. 만약 누군가가 사과를 2023년 3월 가격에 선물 계약한 뒤 지금 시점에 시장에 팔았다면 88%의 수익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사과 유통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섣불리 결론 짓고 이들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 요지는 산지 가격에 비해 소비자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니 중간에서 폭리를 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밝히면 이러한 주장은 한국 농업이 처한 구조적 문제들을 간과한 채 무고한 죄인을 만들어 심판하는 원님 재판에 불과하다.


먼저 밥상물가에 영향을 준 외부요인은 금리와 환율이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3.5%인데 반해 미국 5.5~5.75%, EU 4.5%, 영국 5.25%로 훨씬 높다. 이러한 금리 차는 원화가치 하락을 수반한다. 그리고 해외 농산물은 대부분 달러로 거래된다. 그러므로 한국 소비자들은 기존 대비 비싼 가격에 수입 농산물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쌀 제외 거의 모든 식량을 수입하므로 세계경제 악화에 따라 수입액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현재 밥상물가를 설명할 수 없다. 필자는 외부 요인보다 내부 요인이 앞으로 물가 상승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이유는 크게 4가지다.


첫째, 한국의 식품시장은 과점시장이다. 북미나 유럽 단일시장에 비해 한국은 내수가 작고 고립된 시장이다. 그래서 해외 공급자 입장에서 한국 시장은 경제성이 낮고 진입장벽이 높다. 이 빈 자리를 국내 농가가 경쟁 없이 차지한다. 이처럼 공급이 제한되고 수요는 일정한 과점시장에서, 농산물 가격은 공급자에 의해 정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 한국 농업은 규모의 불경제 상태다. 한국 농업은 영세한 자영농들의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이루어진다. 해외 기업형 농업은 한 곳에서 기계를 활용해 단일 작물을 대량생산해 생산 및 유통원가를 절감한다. 반면 한국 농업은 산발적인 곳에서 수작업을 통해 여러 작물을 소량 생산한다. 그리고 그것을 소비지에 유통하려면 집하, 도매, 소매를 수차례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통구조가 복잡해지고 비용이 상승한다. 즉, 높은 생산원가와 유통비는 유통업자들의 폭리가 아니라 낮은 생산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셋째, 한국 농업은 생산 요소의 대외 의존성이 심각하게 높다. 현재 한국은 쌀 외에 모든 농산물을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농기계는 존 디어, CNH 등에서 구매하고, 종자 역시 해외 지적재산권에 의존한다. 최근에는 청년들의 농업 기피로 인력마저 외국인으로 조달하고 있다. 이처럼 농업의 비용구조를 좌우하는 생산요소들을 외부에 의존한다면, 그들의 비용 상승이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최종 소비자에게 그 이상으로 전가된다. 현재 인플레이션이 상기 생산요소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주었기에 밥상 물가는 그것들의 상승 분 이상으로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농산물 시장 경쟁을 반대하는 이권단체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대표적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만약 이 법안이 가결된다면 쌀 농가는 시장 가격에 상관없이 쌀을 팔아 소득을 보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쌀 공급과잉, 다른 작물의 공급 감소 등 많은 부작용이 동반될 것이다. 비단 쌀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정부는 WTO의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 요구를 농가안정과 식량주권의 이유로 지금도 보류하고 있다. 물론 식량주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식량주권을 볼모로 일부 농업인과 정치권이 농산물시장을 과점시장으로 만들고 사회적 잉여를 착복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나므로 개선이 필요하다.


정리하면 해외 농산물의 인위적 공급 제한, 국내 농산물의 낮은 생산성, 농업 공급망의 외부 의존성이 현재 밥상 물가를 끌어 올리고 있다. 혹자는 정부가 물가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책은 임시방편이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정부나 기업이 나선다고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상기한 문제들을 숙의하고 사회적으로 합의해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비록 어려울지라도 그것이 지금의 식량 문제를 바로잡는 정도(正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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