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과잉이 없다

최승노 / 2023-09-08 / 조회: 3,857

우리 사회는 절제와 중용을 미덕으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의미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생활신조로 삼은 이들이 많다. 그런 만큼 '과잉’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자본 과잉’은 어떨까. '자본’과 '과잉’을 상극으로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옆집에 차가 다섯 대 있다고 하자. “아니, 왜 저렇게 낭비를 해, 한 집에 차가 왜 다섯 대나 필요해. 과시욕 쩌네”라며 한마디씩 할 것이다. 차를 여러 대 구입할 능력이 있어 용도에 맞춰 이용하는 걸 과잉이라고 흉볼 이유는 없다. 


옆집에 차가 많다고 험담하는 사람은 “서울에 지하철 노선이 왜 10개 씩이나 필요해?”라는 생각도 하기 마련이다. 2000만 명이 이용하는 데 20개 노선을 만들면 어떤가. 중국 베이징은 순환도로가 7환까지 설치되어 있다. “서울은 내부순환도로와 외부순환도로 두 개인데 베이징은 왜 일곱 개나 돼? 낭비 아냐?”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일곱 개의 순환도로가 다 역할이 있기 때문에 만들었을 테니까.


“자본은 이 정도면 됐어. 자본이 과잉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은 불필요한 단정이다. 자본을 가진 쪽이 알아서 수요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투여된다는 건 그만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소요소에 자본 과잉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들여 발전하면 좋을 듯한데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살려야 하는데 여기에 뭐가 들어서면 안돼”, “돈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것까지 넘보다니”, “대기업이 다 해먹으려고 하네”라는 말 속에는 '자본이 이런 역할까지 파고 들면 안 된다’는 공통적인 불만이 내포되어 있다. 


자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대표적인 분야는 농업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낮아 식량 안보 걱정이 큰 게 현실이다. 많은 농산물을 수입하는 형편이면서 개선할 생각보다는 국토가 좁아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식 생각이 더 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농사지을 땅은 얼마든지 있고, 자본이 투입되면 우리나라는 농산물 수출국이 될 수 있다.


휠체어를 손으로 밀고 다니던 장애인들이 요즘 전동 휠체어를 자가용처럼 타고 다닌다. 돈을 들여 연구해 편한 전동 휠체어를 생산했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자본이 투입되면 더 나은 방식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자본은 일정하게 머물러 있거나 남의 영역을 빼앗는 제로섬이 아니라 투입할수록 늘어나고 풍성해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농업 분야에 자본이 들어가면 분명히 더 발전하게 된다. 과거의 방식만 고집하면 획기적인 발전이 일어나기 힘들다. 상상만으로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자본을 받아들여 시도해 봐야 알 수 있다. 


생산성이 높고 성과가 날 수 있는 곳이라면 과감히 결단해야 한다. 자본을 투입해서 분명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당장 서둘러야 한다. 자본수익률과 비슷한 개념이 이자율이다. 


우리나라 평균 이자율이 3~4%라는 건 수익률이 3~4% 된다는 의미다. 3~4% 수익률이 나지 않는다면 투자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의 이자율이 이 정도 된다는 건 아직도 할 게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분야에 투자해야 할까. 한마디로 대기업이 없는 분야는 투자 전망이 밝은 곳이다. 하지만 그런 분야는 하나같이 자본 집중화를 막아놓았다는 게 문제다. 돈을 벌 수 있는 분야에 투자를 할 수 없게 해놓았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내수산업 대부분이 지금 막혀있다. 국내 기득권 집단들이 농업, 중소기업, 서비스업 등에 자본 투자를 막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는 우리나라에 아직도 발전할 수 있는 업종이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다. 선진국은 모든 분야에 자본이 들어갈 수 있도록 다 허용해 대부분의 업종에서 대기업이 탄생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모두 제조업 분야에서 배출되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기업에 한해서 자본 투입을 허용한 덕분이다. 수출육성 정책에 의해 대기업에 자본이 집중되었고 그에 힘입어 세계적인 기업들이 속속 나왔다. 하지만 내수업종에 자본 투입을 허용하지 않아 발전하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자유기업원을 비롯한 경제연구단체의 학자들이 '자본자유화’를 주장했다. 그로 인해 내수산업에도 자본 투입이 조금씩 허용됐지만 본격적인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내수산업,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게 없다. 간단하게 대기업이 없는 직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비스업, 교육사업, 컨설팅 등등 대부분의 내수업종이 영세하다. 그럼에도 “교육에 자본이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 “신성한 교육에 돈이라니…”라며 질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식회사 고등학교, 주식회사 대학교’가 생기면 세계적인 학교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내수시장에 자본 과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자를 해 모든 분야에서 대기업이 배출된다면 우리나라는 훨씬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자본 과잉은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본 과잉에 대해 거부반응을 일으킬 게 아니라 자본이 잘 투자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자본은 과잉이 없다. 필요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발전해 나갈 따름이다. 앞으로 자본을 과하게 투자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수 분야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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