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길라잡이] 노동력 부족의 시대

최승노 / 2018-12-17 / 조회: 5,729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 3분의 1이 사망한 이후 인구감소로 임금올라 결국 중세가 무너졌죠"


질병은 인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때로는 역사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1910년대 유행한 스페인 독감은 사망자 숫자만 무려 수천만 명에 달했다. 어찌나 피해가 심했던지 스페인 독감이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당겼다는 평가까지 있을 정도다.


몽고군이 가져간 것


흑사병이 유럽에 출현한 시기는 14세기로 1348~1350년 무렵이다. 불과 서너 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흑사병으로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0만 명이 사망했다. 유행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피해가 극심했던 건, 흑사병의 특성상 한 번 발병하면 짧으면 여섯 시간, 길어야 닷새 안에 사망하기 때문이다.


흑사병의 원인균인 가래톳 페스트는 원래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풍토병이었다. 그러다 몽골 제국이 서방으로 진출하면서 유럽에 흑사병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1347년 몽골군은 크림반도의 항구 도시 카파를 공략했다. 공성전을 하며 흑사병으로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투석기를 이용해 성벽 안으로 날려 보냈다. 몽골군은 이미 중국에서 이 병으로 엄청난 사망자가 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곧 성 안에서 떼죽음이 발생했고 몽골군은 힘들이지 않고 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 성에서 몇몇 이탈리아 상인들이 살아남아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흑사병이 유럽에 전파된 것이다.


예상하지 않은 기회


흑사병이 시작됐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피해는 더 심각했다. 중국에서는 유럽보다 더 많은 3300만 명이 사망했다. 아프리카에서도 흑사병의 피해는 극심했다. 이집트의 경우 19세기의 인구가 무려 1200년 전인 서기 7세기 인구의 3분의 1일 정도였다.


흑사병의 피해가 이렇게 전 지구적이었는데도 유독 유럽의 흑사병만 화제가 된 까닭이 있다. 바로 흑사병 이후에 유럽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흑사병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사망하자 병의 유행이 잦아든 뒤 유럽에는 여러 친척들로부터 유산을 다중 상속받아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생겨났다. 또한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봉건 영주들은 농민층의 처우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농민들의 임금은 계속 올라갔고 사회적 지위도 향상됐다.


영국에서는 농민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지자 이를 막기 위해 왕이 임금 인상을 제한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에드워드 3세는 이 법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면서 60세 이하 성인의 구걸 행위를 금지하고 노동을 의무화했다. 다른 농장에서 더 나은 조건으로 농민을 스카우트하는 것도 금지했다. 노동자들의 최대 임금을 흑사병 발생 이전, 정확히는 1346년 수준으로 동결하려는 게 법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노동력 부족에 따른 임금 상승 현상은 이후 100년간 더 지속됐다. 토지에 대한 인구 비율이 흑사병 발생 이전 수준을 회복한 뒤에야 임금 상승도 진정됐다.


상당 기간 노동자와 농민이 누리는 삶의 질은 극적으로 향상됐다. 흑사병은 인류의 목숨을 엄청나게 앗아간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앞으로 돌린 원동력이기도 했다.


인구가 감소하는 현대


전 세계 인구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원인은 삶의 질을 높게 유지하기 위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가족계획에 따른 인구 감소다. 경제에서 인구가 감소한다는 말은 곧 노동력이 감소한다는 걸 의미한다. 조만간 노동력 부족 시대가 온다는 말이다.


흑사병이 가져온 미증유의 위기는 뜻밖에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고 생산적이었던 르네상스 시대를 낳았다. 지금의 취업난이 힘들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지금 예상되는 미래는 노동자들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으며 항상 그렇듯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지금의 처지를 그저 한탄하는 것보다 작은 일자리라도 갖고 차근차근 나만의 경력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자신의 노동 생산성을 높여 향후 예상되는 노동력 부족 시대에 자신의 몸값을 폭등시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인 걸 잊지 말자.


■ 생각해봅시다


인류 재앙은 재앙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재앙이 무엇인가를 바꾸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흑사병은 역설적이게도 인구 감소→임금 상승→중세 몰락으로 이어졌다. 이런 사례가 더 있는지를 알아보자.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 TOP

NO.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138 [시장경제 길라잡이] 미국 GM의 위기와 노사 화합
최승노 / 2019-05-20
최승노 2019-05-20
137 [시장경제 길라잡이] 노동의 사회적 의미
최승노 / 2019-05-13
최승노 2019-05-13
136 [시장경제 길라잡이] 평등주의 정책의 함정
최승노 / 2019-05-06
최승노 2019-05-06
135 [시장경제 길라잡이] 쇄국정책
최승노 / 2019-04-29
최승노 2019-04-29
134 [시장경제 길라잡이]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와 고무줄 잣대
최승노 / 2019-04-22
최승노 2019-04-22
133 [시장경제 길라잡이] 사회주의 경제는 왜 망했나
최승노 / 2019-04-15
최승노 2019-04-15
132 [시장경제 길라잡이] 누구를 위해 빵을 만드나
최승노 / 2019-04-08
최승노 2019-04-08
131 [시장경제 길라잡이] 소말리아 해적과 정부
최승노 / 2019-04-01
최승노 2019-04-01
130 [시장경제 길라잡이] 환경 쿠즈네츠 곡선
최승노 / 2019-03-25
최승노 2019-03-25
129 [시장경제 길라잡이] 봉사와 기부에도 철학이 있다
최승노 / 2019-03-18
최승노 2019-03-18
128 [시장경제 길라잡이] 공유지의 비극
최승노 / 2019-03-11
최승노 2019-03-11
127 [시장경제 길라잡이] 조선 상인 임상옥의 상인정신
최승노 / 2019-03-04
최승노 2019-03-04
126 [시장경제 길라잡이] 올바른 스펙 경쟁
최승노 / 2019-02-25
최승노 2019-02-25
125 [시장경제 길라잡이] 칭기즈 칸의 유언
최승노 / 2019-02-18
최승노 2019-02-18
124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가?
조성봉 / 2019-02-13
조성봉 201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