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는 다른 사람 희생이 없는 무제한 권리 entitlement는 남의 희생과 양보를 전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만원 지하철을 탔을 때, 비어 있는 노약자석에 눈이 간 경우가 있는가? 대다수가 아마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속마음이야 어쨌든 간에 신체 건강한 젊은이가 노약자석에 앉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중교통의 노약자석은 말 그대로 노약자를 배려하는 좌석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알 수 있는 권리의 차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노약자석에 대한 '권리’의 성격이다. 권리의 개념은 'right’와 'entitlement’로 나눠 생각할 수 있는데, right의 권리는 남에게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반면 entitlement의 권리는 다른 이들의 희생이 따르는 권리를 말한다. 즉, 누군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의 경제적 희생이 있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right의 권리는 언론, 사상, 집회 등에 대한 자유가 있다. right의 권리는 권리를 누리는 데 있어 다른 이들의 희생이 없으므로 경제적 비용도 없다. 비용이 없으므로 right의 권리는 무제한으로 허용해도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entitlement의 권리는 다르다.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고, 경제적 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제한으로 늘려줄 수 없다. 무제한으로 허용할 경우 누군가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right와 entitlement의 권리 중 노약자석은 'entitlement의 권리’에 해당한다. 사회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합의된 권리 수준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들이 일정 수준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기에 노약자석이 존재할 수 있다. 만약 젊고 건강한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는다면, 많은 사람에게 질타를 받게 될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entitlement의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반석에 앉은 이들에게 무조건 자리를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또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는 entitlement의 권리를 right의 권리로 착각해 생기는 일이다. 합의되지 않은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도덕적 기준에 따른 자발적인 양보가 아니라 강요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하는 양보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타인의 양보와 희생을 수반하는 entitlement의 권리를 right의 권리로 착각하면 노약자석의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그만큼 일반석은 줄어들 것이다. 어느 순간 노약자석이 대중교통 좌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많은 이는 반발하게 될 것이다. 권리를 누리려는 자와 권리를 지키려는 자의 대립과 갈등이 발생한다.
복지는 무제한의 권리 아니다
그렇다면 복지는 right의 권리일까? 아니면 entitlement의 권리일까? 복지는 무제한의 권리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세상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삶의 질을 누릴 수는 없다. 또 각자 원하는 삶의 질이 다르거니와 개중에는 자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침해하는 경우도 있다. 복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복지를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왕왕 목격한다. 하지만 복지를 'right의 권리’로 말한다면 이는 명백히 틀린 말이다. 국가에서 정하는 복지정책은 분명 일부의 희생을 통해 일부의 권리를 보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정책은 사회적 합의가 필수 전제조건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 무턱대고 추진되는 복지정책은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자칫 분열과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복지정책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대상과 수준의 결정이 문제이다. 빈곤층의 복지 문제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경제적으로 보듬으려면 어느 정도까지가 빈곤층인지 또 빈곤층에게 어느 정도의 복지를 제공해야 할지를 사회적 의견 수렴을 통해 이루어내야 한다. 그 중심에 정부가 있다. 정부는 복지의 대상과 범위, 수준을 사회적으로 합의된 복지 철학을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복지정책은 사회통합을 이루며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 생각해봅시다
타인의 양보와 희생을 수반하는 entitlement의 권리를 right의 권리로 착각하면 노약자석의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그만큼 일반석은 줄어들 것이다. 어느 순간 노약자석이 대중교통 좌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많은 이는 반발하게 될 것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NO. | 제 목 | 글쓴이 | 등록일자 | |
---|---|---|---|---|
126 | [시장경제 길라잡이] 올바른 스펙 경쟁 최승노 / 2019-02-25 |
|||
125 | [시장경제 길라잡이] 칭기즈 칸의 유언 최승노 / 2019-02-18 |
|||
124 |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가? 조성봉 / 2019-02-13 |
|||
123 | [시장경제 길라잡이] 최초의 주식회사 최승노 / 2019-02-11 |
|||
122 | [시장경제 길라잡이] 자원 최승노 / 2019-02-04 |
|||
121 | 공교육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이진영 / 2019-01-30 |
|||
120 | [시장경제 길라잡이] 중소기업 정책 최승노 / 2019-01-28 |
|||
119 | [시장경제 길라잡이] 세금제도와 정치 최승노 / 2019-01-21 |
|||
118 | [시장경제 길라잡이] 정부와 포퓰리즘 최승노 / 2019-01-14 |
|||
117 | [시장경제 길라잡이] 통화 팽창과 인플레이션 최승노 / 2019-01-07 |
|||
116 | 신재민의 폭로 이후: 정권별 재정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옥동석 / 2019-01-07 |
|||
115 | [시장경제 길라잡이] 시장이 곧 답이다 최승노 / 2018-12-31 |
|||
114 | [시장경제 길라잡이] 경제는 제로섬 게임? 최승노 / 2018-12-24 |
|||
113 | [시장경제 길라잡이] 노동력 부족의 시대 최승노 / 2018-12-17 |
|||
112 | ‘국가부도의 날’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이원우 / 2018-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