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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제’에 소상공인·제계 “과잉 규제에 생존 위협” 반발

글쓴이
자유기업원 2026-09-08 , 세계일보

최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티빙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집단소송제 확대’를 두고 중소·중견기업과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강력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 구제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입법안에 ‘소급적용’이나 ‘옵트아웃’과 같은 반법치주의적인 극단조항들까지 포함되면서 우리 기업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는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다. 사전규제가 존재하는 한국 상황에 미국식의 강력한 사후 통제 수단을 이식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규제 중첩의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소송 한 번에 폐업 몰릴 판…벼랑 끝에 선 소상공인들


8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전날 대한변호사협회는 약 3954만개 계정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티빙 해킹 사고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변협은 성명서를 통해 “대규모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기업의 보안 의무를 강화하고 취약점 방치와 신고 지연에 대한 제재 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국회가 디스커버리와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제도를 담은 이른바 민생 3법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국회와 정부는 현재 증권 분야에 원칙적으로 한정된 집단소송제를 일반 손해배상청구 소송 전반으로 전면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집단소송제란 다수의 피해자 중 대표자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피해자들도 함께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다수를 구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과 기획 소송 남발 우려로 반대하는 의견도 팽배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2024년 12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소비자 손해배상 중심)과 지난해 5월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안이 잇따라 발의됐고, 지난 3월 박균택 민주당 의원 등이 적용 범위를 손해배상 전반으로 넓히고 소급적용과 옵트아웃 방식을 포함한 집단소송법안을 발의해 법안소위 심사와 공청회를 거친 상황이다.


법무부도 지난달 발표한 하반기 업무계획에서 ‘소액·다수 피해자를 위한 집단소송제 확대’를 국가 정상화 과제이자 추진 과제로 명시하며 정부 차원의 제도 개편을 본격화했다. 현행 체계로는 소액·다수 피해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기업이 과징금을 납부하더라도 국가의 몫이기에 실제 피해자는 거의 보상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도 제도 확대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문제는 소상공인 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 법무 조직과 대형 로펌을 통해 장기 소송전에 대응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생계형 소상공인에게는 변호사 선임 비용 자체가 존폐를 가르는 부담이다. 집단소송 한 건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사실 확인 이전에 언론 보도와 소비자 불신으로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해진다.


이에 136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집단소송제 소상공인 적용 확대 및 소급적용 강력 반대’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제도를 충분한 보호 장치 없이 소상공인에게까지 일률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영세 사업자를 소송의 최전선으로 내모는 가혹한 처사”라며 제도 적용 대상에서의 원칙적 배제를 촉구했다. 이어 연합회는 “소비자 보호와 소상공인 보호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며, 규제 확대보다 소상공인의 경영 안정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소급적용·옵트아웃 등 독소조항 논란…“법적 안정성 훼손해 투자와 고용 위축”


소급적용 여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서 심사 중인 박균택 의원의 집단소송법안에는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대해서도 집단소송이 가능하도록 하는 소급적용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자유기업원은 논평을 통해 “기업은 행위 당시의 법과 제도를 기준으로 위험을 계산하고 경영 의사결정을 하는데, 사후에 만들어진 소송제도를 과거 사건에 소급 적용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예측할 수 없는 사후 위험은 결국 혁신과 투자, 고용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제외 의사를 밝히지 않은 피해자까지 모두 판결의 효력에 포함하는 옵트아웃 방식 역시 뇌관이다. 플랫폼이나 통신 등 잠재적 피해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건의 경우, 1인당 소액의 위자료만 인정돼도 기업이 감당해야 할 배상 총액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자유기업원은 “기업의 위법행위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면 당연히 배상해야 하지만 피해 정도와 개별 당사자의 의사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책임의 총액부터 확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집단소송은 피해회복을 쉽게 하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기업을 처벌하거나 존립을 위협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韓 사전규제 위에 美 사후규제 덧대기…“기획 소송 남발, 비용은 결국 소비자 몫”


미국의 집단소송 제도를 한국 규제 환경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미국은 기업 활동의 앞단에서 행정규제를 가하기보다, 문제가 발생한 뒤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 등 사후적·사법적 통제를 통해 기업에 책임을 묻는 민간 집행 위주로 제도가 발달해 왔다.


반면 한국은 이미 기업의 진입과 운영 과정에서 인허가, 행위규제, 감독 등 촘촘한 사전규제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과징금 등 행정제재가 뒤따르고 이미 여러 분야에 징벌적 손해배상도 도입된 상태다.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은 “이런 구조에 미국식 집단소송이라는 강력한 사후책임 수단까지 추가하면 규제 공백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사전규제와 사후제재가 중첩되는 과잉 규제가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집단소송제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달 31일 한반도선진화재단 기고문을 통해 “집단소송의 범위가 넓어지면 피해자보다 변호사나 소송 사업자가 중심이 되는 기획 소송이 빈발할 수 있다”며 “기업이 부담한 막대한 소송 비용은 결국 가격 인상이나 투자 감소의 형태로 주주와 근로자,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업계에서는 일방적인 제도 이식보다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교한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 시행 이전 사건에 대한 소급적용을 배제하고, 무분별한 옵트아웃보다는 소송 참여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는 방식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의 권리 보호만큼이나 기업의 법적 책임 역시 예측 가능해야 한다”며 “명분만 좇아 기업에 과잉 책임을 지우는 섣부른 입법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