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은 면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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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시진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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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은 좋은 말이어서 더 위험합니다. 누구도 대놓고 '모두의 이익’에 반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익, 상생, 포용, 약자 보호라는 말 앞에서 반대는 곧 이기심처럼 보이고, 정책의 효과를 묻는 질문조차 취지를 모르는 냉정함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가짜 공공성』이 겨누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자는 공공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공성이라는 이름이 너무 쉽게 사용되는 탓에 진짜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의도가 좋은 제도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공공성 역시 명분이 아니라 결과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가짜 공공성의 시작은 존재하지 않는 '우리’를 실재하는 것처럼 다루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루소의 일반의지에서 출발해 정치적 올바름, 사회적 약자, 포용과 공정 같은 말들이 어떻게 반론을 막는 성역으로 변하는지를 짚습니다. 저자가 공공성을 '절대반지’에 빗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이 원한다’,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는 말은 모두의 뜻처럼 들리지만 국민과 사회는 하나의 입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이해관계도 욕망도 다른 개인들의 집합입니다. 그 차이를 지운 채 누군가가 '우리의 뜻’을 대신 선언하는 순간 공공성은 공동체의 가치에서 권력의 언어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정치가 공공성을 독점하면 민주주의마저 공익의 이름으로 자신을 배신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법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생각, 다수결이면 무엇이든 정당해진다는 생각, 공익을 앞세운 포퓰리즘 입법을 비판합니다. 다수결은 결정을 위한 절차이지 선과 악을 가르는 판별기가 아닙니다. 51명이 49명의 자유를 빼앗는다고 해서 그 침해가 갑자기 공공의 선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국민을 위한 법’이라는 수식어보다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를 묻는 일이 먼저여야 합니다.
시장은 이러한 공공성의 언어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협력시킵니다. 저자가 세상을 바꾼 것은 상인이었고 분업과 교환이 서로를 돕는 방식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천사가 아닙니다. 책의 표현처럼 서로의 눈치를 보는 이기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바로 그 불완전함을 전제로 작동합니다. 빵집 주인이 손님의 행복을 진심으로 염원하지 않아도 더 좋은 빵을 팔기 위해 경쟁하고, 소비자는 자신의 만족을 좇으면서 그 노력에 보상합니다. 위에서 선의를 설계하지 않아도 각자의 욕망이 규칙 안에서 부딪히며 협력이 만들어집니다. 인간을 선하게 개조하지 않고도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 시장의 힘입니다.
그래서 『가짜 공공성』의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정책의 취지가 아니라 그 뒤에 따라오는 청구서를 향합니다. 책은 중대재해처벌법, 안전운임제, 대형마트 영업규제, 교육환경보호구역, 교통속도 5030과 같은 익숙한 정책들을 끌어와 '좋은 취지가 좋은 효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묻습니다. 규제는 세금과 달리 고지서를 보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비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의 부담이 되거나 소비자의 가격으로 옮겨가고, 때로는 새로운 진입자의 기회를 막는 방식으로 돌아옵니다. 법전에는 비용표가 붙어 있지 않을 뿐 누군가는 언제나 그 값을 치릅니다. 문제는 규제 그 자체보다 그 비용을 숨긴 채 선한 목적만으로 정책을 평가하는 태도입니다.
진짜 공공성을 구별하려면 선의보다 세 가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누가 선택권을 잃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그리고 정책이 실패했을 때 되돌릴 수 있는가. 모두를 위한다는 정책이 누군가의 선택을 없애고 비용을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며 실패해도 고칠 수 없다면 그 공공성은 의심받아 마땅합니다. 반대로 서로 다른 욕망이 경쟁하고 실패한 선택은 퇴장하며 더 나은 선택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면, 다소 시끄럽고 불완전해 보여도 훨씬 건강한 질서일 수 있습니다.
『가짜 공공성』이 끝내 복원하려는 것은 공공성의 반대편에 있는 자유가 아니라 공공성 그 자체입니다. 자유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방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은 채 경쟁하고 교환하며, 누구도 자신의 선의를 타인에게 강제로 청구하지 못하게 하는 질서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유가 있어야 공공성 역시 권력자의 선언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의 선택 속에서 검증될 수 있습니다.
공익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모두를 위한다’는 말이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그 말을 더 크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끝까지 따져보는 것입니다. 선한 목적만으로 좋은 사회가 만들어졌다면 정치는 오래전에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공공성을 의심해야 합니다. 그 의심을 허락하는 사회가 열린 사회이고, 그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가장 정직한 공공성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