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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가격

글쓴이
공유라 2026-08-26

좋은 법은 정의로운 법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의롭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은 사람을 명령하고 금지하는 규범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법, 경제를 만나다』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은 법을 옳고 그름의 언어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그 법을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며 그 결과 사회 전체에 어떤 비용과 편익이 생기는지를 묻습니다. 법전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법의 비용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의 출발점은 재산권입니다. 저자는 사유재산이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기적인 인간이 생산하고 보존하도록 만드는 장치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의 노력의 결과를 자신이 가질 수 있을 때 더 생산하고, 주인이 분명할 때 자원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케냐와 짐바브웨의 코끼리 사례에서부터 영리병원, 사립유치원과 사학 문제까지 논의가 이어지는 이유도 같습니다. ‘영리’를 법으로 금지한다고 인간의 이익 추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도가 인간의 실제 동기를 무시할 때 그 욕망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법은 인간을 새롭게 만드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실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계약법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이 이어집니다. 책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표현처럼 자발적 거래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본적인 방법임을 강조합니다. 계약법의 역할은 거래 조건을 대신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기회주의를 억제하고, 불완전한 합의를 보완하며, 진정한 자발성이 없는 거래를 걸러내는 데 있습니다. 의료수가나 하도급대금처럼 선한 목적에서 가격과 거래조건에 개입하더라도 그 결과 거래 자체가 줄어들거나 다른 방식의 비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갑을 때렸더니 그 을이 훗날 갑이 될 기회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책의 문제제기는 법이 한쪽의 현재만 보고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불법행위와 일조권에 대한 논의는 ‘권리를 더 강하게 보호하면 사회가 더 정의로워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사람에게 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은 손해의 회복뿐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줄이는 유인으로도 작용합니다. 그러나 모든 피해를 무조건 막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일조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면 햇빛을 얻는 사람의 이익만 보이는 반면, 건축 제한으로 사라지는 주택과 높아지는 비용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외부불경제를 줄이는 데에도 비용이 듭니다. 법경제학은 피해자를 외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회가 치르는 비용까지 함께 보자는 요청에 가깝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배임죄와 법치주의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기업의 경영판단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안고 있습니다. 성공하면 혁신이지만 실패하면 손실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나쁜 경영판단을 사후적으로 형사책임의 언어로 평가하기 시작하면 기업가는 실패의 가능성보다 처벌의 가능성을 먼저 계산하게 됩니다. 책이 배임죄가 경영결정을 위축시키면 그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법이 악의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실패까지 범죄화한다면 가장 안전한 경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영이 됩니다. 혁신을 원하면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법질서는 스스로 모순됩니다.

회사법과 헌법을 다루는 후반부에서도 저자의 시선은 일관됩니다.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 순환출자와 집중투표제, 경제민주화와 토지소유권 제한을 두고 어떤 제도가 더 그럴듯한지를 묻기보다 실제로 사람의 선택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살핍니다. 전문경영인도, 지배주주도 각자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국가는 공익을 말하지만 국가 역시 잘못된 유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제도는 특정한 사람의 선의를 전제로 하기보다 서로의 이익이 견제되고 실패한 선택을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시장친화적인 법이란 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법이 아니라 사람의 동기와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에 가깝습니다.

법경제학은 정의에 가격을 매기는 학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의를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비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법률가에게는 문언과 요건, 판례의 논리만큼이나 그 규범이 현실에서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지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선한 의도로 만든 법이 거래를 막고, 권리를 지키려 만든 법이 더 큰 손실을 만들며, 기업을 바로잡으려 만든 형벌이 도전을 멈추게 할 수도 있습니다. 법은 선언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법에 반응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작동합니다.

그래서 좋은 법을 판단하는 마지막 질문은 ‘이 법이 옳은가’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누가 행동을 바꾸는가, 어떤 선택이 사라지는가, 그 비용은 누가 지불하는가까지 물어야 합니다. 정의로운 목적과 좋은 결과 사이에는 언제나 인간의 행동이라는 변수가 놓여 있습니다. 『법, 경제를 만나다』는 그 당연하지만 자주 잊히는 사실을 법의 언어와 경제의 언어 사이에서 끌어냅니다. 법에는 가격표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법에는 비용이 있습니다. 그 비용까지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