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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못 구하면 AI도 없다…전문가들 "재생에너지 일변도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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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업원 2026-06-17 , 이코노믹 리뷰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 확산으로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목표만으로는 무탄소 전환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원전과 LNG(액화천연가스), SMR(소형모듈원전), 수력 등을 포함한 기술중립적 전원 전략과 송전망·저장장치·계통 안정화 비용까지 반영한 전력시장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재준·김소희 의원, 자유기업원, 한국환경정책협의회가 주최하는 '환경과 기업을 살리는 중장기 무탄소 에너지 전략'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전력 문제를 단순한 에너지 공급 문제가 아닌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설비 목표 중심의 정책만으로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 요구하는 24시간 안정 전력, 계통 안정성, 비용 효율성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I 시대 경쟁력 된 전력…"빠르고 안정적인 공급이 승부처"


김형건 강원대학교 경제·정보통계학부 교수는 "AI가 결국 전력시장의 성격을 바꾸고 환경부와 기업이 하나의 과제로 묶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환경 정책과 기업 활동이 상충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AI 시대에는 안정적이고 빠른 무탄소 전력 공급 능력이 기업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AI를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경제 전반을 움직이는 운영체제에 비유했다. 제조, 서비스, 국방 등 대부분 영역의 생산성이 AI에 의해 좌우될 수 있으며 그 기반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AI 연산은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요구한다"며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AI도 힘들어지고 그 위에 서게 되는 경제도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짚었다.


AI 시대 전력 전략의 핵심 조건으로는 ▲대규모 전력 ▲24시간 안정성 ▲무탄소 전원 ▲감당 가능한 가격 ▲수요 속도에 맞춘 빠른 공급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빠르고 안정적인 공급이 새로운 승부처"라고 강조했다. AI 데이터센터는 2~3년 안에 지을 수 있지만 송전망과 변압기 등 전력 인프라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전력 인프라 병목이 AI 데이터센터 확장의 제약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발전 프로젝트 지연과 계통 접속 대기, 고압 변압기 리드타임 장기화 등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고압 변압기 리드타임이 1년에서 1년 반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36개월에서 48개월 수준으로 급등했다"며 "현실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봤다. 데이터센터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지만 발전 설비는 지방에 분산돼 있으며 이를 연결할 송전망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수도권 신규 전력공급 신청 거부, 전남 지역 계통 관리, 동해안 발전소 출력제어 등을 언급하며 "발전소를 더 지어도 보낼 길이 없는 구조적 문제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에 대해서는 현실성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현재 재생에너지 설비가 약 35GW(기가와트) 수준인 상황에서 100GW 목표를 달성하려면 향후 약 65GW를 추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5년 안에 달성하려면 연평균 13GW 수준의 신규 설비가 필요한데 과거 최대 신규 보급량이 연 4.6GW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지키기 어려운 설비 목표를 세우면 결국 화석연료 백업에 기댈 수밖에 없고 무탄소 진전은 더뎌질 수 있다"며 "못 지킬 약속은 불확실성을 키워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비용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탄소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 교수는 논의의 중심을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에서 '어떤 규칙으로 움직일 것인가'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 PPA(전력구매계약) 제도도 재생에너지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LNG, SMR 등 24시간 공급 가능한 전원까지 기술중립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특정 전원이 아니라 24시간 예측 가능한 무탄소 또는 저탄소 전력 조달이라는 설명이다.


독립 계통 한국, 24시간 전원믹스가 관건


이종호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객원교수는 RE100 중심의 논의가 CFE(무탄소에너지)로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 사용 여부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로 24시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세계적인 에너지 전략의 흐름도 무탄소는 맞지만 재생에너지가 전부는 아니다"며 "원자력을 포함한 24시간 무탄소 전력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RE100을 주도했던 글로벌 논의도 최근에는 24/7 CFE로 확장되고 있다"며 "한국 역시 재생에너지 중심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력시장에 대해선 저렴한 전력을 정부가 계속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봤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미 주요 경쟁국 대비 높은 수준에 있으며 기업이 필요한 전력을 직접 확보할 수 있도록 PPA 등 시장 참여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 전력계통의 특수성도 짚었다. 한국은 전력을 해외에서 자유롭게 수입하거나 수출하기 어려운 독립 계통이다. 여기에 반도체 공장처럼 24시간 일정하게 전력을 쓰는 산업 수요가 크다.


이 교수는 "반도체 회사에 전력 수요 변동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거의 일정하다고 했다"며 "공장은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간헐적인 재생에너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비용을 발전단가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태양광과 풍력 자체의 발전비용뿐 아니라 이를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ESS(에너지저장장치), 송전망, 계통 안정화 비용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전 비중이 높을수록 전체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시나리오 분석을 제시하며 원전과 재생에너지, 가스 설비를 현실적으로 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 가뭄·숨은 비용 도마 위로


이어진 토론에서도 재생에너지 중심 정책의 한계와 숨은 비용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고범규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가뭄' 문제를 제기했다. 재생에너지 가뭄은 바람이 약하고 일조량이 부족해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장기간 낮아지는 현상이다.


고 연구위원은 유럽 연구 사례를 언급하며 재생에너지 가뭄이 유럽 전체 기준으로도 수십 일 이상 이어질 수 있고 독일 단독으로는 100일 이상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간 재생에너지 평균 이용률이 10% 안팎에 그칠 수 있어 이를 ESS나 장주기 저장장치로 보완하려면 막대한 저장 설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재생에너지 가뭄의 빈도와 강도를 면밀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력계통은 한 번 끊어지면 안 되는 인프라인 만큼 20년, 40년, 100년 빈도의 기상 리스크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국내 장기 풍량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풍력 확대 과정에서도 1~2년 단기 풍황 조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고 연구위원은 "100% 재생에너지는 어렵고, 원전 50 대 재생에너지 50 구조도 쉽지 않다고 본다"며 "무탄소가 가야 할 길이라면 원전이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재생에너지는 보조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박상덕 전 한국전력 전력연구원장은 전력정책에서 비용 개념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처럼 LCOE(균등화발전비용) 등 단순 발전단가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저장장치, 송배전망 확충, 계통 안정화, 보조서비스 비용까지 포함한 총비용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전 원장은 "현재는 연료비 기반으로 계통에 진입하다 보니 더 비싼 태양광이 값싼 원자력을 밀어내 전력요금을 올리는 구조가 생길 수 있다"며 "앞으로는 연료비가 아니라 총비용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정책이 특정 전원을 밀어주는 방식이 아닌 기술중립성에 기반해야 하며 원전이 무탄소 에너지 믹스의 핵심 축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범철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명예교수는 환경학자 관점에서 재생에너지의 친환경성을 전 과정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양광 패널의 원료 채굴, 제조, 설치,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사용과 환경오염, 폐패널 처리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지 태양광에 따른 생태계 훼손, 해상풍력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중 소음과 해양 생물 영향 등도 환경비용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명예교수는 "재생에너지가 무조건 친환경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전 과정 평가를 하면 태양광과 풍력이 절대적으로 친환경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력발전의 활용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20년 가까이 발전이 중단된 도암댐 수력발전 재개를 제안하며 "이미 건설된 수력발전소를 활용하면 무탄소 전력 생산과 강릉 지역 물 부족 대응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암댐은 남한강 상류 물을 동해안 강릉 남대천으로 보내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다. 과거 흙탕물 문제로 발전이 중단됐지만 김 명예교수는 현재는 고랭지 개발과 스키장 건설이 안정화되면서 수질 문제가 과거보다 완화됐다고 봤다. 필요할 경우 응집제와 조정지를 활용해 수질과 유량을 관리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선 무탄소 전환의 방향 자체보다 이를 달성하는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전문가들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의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설비 목표만으로는 전력 안정성과 산업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정 전원을 앞세운 설비 목표가 아닌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 무탄소 전원을 얼마나 빠르고 경제적으로 확보하느냐가 관건일 전망이다. 원전, LNG, SMR, 수력 등 다양한 전원을 포괄하는 기술중립적 전략과 함께 PPA 확대, 전력요금 가격 신호 강화, 송전망 확충, 총비용 기반 전력시장 제도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