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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을 묻지 않는 사회에서, 학력을 숨기는 사람들

글쓴이
임수진 2026-05-27

한국에서는 연봉을 묻는 것이 실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종교나 정치 얘기를 꺼내는 것만큼이나 불편한 화제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구체적인 숫자는 좀처럼 오가지 않는다. 물론 어느 사회나 초면에 지갑 사정을 캐묻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 이 침묵은 더 견고하고 절대적이다. 서구권이 '임금 투명성'을 공정의 가치로 내세우며 제도적으로 연봉 공개를 확장해 나가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숫자를 감추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가 하루의 절반을 팔아서 얻는 돈에 대해서 왜 이렇게 쉬쉬하는 걸까. 예의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 침묵이 너무 광범위하고 너무 일관되게 유지된다.

올해 SK하이닉스가 고졸·전문대졸 대상 생산직 채용을 열자 취준생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4년제 졸업 사실을 숨기고 지원할 수 있을까요. 이유는 성과급이었다.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지급하는 초과이익분배금, 올해 전망치를 기준으로 단순히 계산하면 임직원 1인당 수억 원에 달하는 숫자가 돌았다. 더 배운 사람이 학력을 지우고 더 낮은 직급을 노리는 풍경. 필자는 이 장면이 우습기보다 어딘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이건 개인의 기이한 선택이 아니라, 시장이 오랫동안 정보를 숨겨온 대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를 모르고 산다. 채용 공고에는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로 얼마인지, 어떤 조건인지는 입사해 봐야 안다. 그러니 구직자는 눈에 보이는 기본급만 비교할 수밖에 없다. 좋은 성과급을 주는 회사는 과소평가되고, 기본급만 높은 회사는 실제보다 좋아 보인다. 노동력은 엉뚱하게 배치된다.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는 정보가 감춰진 시장에서는 결국 나쁜 상품만 남는다고 했다. 중고차 시장 얘기였지만, 노동시장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SK하이닉스의 성과급 규모가 외부에 알려진 순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면, 그 반대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정보가 공개되자 노동력이 즉각 반응했다. 대졸자까지 달려들었다. 하이에크는 가격이 정보를 전달한다고 했다. 임금이라는 가격이 제대로 보이는 순간, 사람들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시장이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 정보가 공개되기 전까지 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성과급을 숨기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부 불만, 경쟁사의 인재 유출, 협상력 약화. 개별 기업으로서는 합리적인 계산이다. 그런데 그 합리적인 계산들이 모이면 시장 전체가 비효율로 덮인다. 연봉을 묻지 않는 문화, 성과급을 공개하지 않는 관행, 그 안에서 학력을 지워야겠다는 발상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커뮤니티. 이것들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다. 정보가 흐르지 못하는 시장이 만들어낸 하나의 연쇄다.

정보가 차단된 시장은 겉보기에 조용하다. 비교도 없고 갈등도 없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효율의 증거가 아니라 마비의 증거다. 연봉을 말하지 않는 문화가 단순히 예의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성과급을 숨기는 관행도 단순히 기업 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이 스스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집단적 침묵이다. 대졸자가 학력을 숨기는 풍경은 그 침묵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터져 나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