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고지서, 평생의 성실함에 매겨진 ‘징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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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우영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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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변두리에서 30년 넘게 공직에 몸담으며 근면하게 일해온 김 씨(72)는 요즘 우편함 앞에 서는 것이 두렵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강남의 자산가들이나 내는 ‘남의 일’로만 여겼던 종합부동산세 고지서가 올해는 자신에게도 날아올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퇴직 후 연금 소득이 수입의 전부인 그에게, 정부가 발표한 급격한 공시가격 현실화는 평생의 성실함에 매겨진 ‘징벌적 과세’이자, 내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거주 통행료’와 같다.
시장경제의 근간은 사유재산권의 보호에 있다. 개인이 정당한 노동과 절약을 통해 자산을 형성하고, 이를 국가가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을 때 시장 구성원들은 비로소 경제 활동에 매진할 인센티브를 얻는다. 그러나 작금의 부동산 세제는 이러한 기본 원칙을 심각하게 흔들고 있다.
2026년 공시가격이 서울 핵심지를 넘어 수도권 전역으로 급등하면서, 김 씨처럼 ‘평범한 1주택자’들까지 대거 종부세 사정권에 들어왔다. 집값이 오른 것은 개인이 투기를 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공급 정책 실패와 인플레이션 때문인데, 그 정책 실패의 대가인 세금만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종부세가 조세의 대원칙인 ‘응능부담(소득 수준에 따른 과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조세는 담세력, 즉 세금을 낼 수 있는 실제적인 경제적 능력에 근거해야 한다. 하지만 보유세인 종부세는 ‘현금 흐름’이 아닌 ‘미실현 이익’에 과세한다. 김 씨처럼 집을 팔지 않고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손에 쥐어진 수익이 전혀 없다. 실현되지도 않은 가상의 가치 상승분에 대해 현금으로 세금을 내라는 것은 자본 그 자체를 갉아먹는 ‘원본 잠식’에 해당하며, 사실상 사유재산의 본질을 침해하는 행위다. 소득이 발생했을 때 소득세를 내고, 물건을 살 때 소비세를 내듯, 세금은 ‘실질적인 이득’이 있는 곳에 부과되어야 공평하다.
정부는 장기보유특별공제 등을 통해 1주택자를 배려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시장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물가 상승률과 화폐 가치 하락을 고려하면, 수십 년간 보유한 주택의 가치 상승분 중 상당 부분은 명목상의 숫자에 불과하다. 이를 실질적인 자산 증식으로 간주해 징벌적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고정 소득으로 살아가는 노년층의 구매력을 강제로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은퇴자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 생활비를 줄이거나, 정든 터전을 떠나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게 된다.
또한, 이러한 징벌적 보유세는 시장경제의 핵심인 ‘가격 기제’를 왜곡한다. 세금 부담을 견디다 못한 다주택자들이나 임대인들은 늘어난 세금을 임대료에 전가(Tax Incidence)하기 마련이다. 결국 종부세의 화살은 집주인을 넘어 전·월세 시장의 임차인들에게까지 돌아가 서민 주거 비용을 상승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시장 전체의 후생을 감소시키는 ‘사중 손실(Deadweight Loss)’을 발생시킨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이 가깝고 익숙한 커뮤니티가 있는 인프라는 생존과 직결된다. 그러나 퇴로가 막힌 고율의 양도소득세와 매년 불어나는 보유세 사이에서 은퇴자들은 고립되고 있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동결 효과(Lock-in Effect)’를 극대화하여 시장의 매물 고갈을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집값을 더 올리는 악순환의 기폭제가 된다.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세제가 마비시키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시장경제는 국가가 세금을 도구 삼아 특정 계층의 삶을 교정하려 들 때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을 제공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70대 노인이 자신의 집에서 평온한 노후를 보낼 권리는 헌법적 가치이자 시장의 기본 상식이다. 정부는 6월의 고지서가 국민에게 공포가 아닌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조세 원칙을 재정립해야 한다.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고 시장의 순리를 따르는 세제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성실한 중산층은 ‘내 집’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국가가 시장에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