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서 한 장이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가 마주할 네 개의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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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성윤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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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서 한 장이 국회로 가다
지난봄 SNS 타임라인에서 한 장의 정산서 사진이 멈춰 세웠다. 자주 시켜 먹는 분식집과 같은 종류의 가게였다. 1만 5,000원짜리 주문에서 사장님 통장으로 입금된 돈은 1만 193원. 중개 수수료, 배달비, 결제 수수료, 부가세까지 합쳐 약 32%가 빠져나간 셈이었다. 사진은 빠르게 퍼졌고, 정치권은 더 빠르게 움직였다.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직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배달앱에 한정한 수수료 상한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국회에는 이미 10여 건의 상한제 법안이 발의돼 있다. 약 2,700만 명이 쓰는 배달앱의 정산서 한 장이 입법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가격을 막는다고 비용이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정산서의 숫자를 만든 비용은 법으로 지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버 운영비, 라이더 인건비, 마케팅 예산, 분쟁 처리 비용은 누군가가 어디선가 회수해야 한다. 가격이 막히면 비용은 형태를 바꿔 다른 항목으로 흘러간다. 광고 단가가 오르고, 무료배달 쿠폰이 사라지며, 노출 알고리즘에 새로운 유료 옵션이 붙는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반대쪽이 부푼다. 코로나19 시기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는 배달앱 수수료를 15%로 묶었지만, 결과는 배달료 인상과 주문량 감소였고 상당수 도시가 제도를 철회하거나 완화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의뢰로 작성된 박민수 성균관대 교수의 보고서 역시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헌법재판소가 그어둔 선
여기서 잠시 헌법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한국에서 가격 상한제는 새로 발명된 도구가 아니다. 도서정가제, 전월세 상한제, 휴대전화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모두 비슷한 명분으로 도입됐고 모두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었다. 헌법재판소는 그때마다 과잉금지원칙이라는 네 개의 관문을 들이밀었다. 입법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이 네 관문 앞에서 "선한 의도"는 자동 통과권이 아니다.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역시 같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 시험대에 서기 전, 입법자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풍선효과로 비용이 결국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되돌아간다면, 이 규제는 과연 '침해의 최소성'을 만족시키는가. 가격이라는 신호 자체를 끊지 않고도 같은 목적을 달성할 다른 수단이 정말 존재하지 않는가.
시장의 문제는 다른 시장으로 푼다
진짜 해법은 가격 자체를 누르는 데 있지 않다. 가격을 결정하는 정보의 비대칭을 줄이는 데 있다. 첫째, 중개 수수료·배달비·광고비·결제 수수료를 합산한 총비용 공시제를 도입해, 사장님이 정산서를 받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사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주문·리뷰·정산 데이터를 가맹점이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는 데이터 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데이터가 묶여 있는 한 협상력은 생기지 않는다. 셋째, 신규 플랫폼의 진입 장벽을 낮춰 양강 구도에 새로운 경쟁자를 들여야 한다. 사장님이 떠날 수 있는 곳이 많아질수록, 머무르는 플랫폼의 수수료는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숫자를 가리는 법, 숫자를 비추는 법
내가 처음 그 사진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1만 5,000원과 1만 193원, 두 숫자 사이의 거리였다. 그 거리는 분명 아프다. 그러나 그 숫자를 법으로 지우려 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복잡한 숫자가 새로 적힌다. 가격은 명령이 아니라 신호이고, 신호를 끊는 일은 시장의 시야를 가리는 일이다. 시장경제는 비용을 없애지 않는다. 다만 비용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려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숫자를 가리는 법이 아니라, 그 숫자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