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가 없어야 한다고? 얼마나 많은 불평등이 너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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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라이너 지텔만 202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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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를 평등주의라는 이유로 비판하는 누구든 재빠른 비난을 당한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 차이들을 받아들이는데, 소득과 부에서 차이들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 차이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되는 것이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을 뿐입니다.” 이 감정은 아마도 오늘날의 사회에서 지배적인 합의로서 서술될 수 있을 것을 반영한다: 차이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는 억만장자가 없다(no more billionaire),”라는 구호에 요약되어 있는데, 이것은 처음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옹호한 요구다.
경제학자 머리 N.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는 자기의 소론 “자연에 대한 반역으로서 평등주의(Egalitarianism as a Revolt Against Nature)”에서 아래의 평등주의 반대론을 사용했다: “물론, 이것은 모든 사람의 평등−평등주의자의 이상−이 오직 만약 모든 사람이 정확하게 동일하고, 그들의 모든 속성에 관해 정확하게 똑같으면 달성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평등주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공포 소설의 세계−모든 개인성, 다양성, 혹은 특별한 창조성이 없는, 얼굴 없고 똑같은 동물들의 세계−이다.”
참으로, 그러한 평등 구상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전적 이상향 소설들의 작가들은 평등의 관념에 사로잡혔다. 이상향 체제의 거의 모든 설계에서,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가 (그리고 때때로 심지어 모든 사유 재산조차도) 폐지되는데, 빈부의 어떤 구별도 마찬가지다. 1516년만큼 일찍, 이 문학 장르의 이름을 확립한 영국인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쓴 소설 ≪이상향(Utopia)≫은 진술한다: “따라서 나는 만약 이 소유권이 추방되고 내쫓기지 않는다면 물건들의 어떤 평등하고 정당한 분배도 이루어질 수 없고, 완전한 부가 결코 사람들 사이에 있지 않으리라고 정말 충분히 확신한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되는 한, 사람들의 가장 많고 가장 좋은 부분 사이에 빈곤과 비참함의 무겁고 불가피한 부담이 아주 오래 남아 있으리라.”
철학자 토마소 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의 1602년 소설 ≪태양의 도시(The City of the Sun)≫에서, 거의 모든 도시 주민은, 남자건 여자건, 똑같은 의복을 입는다. 그리고 크리스티아노폴리스 공화국(Republic of Christianopolis)에 관한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Johann Valentin Andreä)의 이상향 서술에서, 오직 두 유형의 의복만 있다. “그들은 오직 두 벌의 의복만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그들의 작업용이고, 하나는 휴일용이다; 그리고 모든 계급에 대해 그것들은 똑같이 만들어진다. 성과 연령은 복장의 형태로 나타난다. 천은 아마포나 양모로 만들어지는데, 각각 여름이나 겨울을 위해서고, 모든 것의 색깔은 희거나 잿빛 회색이다; 누구도 화려한 맞춤형 의류를 가지지 않는다.” 많은 이상향 소설에서 심지어 집들의 구조조차도 전적으로 같다.
그러한 이상향들의 경상(鏡像)은,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의 ≪해리슨 버저론(Harrison Bergeron)≫ 같은, 암흑향들이다. 1961년에 출판되고 후에 특작 영화로 각색된 이 단편에서는, 한 정부가 누구든지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개인 사이에 완전한 평등을 집행한다. 높은 IQ를 지닌 누구든지 성가신 청각 장치들을 쓰고 있도록 강제되고, 미인들은 가면을 쓰며, 몸이 튼튼한 사람들은 무거운 물건들을 잔뜩 진다. 개인의 재능이나 우월의 어떤 조짐도 사회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지고, 국가는 자기 국민을 면밀하게 감독하며, 평등으로부터 어떤 일탈도 처벌한다. 예외적으로 재능 있는 십대, 해리슨 버저론은 이 체제에 반항한다.
“사회적 불의(social injustice)”를 한탄하는 거의 누구도 이 이상향들에서 전파되었거나 이 암흑향들에서 혹평받은 종류의 급진적 평등주의를 오늘날 옹호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이 소득에서 차이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지만, 많은 사람은 이 차이들이 “너무 극단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부언한다. 그러나 무엇이 너무 극단적이고 무엇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사회적 불평등의 많은 비판자는 부 격차가 그저 최근 몇십 년간 넓어졌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예를 들면, 오늘날 관리자는 자기 고용인들과 관련하여 과거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번다. 그래서, “과거에” 격차는 올바른 크기였는가? 거의 그렇지 않은데, 왜냐하면 오늘 과도한 불평등을 불평하는 많은 사람이, 그들이 지금 언급하기 좋아하는, 과거의 불공정에 관해서 꼭 마찬가지로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좋았던 옛날들은 오직 오늘 좋을 뿐이다; 과거에는, 그것들이 비판자들의 눈에는 꼭 마찬가지로 “불공정”했다.
완전한 평등의 촉진은 “과도한” 불평등에 대한 강렬한 항의로 대체되었다. 억만장자가 없어야 한다는 나라에 대한 대중적인 요구들을 예로 들어보자. 세계의 억만장자들에 관한 포브스 목록에 따르면, 그러한 나라들이 정말 이미 존재한다−가장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들, 북한, 그리고 쿠바. 대조적으로, 스위스와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불균형적으로 많은 억만장자를 자랑한다. 사실상, 스웨덴은 심지어 미국보다 더 높은 1인당 억만장자 비율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 쿠바와 북한의 국민이 스위스와 스웨덴의 국민보다 더 행복한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빈곤의 감소는 항상 억만장자 수 증가를 동반했다. 마오 치하에서는, 중국에서 억만장자가 없었지만, 중국 인구의 88퍼센트가 극빈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미국을 예외로 하고−세계 어떤 다른 나라에서보다 더 많은 억만장자가 있다. 극빈 상태에서 사는 중국인들의 수가 1퍼센트 미만으로 감소한 원인은 억만장자 수 증가와 똑같다: 경제 성장.
사회적 불평등이 그 자체로 거부되어서는 안 되지만, “과도하게” 되도록 허락되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누구든 무엇이 “과도한” 불평등을 구성하는지를 누가 결정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종종, “과도한”은 당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약간 위에서 출발한다: 억만장자들은 수백만장자 버니 샌더스 쪽에서 가시이다. 부가 금지될 것을 요구하는 철학자이자 대학교 교수 크리스티안 노이호이저(Christian Neuhäuser)에게는, “과도한”은 대학교 교수의 봉급 바로 위에서 출발한다.
노이호이저도 샌더스도 모든 사람이 같게 만들어지도록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과도한 부”다. 그것은, 나의 암흑향 소설 ≪2075년: 아름다움이 범죄가 되었을 때(2075: When Beauty Became a Crime)≫에서, 내가 급진적인 “시각 정의 운동(Movement for Optical Justice)”[또한 운동(MOVE)으로도 알려져 있다]에 모든 사람이 그들의 외모에서 똑같게 만들어질 것을 요구하게 하지 않은 이유이다. 이 운동은 미 보너스로부터 가장 많이 편익을 얻고 따라서 “특권적 미인들(privileged beauties)”로 낙인찍히는 “지나치게 아름다운(overly beautiful)” 여자들의 소수파에 반대한다. 15살과 40살 사이 모든 여자는 연간 스캔들을 받고, 그것들 동안 인공 지능이 그들의 외모를 이상적인 미 기준과 비교한다. 95% 일치를 초과한다고 여겨지는 여자들은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으로 낙인찍힌다.
강제 수술들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아름답게 만드는 대중 영화 ≪추한 사람들(Uglies)≫에서와 다르게, ≪2075년≫에서는, 오직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자들만이 그들을 평균 수준에 일치하게 만들기 위해 “시각 최적화 요법(Optical Optimization Therapy)”으로 알려진 강제 수술을 받는다. 나는 이 허구적 방안을 선택했는데, 왜냐하면 시기심의 본질이 “불우한 사람들”을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기하는 사람들은 자기들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주로 관심이 있지 않다; 그들은 만약, 예를 들어, 그들이 부러워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조세 법률이나 몰수를 통해 큰 손해를 보거나−나의 소설 ≪2075년≫에서와 같이−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자들이 수술을 통해 덜 아름답게 만들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물론, 조만간 일종의 역학이 전개되는데, 왜냐하면 일단 당신이, 예를 들어 [수십]억만장자들을 폐지하면, [수십]억만장자들은 아니지만 2-3억 달러를 정말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분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평등주의자들은 대체로 절대적 평등에 관심이−없고 그러므로 그것에 대한 모든 반대론은 쓸데−없다.
이 칼럼은 2026년 4월 23일 ≪타운홀(Townhall)≫에도 게재되었다.
https://townhall.com/columnists/rainerzitelmann/2026/04/23/no-billionaires-how-much-inequality-is-too-much-n2674863#google_vignette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역사가, 사회학자, 그리고 암흑향 소설, ≪2075년: 아름다움이 범죄가 되었을 때(2075: When Beauty Became a Crime)≫의 저자이다.
https://www.amazon.com/2075-When-Beauty-Became-Crime/dp/185252796X/
번역: 황수연[미제스와이어(https://mises.kr)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