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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묵은 `경자유전`의 족쇄를 풀자

글쓴이
정필립 2026-05-07 , 시장경제신문

외국인 없으면 멈추는 한국 농업 / 식량안보 마지노선 무너진 농촌 / '소유’보다 '이용’에 집중할 때 / '농업의 기업화'로 돌파구 찾아야



지난해 우리나라 농가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200만명 아래로 내려앉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 농가인구는 198만2천명으로 집계됐고, 올해는 194만5천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농촌의 인구·인력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한국 농업의 헌법적 토대인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한다.


이 원칙은 해방 직후, 인구의 절대다수가 소작농이었던 시절, 농지를 실제 경작자에게 분배하여 재산권의 과도한 집중을 완화하고 자영농(自營農)을 시장경제의 기초 단위로 세우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 시대적 맥락에서 경자유전은 분명 합리적 선택이었고, 한국이 시장제도를 정착시키는 데에도 긍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80년이 흐른 지금, 이 원칙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농지의 절반 가까이가 이미 임차로 경작되고 있고, 상속·이농(離農)·주말체험영농·농업법인 등 비(非)자경 소유를 허용하는 예외 조항이 누더기처럼 쌓여 있다. 헌법이 금지한 소작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만 이름이 임대차로 바뀌었을 뿐이다. 농지법은 위반자를 가리는 법이 아니라 예외를 정당화하는 법이 됐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경자유전 원칙이 한국 농업의 미래를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원칙은 '경작하는 자만이 농지를 소유한다'는 명제를 통해 대규모 자본의 농지 진입을 사실상 차단한다.


그 결과 한국 농업은 영세 자영농 중심의 분산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지규모 1㏊ 미만 영세농이 전체 농가의 약 70%를 차지하고, 농가 호당 평균 경지면적은 2025년 기준 1.55㏊에 불과하다. 한국 농업은 규모의 경제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경지면적의 감소 속도도 가파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 경지면적은 149만 9,510㏊로 정부가 식량안보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150만㏊ 선이 이미 무너졌다. 노동력 공백은 더욱 심각하다. 농림어업 취업자 수는 2025년 139만 5천 명으로 전년 대비 6.0% 감소했고, 빈자리는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메우고 있다.


2026년 상반기에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9만 3,503명이 배정되어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워, 사실상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땅을 가진 자가 직접 경작한다'는 경자유전의 전제는 이미 무너졌다.


해법은 농업 생산성의 근본적 제고에 있고, 그 길은 농업의 기업화(企業化)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단위 면적당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스마트팜·정밀농업·식물공장 등 첨단 농업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유치하려면 안정적인 자본의 장기 진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행 농지 소유 규제 아래에서는 일반 기업이 농지를 직접 보유해 대규모 경영에 나설 수 있는 길이 매우 좁다. 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 제도가 있지만, 농업인 출자비율 제한 등으로 자본 조달이 제약된다. 자본은 들어오지 못하고, 농지는 놀고, 농촌은 비어 간다.


세계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네덜란드는 좁은 국토에도 불구하고 시설원예와 화훼산업의 기업적 경영을 통해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이 됐다. 미국·호주·뉴질랜드는 가족농의 전통 위에 기업농 모델을 결합해 글로벌 식량 공급망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농지 소유와 경영에 대한 자본의 진입을 합리적으로 허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농지의 무분별한 비농업 전용이나 투기 자본의 농촌 잠식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 해법은 경자유전이라는 시대착오적 헌법 원칙이 아니라, 농지의 농업적 이용을 담보하는 용도 규제와 사후 관리에서 찾아야 한다. 헌법 제121조의 원칙은 폐지하거나 대폭 손질하고, 농지법은 '누가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되느냐'를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농가인구 200만명이 무너졌다는 것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한국 농업의 기존 패러다임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다. 80년 전의 토지개혁 정신은 자영농 보호 그 자체가 아니라, 시대에 맞는 효율적 농업 구조를 통해 국민에게 안정적 식량과 풍요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자본과 기술이 농업에 들어와 생산성을 높이고, 농촌을 다시 기회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경자유전의 굴레, 이제는 벗어야 할 때다.


정필립 자유기업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