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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원조는 가난과 싸우는 데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글쓴이
라이너 지텔만 2026-01-30

많은 사람이 틸로 보데(Thilo Bode)를 아는데, 왜냐하면 그가 12년간 그린피스(Greenpeace)의 전무 이사였고 후에 푸드워치(foodwatch)의 이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자기의 자서전, ≪저항하라(Resist)!≫를 출판했다. 보데는 자기 경력을 개발 사업가로 시작했고 다양한 나라−튀니지, 모로코,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일하면서 11년을 보냈다. 그는 자기 초기 시절에 자기가 순진했고 그저 더 늦게서야 “개발 원조가 실제로 가난을 극복하는 데 이바지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소말리아에서 그는 유목민들을 재훈련하여 어부들이 되도록 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 사회주의 나라의 장관이 자기의 엄지손가락 지문으로 즉각 계약을 승인하고 그다음, 그[보데]의 여행 가방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그 사업을 위한 돈을 담고 있는지 묻는다는 점에 놀랐다. “그것은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정기적으로 지급되었던 사업 자금들의 적어도 일부분이 어선단 사업이 아니라 대통령과 그의 도당 호주머니들로 들어갔다고 가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우리가 너무 지껄여 부패의 쟁점을 용케 둘러대게 되었습니다.” 30년 후, 한 UN 보고서는 식량 원조의 그저 약 반만이 대상 집단들에 도달하고, 나머지 반이 결국 군벌들과 함께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 돈의 큰 부분이 가난한 주민에게 도달하지 않고, 특권 계급이 그것으로 파리나 런던에 산 호화 빌라들이나 아파트들로 스며들었다고, 보데는 말한다.

그가 실제로 소말리아에서 무엇을 달성했는가? 그 나라는 지금 실패한 국가다. “내가 오늘 되돌아볼 때, 나는−개발 원조를 포함하는−수십 년의 외국 영향력 후에 그 나라가 50 혹은 60년 전 그것의 독립 직후 때보다 지금 더 못 산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잔햇더미의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데는 또한 튀니지에서도 몇 년간 활동했다. 여기서도 역시, 예를 들면 관광 여행을 촉진하기 위한, 야심 찬 사업들이 상황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떤 경우들에는 그것은 심지어 더 나빠지기조차 했다. “개발 원조는 그것의 관여를 통해서, 또한 못 본 척하기를 통해서도, 이 극히 침울한 상태에 이바지했습니다.”

어떤 사업들은 차후에 평가되었지만, 자료는 개발 사업자들 자신들이 쓴 보고서들에 기초하였고 공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독일 일간 신문 ≪벨트(Welt)≫와의 인터뷰에서 보데는 말했다: “튀니지를 예로 들어봅시다. 나는 거기서 개발 사업자로 일했습니다. 지난 30 혹은 40년의 모든 원조는 가난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것은, 예를 들면 유지되지 않는 관개 조직들을 위해 지나친 지하수 양들의 추출을 통해서, 생태학적 피해를 일으켰습니다. 혹은 건조한 땅에 적합하지 않고 너무 많은 물을 소비하는 올리브 나무 품종들의 재배를 위해서. 이것에 보태진 것은 대중 관광 여행을 통한 시골 풍경들과 도시 풍경들의 파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유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 나라의 개발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 원조 자금들이 아직도 그러한 나라들에 제공되고 있는 이유를 질문받았을 때, 보데는 인터뷰에서 대답했다: “우리는 협박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인 상대들이,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더욱더 많은 난민 보트가 유럽에 도달하게 하겠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보태지는 것은 투명성 결여입니다. 왜냐하면 개발 사업자들이 자신들을 평가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독일 연방 경제 협력부(German Federal Ministry for Economic Cooperation)로부터의 지난 40년의 감사 보고서들을 요청했습니다. 그것들은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사실상 말소되었습니다.”

내가 나의 책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 베트남, 폴란드, 그리고 번영의 기원(How Nations Escape Poverty: Vietnam, Poland, and the Origins of Prosperity)≫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830632)에서 보고하는 수많은 과학적 연구는 개발 원조가 대개 비효과적이고 종종 심지어 유해하기조차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만약 그렇게 많은 과학적 연구의 결과들이 그렇게 명백하다면, 개발 원조가 국가들을 가난에서 해방하는 최상의 방식이라는 신념이 왜 그렇게 완강하게 지속하는가? 나는 그 이유가 영합(零合)(zero-sum)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은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로부터 무엇을 빼앗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이 가난할 뿐이라고 믿는다. 그 결론: 부유한 나라들은 자기들의 부를 약간 포기해야 하고, 그러면 가난한 나라들이 더 잘 살 것이다. 보데는 그것을 자기 책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개발 도상국들이 가난한데, 만약 우리가 합리적인 사업들을 위해 그들에게 돈을 주고 이 사업들이 적절하게 집행되도록 우리의 지원을 통해 보장한다면, 사정은 해결될 것이다, 라는 단순한 원인-결과 관계를 따랐습니다. 회고하면, 이 가정은 우스꽝스럽도록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은 과거 수십 년이 명백히 보여주었다. 만약 가난한 나라들의 문제들에 관한 진단이 틀렸으면, 그 요법도 역시 틀렸다. 개발 원조의 비판자들과 지지자들 양쪽 다 그것을, 부유한 나라들이 손해를 보고 가난한 나라들이 같은 정도로 이익을 보는, 영합 게임으로 본다. 원칙상, 많은 비판자와 지지자는 이 점에 의견을 같이한다: 지지자들은 “희생들(sacrifices)”이, 동정에서나 서양의 식민지 죄악들에 대한 보상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믿는다. 비판자들은, 우리 자신 나라에서의 문제들을 고려하면, 우리가 그러한 관대의 여유가 없다고 믿는다.

개발 원조의 지지자들은 또한, 이 원조가 “탈출의 원인들을 제거할” 것이고 그러므로 더 많은 개발 원조 덕분에 불법 이주가 더 적어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논거로 부유한 나라들의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개발 원조가 영합 게임이 아닐 것이고, 그것으로 양측이 다 이길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이유로 틀렸다. 첫째, 과거 수십 년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빈곤은 개발 원조를 통해 줄일 수 없다. 그러나 설사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이 조금 더 잘 산다고 할지라도, 이것으로 이주가 더 적어지기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하여간 오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전문 밀입국업자들한테 수천 달러를 지급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상대적으로 더 잘 사는 사람들만이 이렇게 할 여유가 있다.

개발 원조는, 그것의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매우 다른 방식으로이긴 하지만, 참으로 영합 게임이 아니라, 윈-윈(win-win) 상황이다. 한편, 부유한 나라들에 있는 강력한 국가 개발 원조 조직들과 NGO들은, 이 구조들에 고용된 많은 고보수 개발 사업가가 그렇게 하듯이, 고도로 이익을 본다. 다른 한편, 수령하는 나라들에 있는 부패한 엘리트들이 이익을 본다.


이 칼럼은 2026년 1월 9일에 작성되었다.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 베트남, 폴란드, 그리고 번영의 기원(How Nations Escape Poverty: Vietnam, Poland, and the Origins of Prosperity)≫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830632)의 저자이다.
번역: 황수연[미제스와이어(https://mises.kr)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