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자율성 회복--교육의 질 높이고, 학생에게 더 나은 선택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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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왕호준 2026-01-06 , 마켓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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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후 대학 등록금 제자리, 교수진 확충·연구 인프라 개선 한계
최근 4년간 서울대 교수 56명 해외행, 한국 대학-중국·일본과 최대 20~30점 격차
17년 동안 제자리에 묶여 있는 등록금, 대학 스스로 결정할 문제
국가가 어떤 식당에 17년 동안 같은 가격만 받으라고 강제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식당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뻔하다. 종업원 수를 줄이고 값싼 재료를 쓰며, 시설 투자와 개선을 포기하는 것이다. 가격을 묶어두면 품질이 떨어진다는 단순한 원리는 시장 어디에서나 예외가 없다.
지금의 대학이 바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2008년 이후 대학 등록금은 사실상 제자리에 묶여 왔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국공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하고 등록금 인상률은 0%대에서 동결됐고, 그 결과 대학의 재정 여력은 구조적으로 위축됐다. 재원이 묶이면서 교육환경에 대한 투자는 뒷전으로 밀렸고, 교수진 확충이나 연구 인프라 개선에도 뚜렷한 한계가 생겼다. 학생들은 점점 열악해진 환경에서 수업을 듣게 됐고, 교육의 질 하락은 구조적 조건이 됐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가 아니다. 정부는 오랜 기간 두 가지 장치를 통해 대학 등록금을 통제해왔다. 하나는 최근 3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까지만 허용하는 등록금 인상 상한 규제이고, 다른 하나는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한 대학에만 재정을 지원하는 국가장학금 Ⅱ유형 제도였다. 형식상 인상은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등록금 인상을 선택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 돼 왔다.
등록금 규제가 대학 재정에 남긴 손실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대학이 법정 등록금 인상률의 70% 수준만 반영했어도, 사립대학은 연평균 약 1조 5000억 원, 국공립대학은 연평균 약 2800억 원의 추가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등록금 동결은 '부담 완화’라는 명분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대학의 교육·연구 투자는 장기간 희생됐다.
이 같은 재정 제약은 대학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4년간 서울대 교수 56명이 해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고, THE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도 서울대·연세대·KAIST 모두 순위가 하락했다. 특히 연구환경과 교육환경 부문에서 한국 대학은 중국·일본 대학과 최대 20~30점의 점수 격차를 보였다. 연구 평판과 연구비 투자, 학생 대비 교원 비율 등 핵심 지표에서의 열세가 누적된 결과다.
최근 정부가 국가장학금 Ⅱ유형을 폐지하면서 제도는 한 단계 변화했다. 이에 따라 대학은 최근 3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 범위 내에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를 실질적인 자율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17년간 누적된 재정 압박과 투자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인상 상한선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등록금 자율화는 단순히 등록금을 올리자는 주장이 아니다. 장기간의 등록금 규제는 대학이 연구비 확충이나 실험·연구 인프라 개선 같은 기본적인 투자조차 제때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교육의 질 저하가 반복되는 구조를 낳았다. 재정에 대한 결정권을 대학에 돌려주지 않는 한, 대학 경쟁력 하락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더라도 교육에 투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는 있다. 그러나 비싸기만 하고 맛없는 식당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등록금이 비싼데도 교육의 질이 낮다면 외면받을 것이고, 그 값에 걸맞은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은 선택받을 것이다. 어떤 대학에 진학할지는 결국 학생의 판단에 달려 있다.
17년 동안 제자리에 묶여 있던 대학 등록금은 이제 대학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정부는 국가장학금 Ⅱ유형 폐지에 그치지 말고, 등록금 인상 상한선 역시 과감히 재검토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이 곧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생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길이다. 그것이 대학과 학생 모두를 위한 선택이다.
[왕호준 자유기업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