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치이고 노란봉투법 방어 안간힘… 기업성장 불모지 된 한국 [코리아 2026 ‘킬러규제 혁파’ 로 다시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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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자유기업원 2025-12-23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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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 2026 ‘킬러규제 혁파’ 로 다시 뛰자 - <1> ‘데스밸리’ 진입 빨간불
‘묻지마 입법’ 에 경영 환경 악화
전문가 46% “혁신에 도움 안돼”
낡은 규제탓 첨단산업 성장 더뎌
기업효율성 1년새 21계단 폭락
“미국 빅테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수조 원을 인공지능(AI)에 쏟아붓는데, 우리 기업들은 규제로 투자금 확보가 어렵고 자금을 확보해도 이사회 통과부터 걱정해야 합니다. 주가가 조금만 흔들려도 배임 논란이 될 수 있는데 어느 경영진이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겠습니까.”
재계 관계자는 내년도 경제를 전망하면서 이같이 우려했다. 국내 기업들이 ‘규제’와 ‘사법 리스크’라는 이중 족쇄에 묶여 성장 엔진에 시동을 켜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22일 자유기업원 보고서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묻지마 입법’이 더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21대 국회는 4년 동안 역대 최다인 2만5800여 건의 법안을 의원 발의했는데, 22대 국회는 개원 후 78주간 총 1만3473건을 의원 발의해 더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의원 1인당 매주 0.57건의 법안을 기계적으로 발의한 셈이다. 이 중 규제는 4349건(32.3%)이었다. 동일 내용을 여러 관련 법률에 적용하는 ‘쪼개기·복제 발의’로 입법 실적을 부풀리거나, 이전 국회 폐기 법안을 다시 발의하는 행태도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쟁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등이 22대 국회에 재발의돼 처리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전국 4년제 대학 경제학과·경영학과·행정학과 교수 등 전문가 2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규제 인식조사에서도 전문가들은 규제혁신과 관련한 국회 입법 활동에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응답자의 46%는 최근 국회 입법 활동에 대해 ‘규제혁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올해 채택된 상법, 노란봉투법 등은 모두 기업을 어렵게 만드는 법으로, (정부와 국회가) 옥죄기만 하니까 경제가 더 활력을 잃는 것”이라며 “민간 주도 규제혁신의 핵심은 정부가 규제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현장의 활력 저하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25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기업 효율성’ 순위는 전년도 23위에서 44위로 1년 만에 21계단 하락했다. 세부적으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31위에서 53위로, 기업의 태도·가치관 등 기업가 정신 관련 지표가 11위에서 33위로 폭락하며 경쟁력 하락을 주도했다.
이는 첨단 산업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결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구글 웨이모와 중국 바이두가 완전무인자율차로 도로를 누빌 때, 한국 모빌리티는 여객자동차법 규제 등으로 시범 운행 수준에 그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경쟁력 역시 개인정보보호법(눈)과 도로교통법(발) 규제가 기술 상용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데이터 3법과 저작권 규제 역시 AI 학습의 장벽으로 남아 있다.
지난 2022년 아산나눔재단이 발표한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이 한국에 들어올 경우 10곳 중 4곳은 사업 자체가 불법이거나 불가능하다’는 보고서는 3년이 지난 현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당시 지적됐던 우버(승차 공유),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원격의료 등은 여전히 국내에선 불법이다.
경총 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첨단산업 육성·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규제혁신 제도(복수응답)로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61.6%)을 꼽았다. 차기 한국경영학회장인 최정일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의원입법을 통한 검증 없는 무분별한 규제 양산’으로, 실질적인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며 “선진국처럼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생명과 안전을 해치는 게 아니면 모든 분야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혁신적인 국가로 변해야만 한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