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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점심에도 시장의 법칙이 있다

글쓴이
안영진 2025-12-12

“왜 늘 같은 업체가 들어와요?”


학부모 대표의 질문에 회의실이 잠시 정적에 잠겼다. 학교 급식 납품업체 선정회의에서 늘 나오는 말이었다. 아이들 밥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불만이 쌓이자, 누군가 “가격이 싸니까 그렇죠”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단순한 음식의 맛이 아니라, ‘가격’과 ‘품질’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였다.


학교 급식은 매년 공개경쟁입찰로 운영된다.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낙찰받는 ‘최저가 낙찰제’ 방식이다. 예산 절감에는 효과적이지만, 오히려 품질 하락이라는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잦다. 아이들의 밥상은 공공조달의 한계 속에서 ‘시장 없는 시장’처럼 굴러간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는 ‘정보의 비대칭’ 문제다. 구매자인 학교는 공급자의 실제 품질과 위생 수준을 완전히 알 수 없고, 납품업체는 자신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품질을 낮추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시장의 경쟁은 존재하지만, 가격만 작동하는 불완전한 시장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격’ 외에도 ‘품질’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넣어줘야 한다. 일부 교육청에서는 ‘적격심사제’를 도입해, 단순히 싸게 공급하는 업체가 아니라 일정 기준 이상의 품질과 위생 점수를 받은 업체만 낙찰받도록 하고 있다. 또, 우수 납품업체에는 차년도 입찰 시 가점을 부여한다. 바로 인센티브 설계의 시장경제 원리다.


결과는 명확했다. 급식 만족도가 높아졌고, 원재료의 안정적인 공급망이 확보되었다. 업체들은 단기 수익보다 ‘평판’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도 회복됐다. 강제 규제보다 자율 경쟁과 보상 체계가 더 강력한 개선책이 된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급식비 인상’ 논의도 흥미롭다. 일부에서는 공공 서비스니까 무조건 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식자재 가격이 오르면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고, 결국 불만이 커진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처럼, 가격은 시장의 신호다. 비용 상승을 무시한 채 억지로 가격을 눌러두면 결국 품질이 무너지고,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학교 급식소는 작지만 완벽한 경제의 축소판이다. 제한된 예산, 다양한 이해관계자, 불완전한 정보, 그리고 자율과 통제의 경계선. 여기서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분명히 작동한다. 우리는 그 손을 억누르기보다 올바르게 안내해야 한다.


행정 현장에서는 종종 ‘시장경제’와 ‘공공성’을 대립 구도로 본다. 그러나 둘은 적대적 개념이 아니다. 자율성과 책임, 효율과 공정이 조화를 이루는 지점이 바로 건강한 시장의 모습이다. 급식의 품질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부의 지시나 규제가 아니라, 각 주체가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먹는 한 끼의 식사 속에도 시장경제의 질서가 숨어 있다. 공급자는 품질로 신뢰를 얻고, 학교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효율을 높인다. 그리고 그 과정 전체가 ‘보이지 않는 손’의 섬세한 움직임 속에 있다.


학교 급식의 개선은 단순한 행정의 효율을 넘어, 우리 사회가 시장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다. 시장경제는 냉정한 경쟁의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협력 질서다. 그 협력의 무대가 꼭 기업이나 주식시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아이들의 점심시간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시장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