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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변동성은 가장 약한 고리인 소비자를 노린다

글쓴이
이은수 2025-12-12

클릭 몇 번이면 미국이든 유럽이든 물건이 집 앞까지 오는 시대다. ‘직구(직접 구매)’는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 명품 가방부터 신발, 영양제까지 구매 가능한 품목도 다양하다. 국내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 배송비와 관세를 더해도 이득인 경우가 태반이다. 시장개방이 소비자에게 가져다준 가장 실질적인 혜택이 바로 이 직구 문화일 것이다.


그런데 이 편리함 뒤에는 우리가 생각보다 잘 모르는 변수가 숨어있다. 바로 환율 변동성이다. 결제하는 순간부터 물건이 집에 도착하 때까지, 환율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의 결과를 고스란히 떠안는 건 소비자다.


DCC의 함정
지난 9월 중순, 미국 브랜드에서 신발을 주문했다. 배송비 포함 273,000원. 미국발 상품의 관세 면제 기준은 200달러라는 걸 알고 있었고, 원화로 결제했으니 관세 변동에도 추가 관세가 붙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원화결제, 즉 DCC(Dynamic Currency Conversion, 해외 원화 결제)는 이미 환율과 수수료가 포함된 금액이다. 달러로 결제하면 나중에 카드사 환율이 적용되면서 최종 금액이 달라지지만, 원화로 결제하면 그 자리에서 금액이 확정된다. 그래서 안심했다. 결제 시점에 가격이 고정됐으니 환율이 오르내리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물류 대란으로 인해 배송이 한 달이나 지연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보통 2주면 받아볼 수 있는 상품이 10월 중순이 넘어서야 한국에 도착했다. 그 사이 주문 당시 1,380원대였던 환율이 1,430원대로 치솟았다. 천 만원 씩 달러를 구매해 차익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50원 차이가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관세 계산에서 이 50원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문제의 핵심은 수입 신고일의 환율에 있다. 관세는 내가 결제한 날의 환율이 아니라, 물건이 한국에 도착해서 통관되는 날, 즉 수입신고일의 환율로 계산된다. 관세청에서 고시하는 그날의 기준환율이 기준이 된다. 황급히 주문 금액을 역산해보니, 결제 당시에 200달러를 넘지 않던 원화 금액이 기준환율에 따라 $200달러를 초과해버렸다. DCC로 ‘지금’ 환율에 결제했지만, 관세는 ‘나중’ 환율로 계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결국 예상 못한 관세를 물어야 했다. 배송이 늦어진 건 내 잘못도 아니고, 환율이 오른 것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 리스크는 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시장 리스크의 불균등 전가와 책임
이 경험을 통해 시장경제에서 환율 변동 리스크가 어떻게 불균등하게 전가되는 지 깨달을 수 있었다. 환율은 더 이상 단순한 거시 경제 지표가 아니라, 개인의 지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변수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리스크를 감당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대기업은 환헤지(Currency Hedging)라는 금융 기법으로 환율 변동 위험을 미리 차단한다. 수출입 대금을 받기 전에 은행과 계약을 맺어 환율을 고정하고,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 역시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급격한 환율 변동을 완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시장의 큰 주체들은 시스템적인 보호 장치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한다.


하지만, 신발 한 켤레를 사려는 개인 소비자는 어떤가. 일상의 소비 활동을 하는 개인에게는 이러한 보호 장치나 헤지 수단이 전무하다. 개인 소비자는 상품의 편리함과 가격 경쟁력이라는 시장 개방의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시스템적인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이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 놓인다. 이는 시장 경제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리스크 관리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명확한 정보 비대칭성과 불평등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개인 소비자는 물류 대란이나 갑작스러운 환율 급등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에 대한 사전 정보도, 대응 수단도 부족한 상태로 오롯이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직구의 일상화로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이면에는, 환율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시장 리스크를 정보도 대응 수단도 부족한 개인 소비자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구조적 불평등이 놓여있다. 시장 개방이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넓혀주었지만, 동시에 불확실성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경제 시스템 안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이 조정되는 것뿐만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리스크의 책임마저 개인에게 전가되는 이 현실이 우리가 편리함 뒤에서 간과하고 있던 시장 경제의 또 다른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