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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에서 사기당한 내가 ‘플랫폼 규제법’을 반대하는 이유

글쓴이
배덕주 2025-12-12

지난주, 한정판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 유명 중고거래 플랫폼의 '정품 검수' 서비스를 이용했다. '검수 합격' 배지를 믿고 50만 원이 넘는 돈을 송금했다. 이틀 뒤 도착한 상자에는 정교하게 위조된 가품이 들어 있었다. 플랫폼에 항의하자 돌아온 것은 기계적인 사과와 복잡한 환불 절차 안내뿐이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소비자를 기만한 플랫폼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당장 법을 만들어야 한다."


마침 국회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안'(온플법) 논의가 한창이다. 거대 플랫폼의 독과점을 막고, 자사우대·끼워팔기 등을 금지하며, 소비자 피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방금 사기를 당한 나 같은 피해자에게는 이보다 더 달콤한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소비자 편에서 거대 기업을 감시해 주겠다니, 얼마나 정의로운가.


하지만 이 '선의의 규제'가 과연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까? 10여 년 전, 우리는 비슷한 약속을 들은 적이 있다. 2012년 시행된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명분은 숭고했다. 13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어떤가? 규제를 받은 대형마트는 물론, 보호받으리라 예상했던 전통시장마저 동반 침체했다. 그사이 소비 트렌드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갔고, 규제 밖에 있던 이커머스 기업들만 압도적으로 성장했다. 선의로 포장된 정부 개입이 시장의 역동성을 무시했을 때,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패배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뼈아픈 사례다.


최근 논의되는 '플랫폼 규제법'은 2025년형 '대형마트 규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법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본떠,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강력한 '사전 규제'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 시장과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다.


가령, 법안이 금지하려는 '자사 우대'는 얼핏 불공정해 보이지만, 소비자인 우리에게는 '빠른 배송'이나 '간편 결제'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로 다가왔다. '끼워팔기'는 '음악 구독과 쇼핑 할인'처럼 더 큰 소비자 효용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 모든 복잡한 시장 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 플랫폼 스스로 '무해함'을 입증하도록 '입증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결국 기업의 혁신 의지를 꺾어버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역차별'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빅테크는 교묘히 규제를 피해 가는 반면, 쿠팡, 네이버, 당근, 배민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국내 플랫폼'들만 규제의 덫에 걸려 성장이 멈출 수 있다. 결국 피해는 서비스 품질 저하와 선택의 폭 축소라는 부메랑이 되어 소비자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당한 '가품 사기'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은 '더 나쁜 규제'가 아니라 '더 좋은 시장'에 있다.


첫째, 시장의 가장 강력한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 즉 '경쟁'이다. 내가 가품을 받은 플랫폼 A를 처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더 안전하고 신뢰도 높은 검수 시스템을 갖춘 플랫폼 B로 떠나는 것이다. 플랫폼은 정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즉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사기 방지 기술에 투자하고 검수 시스템을 고도화할 수밖에 없다. 온라인 게임 속 '거래소'가 유저들의 '평점'과 '신뢰'를 기반으로 자생적 질서를 만들어내듯 , 시장은 스스로 신뢰를 구축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둘째, '범죄'는 '법치'로 다스려야 한다. 가품 사기는 '플랫폼의 정책 실패' 이전에 명백한 '사기 범죄'다. 우리는 이미 민법과 형법이라는 강력한 법체계를 갖추고 있다. 혁신의 싹을 자르는 새로운 '사전 규제'를 만들기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존의 법으로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사후적 규율' 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집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플랫폼에 대한 불만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라는 칼을 부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대형마트 규제라는 실패한 실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시장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더 자유롭고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놔두는 것이다. 그것이 나 같은 사기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자, 진정으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