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유예: 규제가 영화관을 살릴 유일한 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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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기태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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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추억의 영화관이 문을 닫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장소는 한정적이었다. 대부분 영화 관람과 식사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고, 동아리 활동 뒷풀이도 영화관람만 한 콘텐츠는 없었다. 그렇게 항상 찾던 영화관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나 또한 그곳을 서서히 찾지 않게 되더니, 얼마 전 인터넷 기사로 폐업 소식을 접했다.
최근 전국 곳곳의 스크린이 꺼지고 있다. 멀티플렉스 몰락의 주범으로 우리는 흔히 압도적인 가격 효율성을 자랑하는 ‘OTT’의 성장이라는 거대한 시장 변화의 흐름을 지목한다. 하지만 나는 영화관이 ‘극장을 찾아야 하는 새로운 이유’를 만드는 데 안일(安逸)했다고 생각한다. 펜데믹 이후 급격히 상승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일반 영화관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을 미루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지 못했다. 물론 4DX, IMAX 등과 같은 프리미엄 상영관의 혁신은 존재했지만, 부담스러운 가격은 다수의 선택을 받기에는 큰 벽으로 작동했다.
Ⅱ. ‘홀드백’ 법안의 역설: 소비자 외면, 제작사 리스크 가중
최근 침체된 영화관을 살린다는 목적으로 ‘홀드백 법제화’가 추진 중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극장 상영 종료 후 6개월이 지나야만 OTT 등 다른 플랫폼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이 규제는 극장을 살린다는 ‘선의’로 포장 되었지만, 소비자 주권과 시장 효율성이라는 근본적인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홀드백 법제화는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 이미 높은 가격과 차별화된 매력을 잃은 경험적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채 6개월 홀드백을 강제하는 것은, 시장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영화관에 인위적인 유예 기간을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관객들은 자신의 시간 가치와 기회비용을 계산하며 결국 6개월을 기다리거나, 시장에 있는 다른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개월이라는 ‘강제 대기 시간’은 소비자의 선택을 무시한 채 비효율을 강요하며, 이어져 관객의 이탈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비효율적인 조치일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장 참여자를 죽이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충분한 관객을 확보하지 못한 영화는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판권을 OTT에 조기 판매하는 방식으로 숨통을 틔워왔다. 만약 규제 때문에 흥행 실패작조차 6개월을 의무적으로 기다려야 한다면, 이는 제작사가 짊어져야 할 비용과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킨다.
Ⅲ. 영화관의 차별화된 가치와 비교우위 원칙
멀티플렉스가 글로벌 콘텐츠 경쟁 시장에 생존하려면 비교우위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비교우위 원칙이란, 각 경제 주체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가장 적은 기회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에 특화하여 시장 진입을 했을 때 전체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시장경제의 기초 원리이다. OTT의 비교우위가 ‘압도적인 가격 효율성과 편의성’이라면, 영화관의 비교우위는 ‘집에서 얻을 수 없는 압도적이고 몰입적인 경험’이다.
현재 멀티플렉스들이 IMAX, Dolby CInema 등 특수 상영관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은 ‘차별화된 경험’ 이라는 영화관의 비교우위를 극대화한 프리미엄 상영관을 만들기 위한 시장경제적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만족에 머무는 것이 아닌, 일반 상영관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비교우위를 다수에게 확장할 때 시장으로부터 선택의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Ⅳ. 결론: 선의의 규제, 유일한 해결방안은 아니다.
시장경제는 비효율적인 산업을 제거하고 새로운 혁신을 탄생시키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성장한다. 홀드백 규제는 이 자연스러운 창조적 파괴 과정을 늦춰 산업의 활력을 잃게 한다.
멀티플렉스들은 정부의 보호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소비자 선택’이라는 시장의 심판대에 스스로 도전해야 한다. 경쟁과 이윤 추구라는 시장의 원칙이 영화관의 비교우위를 극대화하도록 이끌 때, 다수를 위한 혁신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성장과 혁신은 정책의 ‘보호’가 만드는 안일함이 아니라,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시장의 본질적인 원동력에서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