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면 국회는 예산 정국으로 접어든다. 재정건전성(Fiscal Condition) 개념을 다시 꺼내보고자 한다. 물론 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국가재정법 제1조에 따르면, "이 법은 국가의 예산·기금·결산·성과관리 및 국가채무 등 재정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효율적이고 성과 지향적이며 투명한 재정 운용과 건전재정의 기틀을 확립하고 재정 운용의 공공성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즉, 건전재정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러면 모호성(ambiguity)을 특징으로 하는 재정건전성의 적정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세계적 기준으로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80% 수준으로 제안되고 있다. 한편, 준기축통화국이나 기축통화국은 일찌감치 100%를 넘겼다.
하지만 적정 수준이란 게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일률적인 잣대는 없다고 본다. 외환이나 금보유 규모, 환율, 경제적 펀더멘털 등 다양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
나라빚과 가계빚은 특성이 다르지만, 미래 재정을 담보로 해 이자를 내고 돈을 가져다 쓰는 건 동일하다. ‘나라빚은 안 갚아도 된다’거나 ‘국민들이 갚는 게 아니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우리나라의 재정은 건전한 편이 맞다.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4년 기준, 46.1%로 세계적 기준이나 일반적인 재정 상식으로도 건전재정을 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증가속도가 문제다. 윤석열 정부에 잠시 주춤했지만 확장재정 기조는 지난 1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15년 34%였으나, 2024년 46%로 9년간 12%p 증가했다.
코비드 때 현대화폐이론(MMT) 학자들이 돈을 대량으로 찍어내도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코비드 때 푼 돈으로 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결국 높은 물가에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천정부지 집값과 전월세는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즉, 현대화폐이론이 틀렸다는 결말에 이르렀다. 지금 쓰는 현금성 재정 지원과 지출이 미래에 고통으로 돌아온다는 학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GDP대비 국가채무 수준은 50%까지는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국가채무를 좀처럼 줄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점차 증가한다는 것이다. 가계나 개인 사이에도 원래 쓰던 씀씀이를 줄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국가는 경직성 경비를 한번 늘려버리면 줄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물가 상승에 따라 그 지출이 함께 올라가는 건 당연지사다.
회계는 세입과 세출로 구성된다. 거둬들인 수입만큼 지출해야 건전하다. 정부는 당장 증세는 어려운 반면, 더 많은 성과를 낼 욕심에 세입보다 세출을 더 하기 위한 적자국채를 발행하게 된다.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치기는 하나 추경을 통해 국채를 수시로 발행하는데 정기 예산 국회 때보다 그 견제가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재정건전성은 법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공공경제와 재정운용 차원에서도 반드시 관리해야 된다. 줄일 수 없다면 감소세라도 늦춰야 한다. 세입을 고려한 세출, 50% 초반대 수준 국채비율 관리가 요구된다. 필요하다면 증세를 해야겠으나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