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시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큰 변화를 겪어 왔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되면서 소비 방식도 달라진 반면, 오프라인 점포는 지역 생활편의를 담당하는 역할로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규제는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대 초반 전통시장 보호를 취지로 출점 제한, 영업시간 제한, 월 2회 의무휴업 등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규제가 시작됐다. 소비 흐름이 온라인으로 크게 이동했고, 오프라인 점포들은 인건비와 재고 부담으로 오히려 쇠퇴 압력을 받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지 않는 제도는 오히려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실제 오프라인 점포의 수요는 직장인과 맞벌이 가구가 퇴근하는 저녁 시간대에 높다. 그와함께 일요일 의무휴업이 오히려 생활의 불편을 키운다는 경험담도 적지 않다. 최근 새벽배송 제한 가능성이 거론되자 육아·맞벌이 가구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규제가 시대 흐름과 어긋나면 그만큼 소비자 불편과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SSM의 상당수는 가맹점 형태로 운영된다. 지역 소상공인들이 직접 점포를 관리하는 구조다.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설계된 규제가 결국 지역 가맹점주에게 부담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 연구에서도 정책 전제 자체가 이미 달라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32개 품목 중 26개에서 대형마트와 중소슈퍼 간 가격 대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대형마트는 대량·정기 구매 중심, 중소슈퍼는 소량·수시 구매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양 업태가 경쟁 관계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 '대형점 규제 → 중소상인 보호’ 접근은 실제 시장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즉, 오프라인 점포의 영업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 주변 상권을 활성화하는 데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결과다.
글로벌 주요국들도 대형유통업체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로 인해 매출 증가·고용 확대·소비자 후생 증대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처럼 전통시장 보호를 이유로 대형마트·SSM 영업을 강하게 제한하는 국가는 드물며, 전통시장과 중소유통업체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SSM 규제 역시 유지와 연장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생활권에 밀착한 점포까지 일률적으로 묶는 방식은 한계가 크다. 지역 여건과 품목 특성, 소비 패턴 등을 반영한 정교한 접근이 요구된다. 규제가 너무 강하면 소비자 편의가 줄어들고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규제가 지나치게 약하면 공정한 경쟁이 흔들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찾는 일이다.
유통업의 발전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의 확대에서 비롯된다. 다양한 형태의 점포가 경쟁하는 구조에서 나온다. 지역과 온라인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에서도 나온다. 시장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제도도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10년 전 만들어진 틀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된다. 변화한 환경을 반영한 유연한 규제가 필요하다. 그래야 미래의 유통 생태계를 준비할 수 있다.
이호경 자유기업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