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명: 자공비(자유주의 공부해서 비상하자)
도서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범위 : 5장, 6장
일시 : 2024년 11월 12일(화) 20시 30분
장소 : 온라인 네이버 웨일온
참석자 : J, mori, 자유, 본투런, 티베리우스, 나누리, 소라, 삭동이
작성자 : mori
5장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
나는 미래를 보았다
-착취적 제도는 착취할 만한 부를 창출해야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기술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지속적인 성장이 아니라 기존 기술에 바탕을 둔 성장
-소련이 공업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워낙 낙후된 공업 기술 때문이기도 했다. 공업 부문의 자원 재분배는 비효율적이고 강압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기술 격차가 워낙 심해서 성장의 여지가 컸다는 뜻이다.
-소련의 성장이 워낙 빨라 많은 서방인들이 착각 ; CIA도 흐루쇼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의 잘못된 예언 ; 대학교재 1961년판 소련 국민소득이 미국 추월 1984년경, 1997년 확실시 / 1980년판 2002년,2012년
착취적 제도의 한계
-두가지 이유로 지속 가능한 기술 변화 못가져옴 ; 경제적 인센티브 결여, 엘리트층의 반발
-스탈린은 1931년 초반 이미 금전적 인센티브 없어도 기꺼이 일하는 &사회주의 남성, 여성&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
-이 장에서는 착취적 제도하에서 그럭저럭 중앙집권화를 확립하고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의 성격을 살펴본다
-기술적 발전이 따라주지 못할 뿐 아니라 착취의 수혜를 노리고 정권을 잡으려는 경쟁 집단의 내분을 부추기기 때문에 착취적 제도를 통한 성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카사이 강기슭의 두 부족
-가난한 렐레 부족 vs 부유한 부숑 부족
-1620 샤이암 정치혁명 부숑 부족을 중심으로 쿠바왕국 건설
-샤이암은 포용적 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중앙집권화가 되고 법질서를 강행하는 착취적 제도로 일정 부분 경제적 번영 달성
샤이암 왕의 치적은 착취적 제도를 통해서도 제한적이나마 어지간한 경제적 성공은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 성장을 위해서는 중앙집권화된 정부가 필요하다. 중앙집권화는 정치혁명이 필요할 때가 많다.
-렐레부족은 왜 샤이암 같은 왕이 출현하지 않았을까? ; 역사의 우발적 성격
최초의 농경사회
-완두콩과 렌즈콩을 재배한 게 왜 유독 나투프인 뿐일까?
-정착생활은 장점과 함께 단점도 있다. 정착생활이 무리에게 더 바람직하다는 증거는 없다
-정착생활이 가능해지려면 먼저 수렵 채집인을 강제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 혁신이 선행돼야 ; 그런 제도적 혁신으로 권력을 쥔 정치 엘리트가 사유재산권 집행, 질서 유지, 지위를 통한 사회 구성원 자원 착취
나투프인의 제도적 혁신
-나투프인은 농사를 짓기 오래전부터 (착취적 제도의 출발이라고 여길 만한) 계급과 질서, 불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복잡한 사회를 발달시켰다
-정치적 엘리트의 등장은 먼저 정착생활에 이어 나중에는 농경으로 이양하는 토대가 되었을 것
-정착생활을 한다 해서 반드시 농경과 목축이 수반된 것은 아니었다
-즉, 농경으로 이양하기 이전에 이미 제도적 변화가 생겨났고, 정착생활로 옮아간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 정착생활에 이어 농경사회로 이양하는 기반이 되는 제도적,사회적,정치적 혁신을 경험한 결과
-다른 지역들이 더 오래 걸린 것은, 정치적 엘리트가 이런 결정적 분기점을 활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
-나투프의 초기 성장이 지속되지 못한 것은 소련의 성장이 흐지부지된 이유와 같다 ; 누가 제도를 장악해 착취의 수혜를 입을 것인가를 두고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안정한 착취
-마야 도시국가 ; 기원전 500년경 마야 도시 처음 발달. 기원후 1세기 초기 도시 실패
-마야의 도시들은 제국으로 통합된 적이 없다
마야문명의 붕괴
-착취적 제도가 창출해내는 부를 노린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착취적 제도를 등에 업고 소수 엘리트층이 지배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었을 뿐 아니라, 인민으로부터 착취한 부를 나눠 가지는 자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착취적 제도 하에서 제한적인 번영을 이룩하면서도 소수 엘리트의 손에 그 결실을 쥐어줄 수 있다 ; 이런 성장을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중앙집권화가 필요
정치권력을 중앙집중화하려는 욕구는 착취적 성장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착취적 제도를 통한 성장은 단명한다
내부 분쟁과 불안은 착취적 제도에 반드시 수반되는 태생적 특징이며, 비효율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중앙집권화된 정치권력을 와해시키기 일쑤이며, 심하면 법과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려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중국 역시 공산당 통치하에 있기 때문에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을 경험한 또 다른 사례
6장 제도적 부동
역사는 제도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제도적 부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은 차이일지라도 결정적 분기점과 상호작용을 통해 역사의 큰 물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워낙 작아 반드시 단순한 축적 과정의 산물이라 할 수도 없다
베네치아가 박물관이 된 사연
-1330년경 베네치아는 파리에 견줄 만하고 런던의 3배되는 도시로 부상
-경제제도를 포용적 방향으로 이끈 잇따른 계약 혁신 ; 코멘다(합자회사)
-정치제도의 혁신 ; 대평의회 창설, 도제 지염 위원회 창설, 도제의 권력 제한 위임 선서
베네치아 폐쇄
-1315 대평의회가 사실상 외부인에게 문을 닫아 걸고 초기 의원은 세습귀족화 (나쁜 변화의 악영향은 몇십년 뒤에 나타난다)
-코멘다 계약 금지
-1314 정부 무역 장악 국유화
-1324 개인이 무역하려면 높은 세금을 물어야. 장거리 무역은 귀족의 전유물 (소수 엘리트가 주요사업 독점)
-1500년경 인구 10만까지 급감. 1650-1800년 사이 유럽인구는 늘었으나 베네치아 인구는 오히려 줄었다
1.포용적 제도를 향한 움직임은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포용적 제도가 후진할 수 있다는 것은 제도적 개선이 단순하게 축적 과정을 거쳐 차곡차곡 쌓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2.결정적 분기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은 제도적 차이는 본디 오래갈 수가 없다. 작아서 번복될 수 있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가 재차 번복되곤 하는 것이다.
-로마의 경우 ; 로마의 몰락이 서유럽 제도 발달의 분기점이 됐다
-로마의 몰락은 봉건주의로 이어졌고, 그 부수 효과로 노예제도가 시들, 군주와 귀족의 통제권 밖의 도시 형성, 그 과정에서 지배층의 입김이 약화된 정치제도가 줄지어 도입
로마의 미덕
-BC510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정 수립
-왕->집정관/원로원/민회의 권력 삼각구조
-공화정 출범후 민회의 권한은 그대로인데 원로원과 집정관의 간격이 줄어 힘의 균형이 무너짐. 평민과 귀족 간 갈등 심화 ; 해소위해 평민 출신 호민관 선출(집정관의 결정에 거부권 행사할 권리). 이 권한은 일탈, 즉 평민 특히 병사들의 파업으로 얻어짐
-경제성장, 지중해를 통한 무역 융성
미덕의 한계
-노예제도 널리 확산되었고 대단히 착취적이었다. 원로원 계급의 엘리트층이 경제와 정치를 모두 장악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공화정 무너뜨림 ; 공화정에서 원수정, 노골적인 제정으로 이양하면서 경제적 성공의 토대를 마련한 정치제도의 부분적 포용성이 훼손. 이후 몰락의 길로
로마의 패악
-로마제국 후기 ; 로마 엘리트증은 야만족 수장을 달래려고 애썼다. 이는 로마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부 권력 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일 때가 많았다
로마의 몰락
-몰락의 연원은 아우구스투스의 권력 찬탈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평민의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해주던 핵심 요소 제거. 권력의 중앙 집중으로 로마 평민의 사유재산권 줄안
-제국이 발달하면서 평민들이 노예나 다름없는 소작농 처지로 전락해 농사꾼이 갈수록 늘었다. 또한 소작농에 대한 지주의 권리도 계속 늘어났다
-로마시대 신기술 개발과 확산은 정부가 주도했다. 정부가 기술 개발에 냉담해지면 사정이 급변
-창조적 파괴의 후폭풍도 우려
-공화정 당시 지배층보다 로마황제가 변화를 막기 위해 휘두른 권력이 한층 강력했다
-노예제도 만연으로 기술혁신 결여 ; 로마에서 생산을 담당한 계층은 노예, 훗날엔 준노예 신분의 소작농이 가세
빈돌란다의 사례
-로마의 최변방 빈돌란다(잉글랜드)는 포기되고 몰락한 낙후된 지역. 하지만 여기에서 산업혁명이 시작 ; 잉글랜드의 발전은 역사적으로 정해진 운명도 아니고 다른 길을 향한 역사적 뿌리가 깊지 않다
갈림길
-서로마제국의 멸망이 결정적 분기점 ; 봉건제 형성
-당시의 봉건제는 중앙집권정부의 쇠퇴로 지방분권적, 노골적으로 착취적
-봉건제의 다른 의미 ; 농촌인구가 농노로 전락하면서 유럽에서 노예제도가 사라짐, 생산과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독립도시가 번성할 수 있는 권력 공백 조성
-아프리카 악숨왕국에서 발전한 에티오피아 ; 외부와 단절되어 독자적인 전제주의 제도가 도전을 받지 않음
-대서양무역도 결정적 분기점 ; 잉글랜드에서는 노예무역이 절대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오히려 절대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강화하는데 기여
-아메리카에서는 유럽식민주의를 겪으며 부유했던 지역이 더 가난해지는 &행운의 반전& ; 고도로 발달된 멕시코,페루,볼리비아의 문명에 한참 뒤진 미국,캐나다가 부유해짐짐
초기 성장의 영향
-신석기혁명(BC9500)~잉글랜드산업혁명(18세기후반) 사이 급속한 경제성장들 ; 제도적 혁신에 의해 급속히 성장했으나 이후 결국 실패
; 고대로마 공화정, 베네치아등
-로마의 유산이 잉글랜드의 포용적 제도나 산업혁명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았다. ; 역사적 요인들의 영향으로 제도가 발달하지만 미리 정해진 축적 과정을 거치는게 아니다.
-역사는 제도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제도적 부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 작은 차이라도 결정적 분기점과 상호작요을 통해 그 차이가 증폭돼 역사의 큰 물줄기가 만들어지기도 ; 이 차이는 워낙 작아 되돌려질 때가 많으므로 반드시 단순한 축적과정의 산물이라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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