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규제의 길목에서: 플랫폼법과 독과점을 둘러싼 논쟁

안혜성 / 2024-05-10 / 조회: 2,167

'독과점(獨寡占)기업’ 이름만 들어도 꺼림칙하다. 독과점기업은 하나 또는 소수의 기업이 가격이나 수량에 독점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누리는 기업을 말한다. 이들은 속된 말로 때려잡아야 하는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여겨지며 이들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시대와 관계없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주된 근거는 독과점시장에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기업들에 진입장벽이 있어 경쟁이 제한되고, 이는 곧 가격 담합, 혁신 감소 등으로 이어져 시장가격이 상승해 소비자 잉여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근거로 규제를 당한 기업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멀리는 자사 PC에 운영체제나 프로그램 등을 끼워 팔던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있으며, 가까이는 우습지만 '유통대기업 독과점 방지’라는 명목으로 규제를 당한 국내 대형 마트들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독과점은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죄악시되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독과점에는 단점만 있는 것인가?


아니다, 독과점이 가져오는 장점도 있다. 먼저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는 기업들은 경쟁이 약한 상황에서 더 많은 투자에 집중할 수 있다. 스스로 생산 및 유통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조정하여 유통 비용을 줄인다든가, 후에도 언급하겠지만 기술 혁신에 대폭 투자해 상품 및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등 말이다. 독과점 시장에서의 가격 안정성으로 구매할 때 소비자의 정보 수집 비용이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독과점은 영원하지 못하다. 시장지배적 지위를 누리다가 기술의 발전이나 산업변화 등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망한 기업들 사례는 생각보다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블록버스터는 1990년대 비디오 대여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졌으나, 온라인 스트리밍과 디지털 다운로드와 같은 기술 발전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부족하였고, 결과적으로 넷플릭스와 같은 기업들에 밀려 현재는 단 하나의 매장(The Last Blockbuster)만이 관광지처럼 운영되고 있다. 또 다른 예로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스마트폰의 등장에 따라가지 못한 기업들을 들 수 있다. 해외에서는 노키아와 블랙베리, 국내에서는 초콜릿폰. 프라다폰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3위까지 올랐던 LG가 그 대표적인 예다.


터놓고 말하면, 모든 기업의 목표는 시장지배적 위치에 오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목표에 달성한 뒤 안주하면 결국 쇠퇴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독과점적 위치에 올랐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의 경쟁보다 더 치열한 자신, 그리고 시대와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로 유명한 요셉 슘페터 역시 경쟁 상태에서는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독점적 위치에 오르게 되고, 혁신이 지속되지 않는 한 그 독점은 일시적일 뿐이라고 역설하며 혁신을 통한 독점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꾸준히 투자하여 혁신을 거듭해 지속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모범적 기업들이 존재한다. 미국의 경영컨설팅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이 2023년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50개 기업’의 순위를 보면, Apple, Tesla, Amazon, Alphabet, Microsoft가 각각 1~5위를, 우리나라의 삼성은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비즈니스 잡지 Fortune에서도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10개 기업’ 내에 Apple과 Alphabet, Microsoft를 포함했다. 독점적 위치에 오르면 혁신을 멈춘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좋은 증거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독과점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통한 횡포이지 시장 지배력 그 자체가 아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플랫폼 독과점을 제한하고자 하는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입법 여부가 뜨거운 감자이다. 이 법안에서는 네이버·카카오 등이 규제 대상으로 원래 입법 목적대로라면 벤처·스타트업계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벤처·스타트업계에서는 플랫폼법이 '지배적 사업자 사전지정’하는 사전규제로써 플랫폼 기업들의 혁신 시도를 위축시킨다고 말한다. 또한 플랫폼 시장을 국내뿐이 아닌 세계로 넓게 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 기업들의 공세를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고, 플랫폼법은 역차별을 통해 국내 대기업들을 주저앉혀 종래에는 국내 스타트업들을 외국 기업에 종속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가까이 보면 이미 국내 OTT시장은 망·세금·규제로 역차별당해 Netflix나 Disney+ 등의 외국 기업들로부터 시장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우리는 규제로 인해 글로벌 기업들에 잠식당한 OTT 시장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플랫폼법을 계기로 독과점과 혁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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