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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드러낸 사회적 반지성과 비합리성

배민 / 2021-08-23 / 조회: 781

지금까지 코로나에 대한 방역 조치는 확진자 수에 따라 단계가 변화되어 오긴 했지만 대중은 계속, 아니 점점 더, 그리고 단계적으로 코로나에 붙잡혀 살아오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코로나에 붙잡혀 살아가게 될까? 나는 코로나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사회가 비이성성을 심각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선 크게 세 가지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하나는 코로나 감염 자체의 심각성에 관한 대중의 비이성적 공포인데 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병에 대한 매우 환원론적 시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 하나는 방역 조치의 비이성성이다. 전체주의적 방역 조치에 대해 대중은 순순히 따를 뿐 자신들이 무엇을 상실해 가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의 편향성인데, 이는 거대 매체들과 정부에 의해 코로나 관련 정보가 편파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다.


코로나에 붙잡힌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코로나에 걸린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대부분 건강한 사람이라면 감기처럼 며칠 앓다가 완치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연간 2만~6만 명이 독감이나 감기, 폐렴 등으로 사망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들 질병이 치료가 되지 않는 무서운 병이라서 사망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기저 질환자이거나 오랜 지병을 가진 고연령층으로, 쉽게 말해 감기 바이러스가 사망을 초래한 것이라기 보다는 감기 바이러스 정도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몸 상태의 면역이 약화되었기에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들도 알고 있다. 병을 이기는 것은 인간의 면역력에 가장 중요하게 기반을 둔다는 것을. 의료적 처치는 도움을 주는 수단일 뿐이며 결국은 환자 자기 자신이 병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응급적 처치나 외과적 시술 등 특별한 상황에서의 의학적 치료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와 달리 감염 질환은 애당초 면역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새로운 사실도 아니고 19세기 유럽의 의사들이 콜레라나 결핵 등 전염성 질환에 대해 다루던 주된 의학적 토론 주제였다. 19세기 결핵은 당시 유럽에서 무시무시한 질병이었다. 치사율이 40%에 육박했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군인이건 노인이건 걸리면 1/3 정도는 모두 사망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의학 지식, 병원 진료, 방역 정책 등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의학과 위생의 측면에서 볼 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고 있다. 항균제와 소독제는 어디든 널려 있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고 살아간다. 다른 한 측면에서 바라보면, 바이러스나 세균은 인류와 함께, 자연 속 어디든 존재해 왔는데, 새삼 이들이 인간의 적인 양 몰아세우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실제 걸린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니 치사율을 통계 내는 것이 힘든 상태이다. 현재로서는 높게 잡아도 치사율은 1%가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무시무시하게 발표된 수많은 사망자 수(특히 미국의 경우)에 사람들은 겁 먹었지만, 기저 질환이나 면역 상태가 현저히 약화된 사람들이 감기나 폐렴으로 사망하듯 코로나로 사망한 것이었다. 연간 많은 숫자로 기록되는 폐렴 사망자, 독감 사망자 등과 그 본질에서 차이가 없다. 


하지만 융단 폭격으로 계속적으로 쏟아지는 확진자수 등 통계 숫자들의 실제 의미에 대해 의학적인 본질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사람은 없다. 단지 그 숫자들 때문에 강제적으로 경각심을 가지게 되고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내 눈에 비친 이러한 광경은 온통 비이성성으로 얼룩진 모습이다. 고작 이정도 바이러스에 전 사회가 락다운을 걸고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면 앞으로 인류는 그냥 서로서로 상대의 발병 여부를 감시 혹은 의심하면서 철통같이 스스로를 타인으로부터 차단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니, 차라리 무균실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사회가 흘러오게 된 근본 요인 중 하나는 전체주의적인 방역 정책에 있다. 작년 내내 코로나로 인해 선진국을 위시한 각국들이 다 이런 전체주의적 방역 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쳤었다.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자국 정부가 비난을 받는 모양새였다. 여기에는 여당과 야당에 차이도 없었다. 서로가 보다 철저한 방역을 하고 있다고, 또는 하지 못하고 있다고 싸워 댈 뿐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했다. 이러니 경쟁적으로 철저한 방역을 (당연히 철저히 방역을 하려다 보니) 전체주의적으로 시행했던 것이다. 마치 1,2차 대전 당시 국민 국가들 간의 총력전 양상이 나타나게 된 것과 비슷하게 방역 정책도 개별 국가의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총력전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코로나 방역과 관련하여 개인주의자인 내가 가장 눈여겨 보는 부분이 바로 마스크 착용 강제 정책, 그 중에서도 코를 마스크로 덮어 쓰도록 하는 지침인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영국에서 17, 18세기 발전해 나간 개인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사적 재산권을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이후 개인의 권리에 대한 법적 관념이 발달하면서 그 대상은 눈에 보이는 토지와 저택 뿐 아니라 개인에게 귀속될 수 있는 모든 것, 즉 신체, 감정, 사상, 믿음의 자유 등을 총 망라하게 된다. 근대 국가에서 개인주의는 이러한 개인들의 법적 권리를 기본 전제로 하는데, 그 가장 기본은 역시 신체의 자유일 것이다. 특히 신체의 자유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자유로이 숨 쉴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마스크로 코를 덮도록 강제하는 지침은 여기에 정면으로 위배 된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방역의 강제성 간 논란은 해묵은 논쟁 사안이다. 정답은 해당 질병이 초래하는 사회적 심각성에 따라 그 때 그때 다르다일 것이다. 가령 현재 진행형으로 아프리카에서 창궐하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는 치사율(50-90%)이 매우 높으므로 강력한 방역 정책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처럼 낮은 병독성(virulence)를 보이는 질환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심각하게 위배하는 정책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안전이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오히려 주위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기침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한국인들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비말이 상대에게 튀는 것에 대한 위생학적 경각심과 사회적 에티켓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회나 국가라면, '타인을 배려하여 기침 혹은 대화 시 상대에게 비말이 튀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랍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왜 굳이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여야 하며, 마스크 착용시 입과 코를 완전히 차단하여야 합니다'라고 강제해야 하는가? 


마스크로 입을 가리는 것은 사회적 협조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의 표현일 수 있지만, '마스크를 코까지 덮도록' 강제하는 것은 심각한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이다. 이 차이를 모르는 것일까? 내가 내 코를 마스크로 차단한다고 해서 내 코에서 나온 숨이 어딘가로 사라지지는 않으며, 내가 외과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중이 아닌 바에야 마스크로 내 코를 안 덮는다고 타인의 감염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 몸에서 나오는 노폐물을 하루 종일 재흡입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할 리 없고, 산소 부족은 암 등 각종 질환의 발생과 관계된다는 이론도 있다. 무엇보다 마스크로 인해 원활한 호흡의 제한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연구, 가령 마스크 착용자와 미착용자 간의 장기적인 비교 대조군 연구는 이루어진 바 없다.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유해하지 않다고 볼 근거는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바이러스 걸려서 며칠 고생하는 것과 2년이나 신선한 공기를 제대로 흡입하지 못하고 마스크 안의 부족한 공기를 재활용하고 살아야 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건강에 해로울까. 


하지만 이런 의학적 문제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는 단순히 건강이나 편리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기본적 권리와 독립된 개인성의 존재 자체가 위협 받는 상황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고 살 권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권리이다. 모든 생명은 숨을 쉬고 살아간다. 숨 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것은 개인의 모든 기본권을 침해하는 첫 시작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과 각종 매체에서의 코로나 관련 정보의 편파성 문제이다. 매일 암으로, 교통사고로, 자살로, 그리고 수많은 다른 질환 등으로 사망자가 끊이지 않는 사회에서 유독 코로나는 (사망자 수도 아닌) 확진자 수가 연일 발표되는 특별 대우를 2년째 받아오고 있다. 또한 구글이나 유튜브, 그리고 한국에서도 주류 언론 매체는 결코 내가 위에서 얘기한 코로나 관련한 '다른 의견’(different opinions)에 대해 전하지 않는다. 분명 전문가들 중에서도 정부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많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 코로나 방역 정책을 사회적으로 모두가 동의하고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지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다. 


코로나와 관련해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러한 정부나 주류 매체와 다른 의견은 미신(myths), 음모 (conspiracy), 가짜 정보 (fake news), 비과학적 믿음 등으로 치부되고 있는 모습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되는 것은 진지하게 전문가적으로 제시된 '다른 의견’이 아닌, 방역에 대한 주류 의견을 (오로지 유일한 진실인 마냥) 소개하는, 혹은 단순히 일반인들이 혼동하는 잘못된 정보나 허위 사실 등에 대해 비판하거나 해명하는 (따라서 전문가가 볼 때는 뻔한) 글이나 동영상 뿐이다. 실제로 코로나 질환이나 방역에 대하여 심도 있게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글이나 정보는 그러한 단순한 비전문적이고 비과학적인 허위 정보 글과 도매급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즉 사람들이 코로나에 대해 어떤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그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글이나 동영상들은 거의 검색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자세히 알려고 해도 극히 접하기 힘들다. 마치 대단히 위험한 사상을 취급하는 사회의 모습과도 같다. 내가 틀릴 수 있는 확률은 언제나 존재한다. 


코로나는 갈수록 사회에 많은 상흔을 남길 것이다. 무엇보다 불필요하게 전체주의적으로, 다른 의견을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차단해온 모습은 현재의 방역 정책이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들게 하기 충분하다. 인류 정치사에서 등장했던 모든 전체주의 정권들은 자신들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생명과 목숨을 보호하는 절대적 책임을 행사한다는 명분을 주장했다. 


하지만 독감과의 차이에 대한 어떠한 합의된 학문적 근거도 불분명한 코로나 정도의 감염 질환에 개인의 가장 치명적인 기본권의 시작인 '코로 숨을 쉴 권리'조차 침해 받는 사회, 이것이 비이성적 사회의 모습이 아니라면, 나는 다른 어떤 더 비이성적인 인간 사회의 모습도 찾기 힘들 것 같다. 


숭의여고 역사교사 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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