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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이 코로나 한국사회에 주는 의미

배민 / 2020-12-09 / 조회: 2,074

어렸을 때 티비에서 방영하던 5공 청문회를 시청하던 시절이 기억난다. 그 때는 어렸기에 (5공 청문회의 스타였다고 하는) 노무현이 누군지, 어떤 사람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 잘 알지도 못했고 내 알바도 아니었다. 당연히 청문회의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막연히 저런 걸 왜 하는 걸까, 그리고 저 사람들은 무엇에 저렇게 분노를 하고 싸움하듯 발언하는 걸까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치대를 졸업하고 섬 보건지소에서 치과 공중보건의사로 일하면서 마을 노인정에 있던 작은 도서장의 책들을 열심히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같이 근무하던 공중보건의사 선생님이 사법고시에 관심이 있어 법전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그 초라한 도서장의 책들 중에 '토마토 농사법’ 옆에 꽂혀 있던 자그마한 책 한권이 내 눈에 들어왔다. 루돌프 폰 예링이라는 독일 법학자가 쓴 '권리를 위한 투쟁’의 한글 번역본이었다. 20대 내내 사회주의 세계관에 젖어 살면서도 권리라는 개념에 대해 한 번도 치열하게 인식해 본적 없었던 나는 그 책을 읽고 막연히 어렸을 때 울분에 참지 못해 국회에서 고성을 지르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대학 시절의 청년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 시절의 나 역시도 경험론보다는 합리론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자연법적 법철학을 논하기 이전에 영국의 개인주의적 사적 자치의 전통, 특히 로크(John Locke)의 자유주의 사상을 만나기 이전이었다. 즉 머리 속의 생각으로 법적 권리에 대한 추상적인 이미지는 그려졌지만, 그러한 생각이 내 인생 경험이나 내 자신의 인식체계와 결부되진 못했다. 나중에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권리를 위한 투쟁’의 정신적 원조는 마그나 카르타를 만들어낸 영국인의 역사 속에 더 분명하게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미국 대선과 관련해서 필라델피아를 비롯해 몇몇주에서 청문회(public hearing)을 열고 증인들이 참석하여 여러가지 대선 부정의 정황들에 대해 증언을 하는 모습을 유튜브로 보게 되었다. 청문회장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의 감정을 반영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이번 대선에서 조지아주의 분위기가 보여주듯 여당인 공화당과 워싱턴 행정부의 관료들로부터도 전적인 지지를 받아 내지 못하는 트럼프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주류 언론의 외면과 왜곡보도에 대한 분노어린 열정을 터뜨려 내고 있었다.


나 역시 직업의식의 발로로 '사료의 편향성을 경계’해야 겠다는 마음에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반트럼프 진영이라 할 수 있는 영미권 주류언론의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이 이번 미국 대선과 관련해 공통분모로 가지는 일관된 프레임이 어떠한 것인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특히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고 운영하는 미국의 미디어들과 달리 국영 미디어이자 중립성을 추구한다고 자부하는 영국의 BBC가 어떤 기사들을 쓰고 있는지 오랜만에 살펴보았다.


영국 유학 경험으로 대략적으로 영국 미디어들의 정치적 지형은 알고는 있었다. 보는 사람의 사회적 시각이나 철학적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보는 BBC는 가디언(The Guardian)처럼 노골적이진 않지만 그 기자들 대부분의 성향이 소위 PC로 일컬어지는 친좌파적인 성향을 띤다. 간혹 그들은 인터뷰하는 대상이 우파 인사나 지식인인 경우 자신들도 모르게 감정을 이입한 공격적인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이번 미국 대선에 대해서도 BBC의 태도는 철저하게 반트럼프 노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관되게 나타나는 기사의 논조는 트럼프 및 그 지지자들이 아무런 '증거(evidence)’도 없이 선거 부정을 주장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편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지금까지 일관되게 항의해온 것은 법원이 자신들의 증거 제출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증거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검증일 것이다. 이에 대한 선거 관련 기관들의 해명과 트럼프 진영의 주장은 현재 선명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주법원이나 연방법원에서 대부분의 트럼프측 증거들은 제대로 된 재판 심리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트럼프 측 변호사들은 현재 연방대법원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이지만, 하위 법원 수준에서 심리가 되지 못한 증거들을 대법원이 새로이 채택하여 판결을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연히 주류 언론들이야 소위 클락켄을 잡아다 대중 앞에 전시하기 전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딱히 미국 정치에 감정 이입할 정도의 관심은 가지지 않은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미국과 영국의 주류언론이 트럼프에게 좀 심하게 대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BBC 같은 이른바 중립적 미디어들조차 그 태도에는 단순히 감정 이입한 공격적 기사나 방송 내용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가 지난 대선에 승리하고 취임을 하던 2016년에 이미 그런 모습은 확연히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러한 미디어들의 적대적 프레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우파 포퓰리스트(right wing populist)였다. 트럼프 임기 동안 비판받아온 정책들은 불법 이민 현상에 대한 법치 확립 그리고 무역 불공정을 자행해왔던 중국에 대한 강경 대응 등으로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하나 같이 주류 미디어는 그러한 정책의 본질을 외면한채 트럼프라는 인간 개인에 대한 정치적 매장에 전념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영국에 있는 동안에도 미디어들이 그를 이념적으로 단정해버리는 차원(nationalist이자 반자유무역주의자 등)을 넘어서 인격 재판(인종주의자, 여성혐오론자 등)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마치 의식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고 간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국영 언론이 한 정치인을 (그것도 자기 나라 정치인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심하게 몰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5공 청문회에서 왜 사람들은 그렇게 열변을 토해냈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이는 지금의 미국 대선 관련 주 청문회에서 트럼프 변호사들이 울분을 토해내고 있는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5공 시절은 '땡전 뉴스’라는 유행어가 은연중에 쓰이고 있었을 정도로 집권 세력의 반대측 정치인들이 볼 때 자신들의 목소리가 언론에 반영되지 못했던 시기였다. 이후 정권이 바뀌고 국회에서 자신들의 의석수가 늘어나자 비로소 청문회를 통해 그들을 외면해왔던 기성 언론에 대항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지금의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다수의 주류언론이 (심지어 대서양 건너까지) 트럼프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몰아가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요구를 외면해왔던 것에 대한 항변에 가까운 것이 최근 미국 대선 관련 청문회들의 (대선 결과를 떠나서) 본질적인 의미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청문회가 진실을 보장하진 않는다. 가령 5공 청문회는 정말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웠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건 지금 우리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혹은 믿고 싶은, 즉 우리 시대의 신념을 투영하는 것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미국인들의 대선 관련 청문회는 나에게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다 선명하게 직시하게 만들어 준다. 바로 코로나 사태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한국 사회의 병리는 단순히 신문 정치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정치 기사 내용은 대부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악하다’라는 논리가 집단 감성과 만나 만들어내는 진영논리를 그 본질로 한다. 이러한 인간의 편향된 논리와 눈먼 집단주의는 의회 안에서의 정치적 다툼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 (권위와 위선으로 은페하는 것보다) 더 낫다. 한국의 국회와 정당들이 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니, 집단주의의 사회적 병리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처럼 코로나 봉쇄조치(lock down)나 마스크 정책에 반기를 들고 거리와 광장을 메우는 광경은 상상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한국 사회에선 '권리를 위한 투쟁’의 개념 따위는 개인들의 의식 속에 마치 존재해서는 안되는 생각처럼 거의 압사당해 있다. 내 기억엔 지금껏 국가의 코로나 방역에 대한 반대 집회는커녕 사회적 합의를 요청한 시도도 없었다. 물론 언론에선 소위 'K방역’과 관련해 한국인의 공동체의식과 이타심을 치켜 세워 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동의가 되질 않는다. 내 눈에는 그저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마련인 보건 정책의 논쟁성(controversy)에 대해,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개인의 권리에 대해 한국인들은 자신들 개인의 의견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더 나아가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다. 말하기가 너무 위험한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80년대 말 5공 청문회 시절과 비교해서 한국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미국이 아닌 중국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


미안하지만 내 눈에 비친 K 방역은, 온 사회를 마치 미생물이 서식해선 안되는 무균지대로 만들고자 하는 염원 속에 시민 개개인의 면역 능력이 불필요한, 한국인들의 영혼과 육체를 '온실 속의 화초’로 만들어 가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엄격한 의학적 합리성의 기준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Corvid-19)의 병독성(virulence)이나 치사율을 독감(influenza)과 비교할 수 있는 명확히 합의된 근거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감염 증세를 보이든 안보이든 코로나의 침입을 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특별한 치료 없이 자신의 면역력만으로도 일정한 휴식을 통해 완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임상적 기전 역시 독감과 동일하다. 애당초 중국의 거리에서 픽픽 쓰러지던 사람들의 동영상이 만들어낸 사회적 공포심이 초래한 거대한 해프닝으로 훗날 의료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이런 시각에서 코로나 사태를 보면, 미국에선 좌파 성향의 기성(established) 의료기관들과 정부에 적대적인 주류 언론으로 인해 과대 포장되었을 확률이 높은 반면, 한국에선 좌우할 것 없이 공포의 과대포장에 사회 전체가 동참해왔다고도 볼 수 있다. 옛날 5공 시절 평화의 댐 건설 모금 운동이 생각난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코로나 전체주의 방역의 책임은 이후 한국 사회 전체가 함께 져야할 멍에가 될지도 모른다.


숭의여고 역사교사 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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