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진보 시민단체-언론매체 '기소’ 압박
수사심의위 전문성·공정성 논란 키우기
경제계·학계 “삼성 하나 잡자고...비상식적”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때 아닌 '뭇매’를 맞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내리자, 여권과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가 불신감을 드러내며 '기소 강행’을 압박하고 나선 탓이다.
여권과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은 논란을 키우는 모습이다. 몇몇 수사심의위 위원의 이력을 거론하며 심의의 전문성 및 공정성을 문제삼았다. 일각에선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법 적용을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며 이 부회장 기소를 종용하고 있다.
이에 경제계와 학계에서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심의위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고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고자 도입됐다. 이 같은 취지를 부정하면서까지 과도하게 논란을 키우며 입맛대로 법을 재단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제 타격이 지속되는 만큼,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을 흔들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검찰 '빈손으로 못 끝내’…기소 카드 만지작
검찰은 이르면 다음달 1일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권고를 내렸지만, 검찰이 기소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수사심의위의 권고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 최종 판단은 검찰의 몫이다. 다만 '주임검사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된 만큼, 검찰은 2018년 제도가 도입한 이후 8번의 권고를 모두 따랐다. 검찰 개혁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외적’으로 하기엔 부담이 따른다. 더군다나 현안위원 13명 중 10명이 불기소에서 나아가 수사 중단을 권고했다. 삼성을 겨냥한 수사가 장기간 진행되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이 높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검찰로서는 후폭풍을 안고 기소하는 것이므로 명분이 필요하다.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두는 혐의는 자본시장법(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및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수사팀은 1년 7개월 간 50번의 압수수색, 이 부회장을 포함해 430여차례 소환조사를 벌이며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왔다. 이제와 불기소 처분을 내린다면 그동안의 수사 정당성을 부인하는 셈이 된다.
내부에서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재판까지 가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수사팀과 지휘부 사이 이견이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구속영장까지 청구한 피의자를 불기소한 전례는 없다.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에 검찰이 이 부회장이 불구속 기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이 주목하는 부분은 불기소 권고가 혐의 없음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사안이 워낙 복잡해서 짧은 시간 안에 위법 여부를 판단내리기 쉽지 않고, 어려운 경제 환경이 고려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밝힌 사유도 검찰로서는 기소 명분에 힘을 실어준다. 법원은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위원 실명공개까지 도 넘은 삼성 때리기
여권과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부회장 기소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수사심의위의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았을 뿐더러 사기적 부정거래와 시세조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노웅래 의원이 '불공정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법적 상식에 반하는 결정”이라고 했고 노 의원은 “총수 개인을 구제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도 이 부회장 기소를 일제히 촉구했고, 진보 매체들도 각을 맞췄다. 심지어 현안 위원의 실명을 공개하며 '친삼성인사가 참여해 공정한 심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이처럼 과도하게 논란을 키우는 이유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삼성을 본보기 삼아 재벌 길들이기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집요하게 몰아가고 있다. 재벌 해체가 목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국제 회계기준에 따르면 '기업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라’는 원칙이 있고, 기업의 경영권 방어라는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데 '삼성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며 “다른 기업에도 (흔들기가) 도미노로 번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수사심의위는 2년여 동안 ▲기아차 파업 업무방해 피소 사건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직권남용 사건 ▲강남훈 전 홈앤쇼핑 대표 횡령 사건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사건 ▲울산 경찰 피의사실 공표 사건 등 국민적 관심을 받는 사건을 다루며 '전문성’을 일견 인정받았다. 이번 수사심의위에도 회계 전문가와 변호사, 교수 등이 대거 참여했는데, 이들이 검찰과 이 부회장 측 의견서 및 구두 진술 이외에도 고발인인 참여연대가 제시한 의견서까지 두루 검토한 뒤에 혐의 입증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 만큼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심의위 결정은 국민 여론의 축소판”이라며 “검찰은 기소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지만, '무조건 성과를 내려고’ 기소를 강행하는 게 과연 옳은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삼성 편향 논란은 과도하다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원 면면을 살펴보면 반삼성 인사도 다수 포진한 만큼 공정성 논란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번 수사심의위에는 법학교수 4명과 변호사 4명 등 법조인이 8명, 종교인 2명, 교육인 2명, 언론인 1명, 기술인 1명 등 14명이 참석했다. 이 가운데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새해맞이 연대모임’ 남측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종교계 인사, 법조 담당 시절 이 부회장의 재판에 대해 유죄를 예측하는 논조의 기사를 수차례 쓴 현직 언론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변호사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의결권은 없지만, 심의 당시 위원장을 맡았던 이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관련 재판 결과에 대해 “에버랜드 CB의 저가 발행은 애초부터 법리적으로 볼 때에도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증여 목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 유죄로 인정될 소지가 컸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더욱이 위원 선정은 무작위 추첨으로 진행된다. 150명으로 구성된 위원 풀(pool)에서 기계적으로 추첨한다. 외부의 영향력 개입을 원천차단한 것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한 사람들이 검찰을 윽박지르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민주적 절차와 방식으로 진행된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뒤집자고 한다. 상식에 어긋난 일”이라며 “대기업 총수도 법 앞에 평등해야 하는데, 지금 와서 '이재용은 안 된다’고 선별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삼성 하나 잡자고 법치주의 근간을 흔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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