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지원행위 금지에 관한 공정거래법의 조항은 삭제되어야 하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정거래법 또는 공정거래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경제적 효율성 또는 소비자의 후생(이익)이라고 보는 것이 현대 공정거래법학의 주된 흐름이다. 쉽게 말해서 공정거래법은 소비자에게 되도록 값싼 상품과 용역을 되도록 많이 공급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경제적 효율성보다 중소기업의 보호를 우선하는 것은 경쟁이 아닌 경쟁자의 보호(즉 비효율적인 기업의 유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부당한 지원행위를 금지함은 일정 규모 이상의 지원행위가 불공정한 경쟁수단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종래부터 불공정한 경쟁수단으로 금지되어 온 부당한 고객유인 및 부당한 표시ㆍ광고는 보다 효율적인 경쟁사업자 및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일정 규모 이상의 지원행위를 부당한 지원행위로 금지하는 것은 사업자 상호간의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와 생산량 증대라는 소비자후생(이익)과 재벌 계열회사의 이익을 희생하는 대신에 중소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둘째, 재벌은 복수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의 기업이다. 미국, 독일 및 일본을 비롯한 선진 각국과 유럽공동체는 독점금지법의 적용에 있어, 모자회사로 구성된 회사 집단처럼 동일한 집단에 속하고 공통된 지배를 받는 회사들을 그들의 독립된 법인격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경제적 단일체로서 취급하는 단일체이론을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재벌은 복수의 계열회사로 구성되어 있지만 우리 공정거래법도 재벌 전체를 하나의 기업(사업자)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의 회사 안에 존재하는 법인화되지 않은 복수의 사업부서끼리 상호지원하는 행위가 독점금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 듯이 계열회사들의 상호지원 또는 내부거래도 동일한 취급을 하여야 한다. 계열회사들의 상호지원 또는 내부거래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 것은 기업조직을 모두 내부화함으로써 자신들을 보호하게 강요하는 것이며 자회사 설립이 가져오는 비용절감, 기타의 이익이 희생될 뿐 경쟁의 촉진에 기여함은 없을 것이다.
셋째, 현대 공정거래법학은 기본적으로 시장기능을 신뢰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생산적 효율성을 제고하는 행위가 그 기업의 시장력을 강화하여 시장지배력에 이르게 하지 않는 한 일반적으로 공정거래법에 의해 금지하지 않고 허용한다. 그러나 기업이 비효율적이라는 것만으로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여 제재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보통 경제규제라고 부르고 경쟁제한행위를 소극적으로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또는 독점금지법과 구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업이 재화나 용역을 내부에서 조달하느냐 아니면 외부에서 구입하는가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도 경제규제의 성격을 갖는다. 지난 1980년대 이래로 정부가 강조해 온 규제완화 또는 규제개혁은 경제규제를 되도록 축소하고 시장기능에 맡김으로써 정부실패의 위험을 극소화하고 정부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그 기본 취지이지만, 공정거래법의 명목으로 부당한 자금ㆍ자산ㆍ인력지원행위를 금지함은 이른바 ‘규제된’ 규제개혁에 해당한다.
넷째, 부당한 지원행위의 금지는 실효성이 없다. 부당한 지원행위를 금지함으로써 재벌 계열회사와(계열회사가 아닌) 중소기업의 공정한 경쟁을 확보한다거나 지원객체의 시장퇴출이 저해됨을 방지하는 것은 거의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는 정상가격에 의해 이루어지는 거래는 공정거래법에 의해 금지되지 않으며, 재벌은 이윤극대화 또는 시장점유율 극대화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지원행위를 할 것으로 예상되고, 또한 탈법행위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표면적으로는 정상가격에 해당하는 거래조건으로 거래하되 대가의 지급을 유예하여 주는 방법으로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의 적용이 불가능하다.
표면적으로는 정상가격에 의한 거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원하는 행위인 경우까지 금지하는 것도 실효성은 없다. 실질적인 지원행위인가의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서는 계열회사간의 거래 모두를 심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하고, 계열회사 사이의 거래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거래비용의 절약을 반영하는 가격 차이를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인원과 예산 및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며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행위인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다섯째, 상호지원으로 인한 경쟁제한은 여타의 조항으로도 금지할 수 있다. 지원행위에 힘입은 재벌 계열회사의 공격적인 영업행위가 부당염매, 기타의 경쟁제한적 효과가 있어 시장독점을 형성 또는 유지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단일체이론에 의해서 그리고 부당염매행위로서 금지할 수 있고 부당한 지원행위라는 새로운 불공정거래행위 유형을 신설할 필요는 없었다.
여섯째, 공정거래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보호는 사회 전체의 이익 또는 소비자후생과 합치될 때에만 정당화되는 것이며 공정거래법은 중소기업보호법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보호는 중소기업 관련법제에서 추구할 사항인 것이다. 개방경제체제에서는 중소기업 관련법제에 있어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평적 경쟁관계에 착안하여 중소기업을 오로지 경제적 약자라고 보고 보호ㆍ육성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으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올바른 정책을 세울 수 없다.
기업의 업종 다각화와 이에 수반하는 계열회사간의 내부거래가 비효율적이라면 이를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쟁의 압력을 부과하는 것이다. 비효율적인 기업경영에 대한 견제를 하기 위해서는 기업인수ㆍ합병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한편,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경영을 보장함으로써 금융기관 스스로 부실대출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