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청년일보]
【 청년일보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기업인들 사이에서 영업기밀 유출 등 부작용 우려가 컸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국회 증감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가운데,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해당 법안을 재발의에 나설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계 안팎에선 국내 반도체 양대산맥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기업 내 주요 경영정보 및 핵심 기술이 유출될 위험이 있다며 사실상 이를 '반(反)재계 법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23일 정치권과 재계 등에 따르면 한덕수 권한대행은 지난 19일 국회 증감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정청래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국회 증감법 개정안은 앞서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9명 중 찬성 171명, 반대 96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된 바 있다.
한 권한대행은 거부권 행사 이유에 대해 "헌법상 비례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해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면서 "기업 현장에서도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증감법 개정안은 국회가 증인·참고인 출석이나 서류 제출을 요구했을 때, 개인정보나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즉, 기업 영업기밀에 해당하더라도 무조건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국정감사·조사 때만 할 수 있는 동행명령장 발부 범위를 국회 상임위 안건 심사 회의 및 청문회까지 넓혔다. 해외 출장과 질병 시에도 화상 연결 등을 통해 국회에 원격 출석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6단체는 만약 해당 법안이 그대로 실행될 경우 기업의 핵심 기술 유출 우려 같은 부작용이 있다며 지난 17일 국회에 재검토를 요청한 바 있다.
경제6단체는 당시 공동성명을 통해 "해당 법안은 기업의 경영활동과 국가 경쟁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국회 요구 자료 의무 제출은) 기업의 기밀 및 중요 핵심기술이 유출될 위험이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핵심 경쟁력이 약화할 우려가 크다"고 역설했다.
이어 "국내에 투자한 외국기업들도 영업비밀 유출을 우려해 한국에서의 사업 지속 여부를 고민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부연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가령 반도체와 배터리 등 미래 첨단산업의 영업비밀 제출을 의무화할 경우, 중국 등 경쟁국 기업들에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시도때도 없이 기업인들의 출석을 요구할 경우 자칫 경영 효율성이 크게 저해될 공산이 크다"면서 "특히 기술 경쟁력과 관련된 민감한 정보 제출을 의무화하는 건 기업들의 큰 애로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가령, 반도체 기술 현황 등 서류 제출을 거부할 시 '5년 이하의 징역' 처벌 조항도 담겨 있는 만큼 재계 안팎에선 이를 반(反)재계 법안으로 부른다"면서 "비밀유지를 전제로 서류를 제출한다고 해도 꼭 노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금융사 관계자들을 만나면 금융 계좌 거래내역 등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도 "그동안 기업 규제가 많은 상황이었는데 해당 법안은 규제 이상을 떠나 기업이 가지고 있는 핵심 경쟁력 부분이 훼손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도적 환경 개선에 나서야 되는 국회가 이러한 법을 발의한 건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이번 거부권 행사로 해당 법안은 국회로 돌아가게 됐다. 국회가 다시 법률로 만들려면 재표결에 부쳐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해당 법안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야당에서 재발의할 가능성도 현재로선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물론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국회 몫이지만, 국가 경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처리해 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이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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