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냉전’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최근 국제 정세는 혼돈의 구간을 달리고 있다. 점점 격화되는 미-중 분쟁,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이 지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전에 예상하지 못한 외교정책상, 그리고 경제적 측면에서의 변수들을 양산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견해가 많다.
이러한 가운데, 현재 관측되는 국제 정세의 혼돈이 한국에 위기가 아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새로운 시각의 분석으로 주목을 받는 경제 전문가가 있다. 전 자유기업원 원장이자 경제전문 유튜브 채널 '김정호 경제TV’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호 교수다. 그는 “미-중 분쟁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버블경제 이후의 일본과 같은 암울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는 어떠한 배경의 분석이 전제돼 있을까.
격동의 글로벌 정세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 경제가 마주한 현 상황에 대해 김정호 교수의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을 들어봤다.
인터뷰= 김선태 총괄에디터, 정리= 박정훈 기자
-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의 미국 신용등급 하향조치는 정당했다고 보시는지요? 또 이번 조치로 인한 파장은 어떻게 예상하시는지?
김 교수= 사실 미국에 대한 피치의 신용등급 조정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정됐던 것이라 정보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았고 그래서 금융시장 등에 대한 충격도 그리 크지 앟았습니다.
개인적 견해로는 많은 이들이 “뭔가 불안하다”라고는 하지만, 미국 경제는 아직 건재합니다. 미국의 실업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5년 만기 미 국채의 CDS 프리미엄도 20BPS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수준이거든요, 여기에 현재 미국의 경제지표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안정적이고요. 아마도 투자자들은 미국 연준이 앞으로 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무디스가 미국 10개 지역은행 신용등급을 떨어뜨린데 이어, 대형은행 6개의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김 교수= 무디스의 신용등급 조정은 각 은행의 내부 사정까지 고려한 분석과 판단이기에, 피치의 조정과는 확실하게 그 무게감이 다른 것 같아요. 이후에 어떤 큰 변화를 예상하게 하는 '정보’가 될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영향이나 시장 변동이 있을지 몰라도 혹자가 이야기하는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혹은 은행의 연쇄부도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2008년 이후로 미국 경제도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경제 지표가 상당히 안정적이거든요. 정리하자면, 미국의 금융권에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만큼 부정적 측면의 큰 변화는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미국 경제에 대해 어떤 이들은 '노 랜딩(No Landing)’ 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보는데요. 교수님이 바라보는 미국 경제 전망은 어떤가요?
김 교수= 지난해 5월경부터 미국 연준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어요. 그 폭과 속도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웃돌 정도로 크고, 빨랐고요. 과거 이렇게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 대부분 경기침체가 왔었죠.
그런데 이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상황이 전혀 달랐단 말이죠. 팬데믹 시기에 제조업 측면의 약점은 미국 경제의 큰 약점이 됐어요.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도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전 세계 제조 기업들의 생산 인프라를 국내로 흡수시키는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고요. 그런데, 엔데믹에 들어가니까 제조 기업들이 팬데믹 시기에 생산해놓은 많은 것들이 이미 넘쳐나는 수준에 이른 거에요. 지금 시장에 재고가 넘쳐서 문제라는 반도체가 그 대표적인 사례고요.
그래서 일단 제조 기업들의 상황은 안 좋아진 반면, 서비스 기업들은 물밀 듯이 들어오는 수요를 맞이하게 됐어요. 코로나도 끝났으니 집을 벗어나서 먹고, 마시고, 놀러가는 것과 관련된 수요가 폭증한 거에요.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의 서비스업이죠. 제조업에서 수많은 실업자들이 쏟아져도 이들이 서비스업에서 새로 일자리를 얻게 되니 자연스럽게 실업률도 떨어졌고요. 이거는 저만의 개인적 생각이 아니라, WSJ나 블룸버그의 전문가 집단들도 같은 관점으로 미국 경제를 분석하는 의견을 내고 있어요. 이런 서비스업의 호황으로 미국의 경기침체는 온다고 해도 수 년이 지난 어떤 시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 교수= 확실히 2000년대 초반 중국이 보여준 급격한 경제성장은 다시 재현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이 말하는 '망한’ 모습과 같은 경제적 공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요. 하지만, 중국 경제는 확실히 여러 가지 심각한 리스크들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문제는 표면에 드러난 문제입니다. 쉽게 말하면,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것인데요. 1999년 중국의 주택민영화 이후에 집은 중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재산 증식 수단이었습니다. 이건 뭐 사기만 하면 가격이 치솟았거든요, 여기에 2017년부터 시진핑 주석은 지역 균형 개발을 강조하면서 각 지방도시에 대한 주택의 공급을 대폭 늘렸어요.
그래서 수많은 중국의 건설사들이 돈을 빌려가면서 집을 지어댔는데, 어느 날 중국정부에서 자산대비 부채비율을 규제하기 시작하면서 여기에도 제동이 걸렸고, 중국의 주택 수요자들은 선분양을 받아놓고 잔금을 못 치르게 된 상황이 벌어 진거예요. 그러다 보니 주인이 있어도 빈 집들이 속출하고,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폭락을 하게 됐어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도 전체 자산에서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아서 약 70% 정도라고 하거든요. 결국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니. 중국인들이 체감하는 경기도 악화되고 소비도 줄게 된 거죠.
그런데, 중국 경제의 진짜 위기는 부동산이 아니예요. 더 큰 문제는 부실한 국영 기업들이죠. 이것은 현재 중국에서 문제가 되는 청년실업과도 관련이 있어요. 시진핑 주석은 집권 내내 국영 기업들을 대폭 늘렸어요.
뭐 중국 경제의 기본이 공산주의니까, 크게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 기업들이 돈을 잘 벌어서 국가경제에 이바지 하고 있는가를 보니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는 거에요.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이름으로 국영기업들을 앞세워서 인도·파키스탄 등에 차관을 제공해 사회적 인프라를 건설해주는 '해외 인프라 투자’에 상당히 집중해왔는데요. 문제는 이러한 투자가 중국의 국가경제에 이익이 되는가를 정밀하게 계산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철저하게 안보적 관점에서 진행됐다는 거예요. 중국은 미국과의 전쟁이라는 시나리오를 늘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차관을 제공한 국가들의 인프라를 유사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미리 조치를 해 두는 차원인데요. 이게 수익성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런 관점이라면 그 인프라들은 전쟁이 나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미국과의 전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도 아니고요. 중국의 투자를 받는 나라들은 좋았을까요? 아니죠. 정교하게 수익성이 계산되지 않은 투자로 오히려 나라 빛만 늘어난 꼴이 됐고요.
여기에서 시진핑 주석은 '국진민퇴(國進民退)’를 앞세워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민영 대기업을 거의 '때려잡듯이’ 규제했고 심지어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에도 간섭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돈을 벌어오는 민영 기업은 못 살게 굴고, 돈 못 버는 국영 기업들은 어떻게든 살려주고. 여기에 글로벌 기업들도 서서히 중국을 떠나기 시작하고요. 이렇다 보니 중국 청년들의 취업 선택지는 확 줄어드는데 아까 이야기했지만, 중국 국영기업들의 재무적 상황은 엉망이거든요. 이런 배경들이 중국의 청년실업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 최근 미국의 거물들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하면서 뭔가 화해의 뉘앙스를 풍겼는데요. 그런데 중국에 대한 규제는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김 교수= 우선,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역사의 경험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요, 미국은 2차 대전 참전 이후에 한 가지의 큰 깨달음을 얻지요. “피크(정점)에 올라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애들(?)이 가장 위험한 애들”이라는 점을요. 미국이 볼 때는 중국이 지금 피크에 올라와 있는 거예요. 이러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수가 틀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이 그 '무슨 짓’을 못하도록 하는 거라고 봐요.
그런데, 미국이라고 해서 경제적으로 중국하고 엮인 게 없는 게 아니거든요. 무역 관련 직종에 있는 국민들도 괴로워하고, 또 일반 국민들은 혹시 모를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두려워하고요. 최근 미국 거물들의 행보는 다분히 정치적인 제스처가 아닐까 싶어요. 2024년 대선도 있고, 국민들에게 미중 갈등이 있어도 “전쟁까지는 가지 않도록 노력 중”이라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 현재의 미-중 분쟁 갈등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김 교수= 미-중 분쟁은 우리나라에게 그야말로 천재일우, 아니 어쩌면 기사회생의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스탠스에 대한 의견을 결론부터 말하면, 이 상황을 우리는 지혜롭게 이용해야 돼요.
과거 미국과 함께 세계를 지배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속되게 말해 '맛이 간’ 것은 미국의 견제에다 한국의 약진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지요.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미-중분쟁의 직전 상황을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가 과거의 일본과 같다는 점이에요. 만약 미국의 규제 없이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기술, 인력이 중국으로 계속 유입됐다면, 중국은 최소 5년 내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을 세계 시장의 상위에서 끌어 내렸을 거에요. 절묘한 타이밍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 줬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유지되게 됐고요.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최첨단 반도체에서 초격차의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뭐 이런 교과서적인 멘트는 당연한 거고요. 점차 중국을 벗어나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을 제조 경쟁력 강국입니다. 이런 강점을 더욱 잘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는 배터리 반도체 방위산업 등이 떠오르는데 한국이 굉장히 유리한 위치에 있어요. 한국 정도의 제조업 관리능력을 갖춘 나라가 드뭅니다. 특히 소련 붕괴 후 대부분 나라들이 방위비를 줄였는데 러시아 중국 한국 터키 정도가 예외입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협을 느낀 동유럽 국가들은 나토체제 편입을 원하는데 러시아나 중국 무기가 아닌 미국 무기 체계를 공급받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이외에는 별 대안이 없어요. 동유럽 방산시장은 한국에게는 황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기업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시는지?
김 교수=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많이 나아졌다고 봐요. 쉽게 말하면 '최소한 기업들을 못 살게 괴롭히지는 않는다’는 관점은 이전 정부와 다른 점이지요. 강성노조에 대한 규제도 비슷한 관점이고요. 다만, 법률적으로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뭔가를 돌려놓으려는 시도는 가능하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잘 되지도 않을 것 같고...이 정도가 유지되면 5년 임기 내의 최선이 아닐까요?
- 유튜브 채널에서 유독 일본이나 중국 부동산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렇다면 국내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전망하시는지?
김 교수= 팬데믹 시기에 자산의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어요. 대표적으로는 주식, 가상자산, 부동산 등이 있죠. 그런데 이는 실물경제의 상황과는 크게 관계가 없었던 흐름이었고,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특히 주식, 가상화폐의 가격이 빠르게 떨어졌어요. 저는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시세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같다고 봅니다.
다만, 부동산의 경우는 그 움직임이 다른 자산에 비해 반영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덜해 보이는 거고요. 지금 부동산 시장에 하락 압력이 있는 것은 맞으나 그 속도는 느리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관련 세금이 줄어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도 줄었다고 봅니다.
- '래퍼’에 도전하신 적도 있다고요?
김 교수= 경제 이야기가 딱딱하잖아요. 젊은 사람들도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젊은 친구들에게 시장경제 메시지를 어필할 수 있을까 하다가 가 내린 결론이 랩이었는데 인생의 '흑역사’로 남았네요.
처음에는 전문 래퍼들에게 컨셉을 설명하고 곡을 의뢰하는 식이었는데, 래퍼 분들이 “박사님도 한 번 같이 해보시죠”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이게 어설프게 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할 것 같아 약 1년 정도 레슨을 받기도 했어요. 그래서 음원도 나오고 했는데...저는 안 되겠더라고요. 가사를 외우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그걸 리듬에 맞춰서 입 밖으로 내는 게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안한지 좀 됐어요.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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