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는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통해 현실에 있는 대한민국을 낱낱이 고발하는 영화다. 주인공 정약전은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계급과 권위의 나라인 조선에서 계급을 부정하고 실학을 주장하면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는 벼슬에 오를 만큼 조선을 지배하던 성리학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정통했으나 귀양으로 인해 흑산도에 도착했을 때는 성리학 자체에 회의를 품는다. 그래서 흑산도에서는 또 다른 주인공인 창대를 통해 어보(魚譜)를 제작한다.
수산물에 관한 기록인 어보는 당시 고귀한 학문인 성리학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연구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성리학과는 달리 어보는 분명하고 명징하다. 이런 대비는 정약전과 창대를 통해서 시대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성리학 때문에 귀양 온 정약전은 성리학을 버리고 실학을 하려 하는데, 반대로 창대는 인간대접을 받기 위해 성리학을 하려고 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한국사회의 공시생들이 창대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자신도 “양반”처럼 당당하게 인간 대접받고 싶어서 본 업을(물고기 잡이)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그 만큼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고, 권위에 대한 복종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장면 외에도 우리 시대의 어리석은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섬에서 자라나는 소나무를 몰래 뽑는데, 정약전이 '훗날 나라의 재산이 될 소나무를 왜 죽이냐’고 하자, '이 소나무는 저절로 자라 우리가 베어 쓰지도 못하는데 감당 못 할 세금은 우리가 내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너무나 명징한 경제원리다.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도 못하는데,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아무리 나라의 재산이라도 사람들은 없애려 할 수 밖에 없다.
조선시대의 군포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의 군포는 죽은 사람에게도,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세금을 매겨 양민들을 수탈했다. 죽은 사람조차도 세금을 절대 피해갈 수 없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상속세가 바로 조선시대의 군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죽은 아버지와, 갓 태어난 아이에게 매겨진 군포를 내지 못한 양민이 소를 빼앗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는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에게 매겨진 세금 때문에 산 사람이 먹고 살 수단을 빼앗아 가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수탈이다. 예를 들어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을 보면 선대 회장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 아들이 회사의 지분을 팔아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먹고 사는데 꼭 필요한 '소’를 파는 것이다. 이 수탈은 삼성에게 악랄했듯이 평범한 개인에게도 똑같이 작용한다.
영화는 군포를 비롯해 삼정의 문란을 잘 보여준다. 전정(田政)은 토지에 매기는 세금인데, 지금 부동산세나 재산세 등이 과다해 문란해지는 모습과 같다. 군정(軍政)은 군포를 비롯해 현재의 징병제도가 문란해지는 모습과 같다. 환정(還政)은 보릿고개에 쌀을 빌려주고 돈이 생기면 갚는 제도인데, 실제로는 삼정 중에서 가장 문란했다. 이 환정은 현대에는 중앙은행을 통한 이자율 조작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환정은 쌀을 주고 모래 섞인 쌀을 돌려 받았다면, 현재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오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한 가장이 군포에 항의하며 자기 남성기를 낫으로 베어버리는 장면이다. 자식을 낳는 것이 죄가 아닌데, 죄가 되어 도저히 사람을 살 수 없게 만드니 자신은 더 이상 '남자’로 살지 않겠다고 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다. 이것은 다른 변명이 불가능하다.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할 정도로 세금이 과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체 건강한 남녀가 출산, 결혼, 심지어는 연애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분노해 아전과 싸우다 감옥에 간 창대를 보면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아직도 정부는 참 힘이 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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