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경제의 과반 정도는 정부가 점유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마찬가지일 것이다. 2015년,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로버트 힉스(Robert Higgs)는 미국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53.7%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GDP 대비 재정지출 비율로 보아도 미국 경제의 36.41%는 정부의 몫이다. 정확한 자료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한국경제도 최소 3분의 1은 정부가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통계자료가 함의하는 바는 오늘날 시장경제에서 정부로부터 자유로이 기업활동을 할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기업은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는다.
정부의 기업지원은 경제적 효용의 측면에서도 비판이 가능하지만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보다 중요시되는 것은 그것의 도덕적 성격이다. 세금은 강제로 징수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약탈적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부당하게 재화를 취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부당하게 취득한 재화를 처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한 교환은 정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과 강압에 의존해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부당하게 취득한 재화를 기업에게 여러 방식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이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모든’ 재화를 정당한 본래적 소유주인 납세자에게 환수해야 한다는 발상이 자유주의적이라고 간단히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시장경제의 과반을 정부가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한 ‘모든’ 교환 과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주의와 다름없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보다 면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세부적인 사안을 다루는 기술적 문제는 자유주의 법학의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그토록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기는 어려우며, 간단하게 몇가지 원칙과 기본적 측면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번째, 정경유착은 근본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뇌물공여자가 아니라 뇌물수수자만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경유착을 저지르고 정부기관과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준 기업가 및 경영인들이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하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 부당이익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정부로부터 받은 모든 지원이 부당이익에 해당한다면 오늘날의 경제체제의 근본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사회주의와 다름없다. 더불어 모든 기업이 자신들이 받은 모든 지원금을 토해내야 하니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혁명적이고 과격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여러가지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아마 자유주의자들이 합의가능한 기준으로 ‘정부로부터 얻은 혜택보다 받은 피해가 더 큰 기업’들은 확실히 부당이익을 취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부당이익을 취한 기업에 해당할 것이다. 분명 일부 기업은 시장에서 자생할 수 없는데도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으로 연명하고 있으며, 다른 기업들은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음에도 세금이나 규제 등의 문제로 가능한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쳐해있다. 이런 명시적인 경우는 비교적 해답을 내리기 쉬울 것이다. 문제는 이도 저도 아닌 기업들이다. 이는 고도의 법학적 지식이 필요한 기술적 문제로서 법학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세번째, 부당이익을 어떻게 환수해야 할지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무래도 정부를 매개로 하여 기업으로부터 부당이익을 강제로 몰수하고 납세자들에게 환원하는 방안은 자유주의적이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제안가능한 최선의 대안 중 하나는 납세자들의 집단소송이다.
네번째, 애당초 부당이익 환수가 자유주의적으로 정당한지 따져보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참고할만한 논의는 바로 노예배상의 문제이다. 자유주의의 본고장 미국의 경우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었다는 어두운 과거가 있기 때문에 과연 노예주인의 후손들이 노예피해자의 후손들에게 배상해야 하는지의 주제가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 종종 화제가 되곤 하였다. 지금까지 자유주의자들이 대체로 합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자유주의 권리이론의 대표자 머레이 라스바드의 견해에 따르면, 부당하게 취득된 재산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가능하다면 정당한 소유주에게 환수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예주인의 후손과 노예피해자의 후손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상황이라면, 백년이 지났건 천년이 지났건 노예주인의 후손은 노예피해자의 후손에게 배상해야만 한다.
2. 문제는 현실적으로 시간이 오래 지났거나 증거가 없는 경우 특정 피해자와 특정 가해자의 신분과 상호간 관계를 식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200년 전 흑인노예와 백인노예주의 가장 가까운 후손들이 오늘날 누구이며 어디서 살고있는지 사실상 알 수가 없다.
3. 집단 배상의 책임은 없다. 즉, 모든 백인이 모든 흑인에게 배상을 해서는 안된다. 노예제에 반대하거나 노예를 소유하지 않은 백인이 노예 조상이 없는 흑인에게 배상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4. 명백한 범죄적 기원을 파악할 수 없는 재산의 경우, 그 재산의 현재 소유자가 적법한 소유자로 '잠정적으로' 인정받는다.
5. 이런 이유로 오늘날에도 200년전의 노예문제의 배상권 청구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피해를 증명하는 것은 어렵다.
같은 원리가 아마 기업의 부당이익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현대 경제체제는 거의 모든 기업에게 가급적이면 재정관련 자료를 체계화하고 보관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이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정의된 상황에서는 어떤 기업이 어떻게 부당이익을 취했는지 보다 명백하게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기업의 경영인이나 주주가 정보 공개 청구를 거절해서 확인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보다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다섯번째, 만약 기업이 과거에는 많은 부당이익을 취했지만 현재로서는 부당이익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납세자들에게 배상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과거 시점의 주주와 현재 시점의 주주 중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진정한 자유사회의 도래를 위해서라면 정경유착의 책임자 처벌과 부당이익 환수 문제는 결코 간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자유사회의 근간 중 하나는 정당하게 형성된 재산권의 자유로운 처분이기 때문에 자유사회를 올바르게 세우려면 권리적 측면의 정상화는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정부로부터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개인, 집단, 기업이 너무도 많다. 모든 자유주의자는 아마 정부의 사회주의적 재분배 정책으로 인해 소수의 여성단체나 소위 사회적 기업들이 납세자의 혈세를 소비하고 있음을 동의할 것이다. 이들의 부당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같은 원리가 다른 부당이익 문제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분명 기술적으로 심한 난점이 있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우리는 사회주의 혹은 국가주의적 과정을 채택하지 않고 자유주의적인(=평화적인) 과정을 통해 어떻게 정당한 재산권의 성립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지 토론하고 비판적으로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유사회의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는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최대의 산출과 생산을 보장해준다는 점에 있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 바로 자유사회의 도덕적 우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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