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이라는 틀을 넘어선 새로운 가능성

조범수 / 2020-05-13 / 조회: 11,691

사람들이 한국의 교육 문제에 대해 내놓는 여러 가지 해결책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떻게 되었든 문제를 '공교육’의 틀 속에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공교육’이라는 하나의 제도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그 틀 밖의 가능성 자체를 인지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바로 자유시장이다. 정부가 교육의 일거일동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반자유주의적 관치교육제도는 궁극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교육 문제를 말하고 있는 데 왜 뜬금없이 자유시장 타령이냐고 물을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건 공교육 체제 하에서 자란 우리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공교육에서는 반()공교육 담론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교육의 대안을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불편하고도 낯선 일이 되어버렸다.


<교육의 자유를 허하라>는 두 편으로 나누어 연재된다. 에서는 공교육과 자유시장 교육이 각각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공교육 필수불가결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어지는 편에서는 자유시장 교육론에 흔히 제기되는 비판에 답해볼 것이다.


관치교육과 자유시장


명료한 논의를 위해 '공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공교육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제도화된 교육 일반을 의미한다. “주도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축구경기로 비유하자면 단순히 심판의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다. 몇 개의 팀이 무슨 대형으로 어떻게 경기를 할지, 누가 공격수를 하고 수비수를 할지를 하나하나 직접 정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정부의 승인을 받아 학교를 세우면 그 즉시 예산이나 인력, 교육과정을 비롯해서 학교 운영에 관한 모든 것을 중앙부처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 대학 입시도 역시 교육부의 진두지휘 아래 획일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 년에 한번 9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수학능력시험의 성적으로 평가하는 정시이든 학생부종합전형 등의 수시이든, 모두 중앙의 계획 아래 놓인다는 점에서 공교육 제도의 일종이다. 이는 사실 공교육 제도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들도 자체적인 평가시스템을 자유롭게 도입할 수 없고 예산부터 인력까지 교육부의 지휘 아래 있다.


그렇다면 그의 대안으로 제기되는 자유시장에서의 교육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단히 말해 모든 교육기관이 자유롭게 설립되고 영리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엔 중요한 조건이 하나 붙는다. 바로 국가가 공인하고 강제하는 교육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 즉 '관치교육’이 폐지된 환경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상태에서 모든 민간 교육 기관은 관치 교육 제도에 오와 열을 맞추어 사업을 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한국의 사교육 시장이 보여주는 양태와 다르지 않다.


교육의 자유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커리큘럼을 제작할 수 있고, 전문적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어 그에 맞는 교육 자원을 생산하는 타 기업으로부터 평준화된 교육 자원을 구매할 수도 있다. 교원이나 각종 인력도 그를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관리하는 기업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다. 평가 방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평가제도를 구상하는 데 특화된 다양한 기업이나 비영리단체가 경쟁하여 각 대학에 맞는 학생들을 선별하기 위한 적절한 평가 제도가 창출될 것이다. 요컨대 교육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많은 기업들이 분업하여 교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출 것이다.


옳은 구호, 잘못된 주장


다수의 보수 논객은 교육의 질 저하를 지적하고 교육을 '공공재’로 보아선 안 되고, 학생들의 선택권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하지만 한국의 관치교육 시스템 자체는 비판하지 않는다. 구호만 맞고 주장은 틀린 셈이다. 조국 전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문제 불거졌을 때도 보수 진영에서는 정시 확대의 요구만 빗발쳤다.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공교육의 모순을 최소화하는 방책을 내놓는 것이라손 치더라도, 그들이 과연 공교육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당장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많은 보수 논객은 편향된 역사교육을 무려 “시장실패”라고 규정하며 국정교과서를 옹호하는 등, 도리어 공교육을 더욱 강하게 정당화하는 입장만 내비쳤다. 하지만 애초에 '선택할 자유’와 같은 자유주의적 구호로 교육문제를 비판할 요량이라면, 문제의 본질인 관치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해 보인다.


공교육 필수불가결론의 허구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왜인지는 몰라도 본능적으로는 일단 즉각적인 거부감과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이기에, 교육에 소위 “자본주의 논리”를 도입하자는 이야기는 굉장히 무모하고 비논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자유시장의 작동 원리와 그 기능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다.


(1) 교육이 국가 발전에 핵심적이어서?


공교육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핵심 논거는 바로 교육이 그만큼 사회 발전에 핵심적이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그를 관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가장 필수적이라는 세 가지 요소, 의식주 중 하나인 음식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삼시세끼를 제대로 섭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회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정부가 음식 산업을 주도하지는 않는다. 독성 물질을 관리하고 지자체 차원에서 위생 점검을 하는 등의 중재 역할만을 수행할 뿐, 국민이 무엇을 얼마만큼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먹어야 함께 먹어야 하는지까지 관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우리의 먹거리를 효과적으로 제공해준 것은 정부의 중앙계획이 아니라 개개인의 이익 추구가 상호 조화를 이루는 자유시장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먹거리의 풍요 속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선 굳이 덧붙여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교육서비스라고 해서 뭔가 다른 대단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 교육이 공공재여서?


또 다른 논거는 바로 교육이 공공재이기 때문에 국가가 이를 공급해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서 '공공재’는 순전히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용어다. 주류경제학에서 논의되는 '공공재’ 개념의 학술적 의미는 고려하지 않고 그 기표(記標)만을 가져와 “모두가 교육을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에 교육은 곧 공공재”라며 논리적으로 허술한 주장을 펴는 것이다. 이들이 '공공재’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주류경제학적으로 '공공재 공급에서의 시장실패’가 정부의 시장개입을 정당화하는 전통적인 논리이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에서 공공재는, 어떠한 경제주체에 의해 일단 생산되면 다른 사람들도 동시에 그에 대한 소비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다.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갖는데, 이러한 성질 때문에 공공재는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공급될 수 없다. 이러한 논리는 물론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의 <경제학에서의 등대>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의 연구에서 그 한계가 지적되었다. 하지만 이를 따르더라도, 비경합성과 비배제성 중 어느 것도 갖추지 않은 교육서비스는 애초에 경제학적으로 공공재가 아니며, 따라서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할 하등의 경제학적 이유도 없다.


(3) 모호한 언어로 치장되는 근거들


공교육의 존립 정당성을 설파하는 여타 근거들은 하나같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언어로 치장된다. “개인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인 공민을 양성”하기 위해서 라느니, 국민이 “공동선을 지향하는 민주적인 시민으로 거듭나도록 도와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그 비근한 예다. 그 '개인적인 인간’이란 대체 '사회적인 공민’과 무엇이 그렇게 다른 것인지, 또 '공동선’은 무엇이고 '민주적인 시민’이란 어떤 인간형을 말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만족스럽게 설명해내지 못한다. 이 모호함은 그저 국가가 공인하는 편향적 가치관을 주입하게 만드는 구실이 될 뿐이다. 공교육이 구한말의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나 민족주의적 쟁점을 다루는 방식에서 이 지점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 '사회적인 공민’을 양성하는 것이 순수하게 사람들을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 공교육의 존립 근거는 여전히 해명될 수 없다. 그러한 목적을 관치교육의 존재 이유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덕성이나 시민의식이 언제나 국가에 지도 아래서만 배양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된 삶의 지혜나 도덕심을 체득하도록 만드는 건 관치교육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고 사회로 나가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는 우리의 소중한 경험이다. 또한 시장이 이러한 공적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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