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아래 기사 및 칼럼 내용을 요약 번역한 내용임*
Ryan McMaken,
Capitalism Isn’t the Reason We’re unhappy
26 July, 2019
자본주의 덕분에 전 세계에서 생활 수준의 향상과 빈곤의 감소가 명백하게 보이자 자본주의 때문에 사람들이 더 가난해진다는 비판은 사라지고 있지만, 이제는 방향을 바꾸어 자본주의가 여타 사회, 생태, 심리적 병폐의 주 원인이라는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자본주의 이념은 인간을 고립시켜 영혼 없는 소비자로 만들고 결국 우울하게, 소비를 끝없이 반복하게 만든다. Ankita Singh는 이렇게 끈질긴 불행이 “현대 도시 기업 문화에서 느끼게 되는 소외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자본주의가 야기한 “공허감”을 “보상받고자” “소비문화가 제공하는 물질에 탐닉”한다. 자본가들은 우리가 어떤 상품을 사야 할 지 말해줄 뿐이다. “광고는 너무나 강력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수요를 창출하고 필요치도 않는 일상용품을 만들어 내니” 자본가들만 좋은 일이다.
이런 생각은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심리학자인 Eric Fromm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 활동, 성공, 물질적 이득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자신의 행복이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경제 체제의 성장에 기여하고 자본을 축척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으로서 사람의 운명이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자본주의 경제는 무한한 소비에 기대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광고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되질 않는다.
우선, 자본주의 제도가 소비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거나 항상 더 많은 소비재를 사기 위해 우리의 미래를 저당 잡힐 수 밖에 없다는 말들은 사실이 아니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소비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소비를 나중으로 미루는 저축이다. 저축과 투자가 임금을 늘리고 자본을 축척하며 미래의 소비를 증가시키는 핵심요소다. 어디서나 항상 소비를 최대화하려고 하는 것은 정부와 중앙 은행이지 시장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열심히 퍼트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집할지 모른다. “자본주의가 무조건 소비를 요구하지는 않을 지 모르지만, 장난감 판매자나 자동차 제조업자들은 우리가 지갑을 열도록 광고를 이용하죠. 쇼핑몰에 한 번 더 가면 우리 영혼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부추기는 광고 말입니다.”
많은 자본가들이 우리가 소비재를 사길 원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은 소비자 개개인에게 미칠 영향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돈을 쓰길 바라며 광고를 한다. 그리고 광고는 더 많은 소비를 하도록 뭔가 부족한 느낌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과거의 광고는 더 멋지고 나은 것을 원한다면 이 상품을 쓰라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오늘날은 더 미묘하고 암시적이며 유머에 자주 호소한다. 그렇지만, 역시 자기 향상의 일환으로 소비를 내세우는 전략을 사용한다. 더 멋진 외모, 더 고급스러운 차, 더 만족스러운 우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바로 그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한다면 누릴 수도 있을 삶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제로 광고를 있는 그대로 믿을까? 그랬다면 양초 제조업자들이 전구 따위는 필요 없다는 광고만 했어도 전구는 그대로 사라졌다. 2013년 광고 신뢰도 연구에 따르면, “광고가 어느 정도 정확하다”에 동의한 사람들은 20% 정도였다. 또한, 목표 달성에 실패한 광고들이 무수히 많다. 2015년 텍사스 대학 연구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주류 광고는 400% 늘어났지만, 일인당 주류 소비량은 감소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주의”가 우리를 비참한 소비자로 전락시켜 극악무도한 계획을 성공시키고 우리의 외로움을 극대화하여 정신 없이 돈을 쓰게 만들었는지 알기란 어렵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이야기 이면의 추론은 설득력이 전혀 없는데도, 솔깃한 이들이 많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과거 사람들이 더 행복했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더 수월한 삶을 살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할 통계 자료는 분명 없다. 때로 대중 매체들이 말하는 행복 측정은 대개 완전히 주관적으로 자가 보고된 연구 자료에 기반하며, 현재를 과거와 비교할 만한 수단을 전혀 제공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행복”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사실상 전무했다.
과거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삶의 질 지표, 예를 들어 근로시간, 거주 공간, 기대 수명, 자살률과 같은 것들을 살펴 보면 우리 조부모님, 혹은 증조부님 세대가 그리 특별히 좋아 보이지 않는다. 대량 마케팅과 대량 소비의 현대 기법이 나오기 이전 19세기는 매일마다 근로와 노역 없이 속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좋았던 옛 시절”의 가난은 결코 개인의 실현과 만족의 원천이 아니었다.
Murray Rothbard는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이전 상상 속의 황금시대를 말한다. “장인이 행복하고 농부가 행복한” 시대에 그들은 “소속감”을 갖고 있었고 “자신의 삶의 위치”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 누구도 새로운 차나 새로운 침실 가구 세트 구매를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광고나 자본주의를 전혀 접할 수 없는 빈곤 속에 사는 것이 진정 행복의 열쇠였을까? Rothbard는 회의적이다. “가난이 고착화된 공동체 안의 행복한 삶으로 회귀하려고 현대 사회를 포기한 사람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이런 저런 유토피아 공동체를 만들었던 몇 안 되는 지식인들도 재빨리 그러한 시도를 포기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전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은 바로 현대의 “소외된” 매스컴을 이용해 현대 사회를 깎아 내리는 비판론자들이다.”
인간이 불행, 공허, 부족을 느끼며 고통 받지 않았던 시대나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러나 그런 곳이 언제 어딘가에 존재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반면, 직접 조사해보고자 현대의 편의시설을 기꺼이 포기하고자 할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번역: 전현주
출처: https://mises.org/wire/capitalism-isnt-reason-were-un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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