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 Home

눈 쌓인 골목길이 알려주는 시장의 비밀

글쓴이
김성령 2025-12-12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린 골목길은 미끄럽고 위험해진다. 모두가 불편을 느끼지만, 막상 삽을 들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치우지 않아도 누군가 하겠지.” 이 단순한 행동 뒤에는 시장경제가 가진 구조적 딜레마가 숨어 있다. 이러한 현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공재, 무임승차자, 그리고 용의자의 딜레마라는 경제학적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눈이 쌓인 골목길을 치우는 일은 개인의 행동이지만, 그 결과로 생겨나는 깨끗한 도로는 모두가 함께 누리는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공공재는 첫째, '배제 불가능성'을 가진다. 누군가 제설 작업을 마친 순간, 그 도로는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눈을 치우지 않은 사람을 따로 걸러낼 방법은 없다. 둘째, '비경합성'의 특징도 있다. 한 사람이 깨끗한 길을 걷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이용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는다. 즉, 한 번 제공되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소비할 수 있다. 이처럼 배제 불가능성과 비경합성을 동시에 지닌 재화를 우리는 '공공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런 공공재의 특성은 때로 문제를 낳기도 한다. 바로 '무임승차자'의 문제다. 사람들은 공공재의 혜택을 누리고 싶어 하면서도, 그 생산에 필요한 비용이나 노력을 부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눈 치우기를 예로 들면, 누구나 미끄럽지 않은 길을 원하지만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이 작동한다. 이때 각 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사회 전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개인의 손익만을 따진다.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의 공공재 공급이 이뤄지지 않게 된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결국 시장의 자율적인 힘만으로는 공공재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선택이 집단 전체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용의자의 딜레마'로 설명할 수 있다. 눈이 내린 골목길 앞에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각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직접 나서서 눈을 치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모두 나서서 눈을 치운다면, 둘 다 깨끗한 길을 얻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내가 안 해도 상대방이 치우면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상대방이 협조하리라는 기대 속에서 자신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이 등장한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경우, 길은 그대로 얼어붙고 모두가 손해를 본다. 이처럼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집단적으로는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 것이 바로 용의자의 딜레마의 핵심이다.


현실의 시장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발생한다. 공공장소의 청결, 하천 정화, 방범시설, 환경보호 등은 모두 공공재적 성격을 띤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발적으로 비용을 내거나 노력을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사회 전체적으로 필요한 공공재의 수준은 경제학자 새뮤얼슨이 말한 '효율적 공급 수준', 즉 사회 구성원 전체가 느끼는 이익의 합이 그 공공재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구조적 한계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제설차를 운용하거나, 주민세 일부를 제설 기금으로 편성해 제설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이 있다. 또 일정 구역을 정해 주민들이 교대로 눈을 치우는 공동 규칙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렇게 제도적 장치나 공동 규율이 갖춰지면, ‘누가 먼저 나설까’ 하고 눈치 보는 상황을 줄이고, 효율적인 제설이 가능해진다.


이 원리를 사회 전체로 확장하면, 바로 '정부의 개입'이 된다. 정부는 세금이라는 강제적 수단을 통해 비용을 분담시키고, 모두가 이용하는 도로, 공원, 치안 서비스와 같은 공공재를 공급한다. 이러한 제도적 개입은 시장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임승차 문제를 보완한다. 즉, 정부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용의자의 딜레마’를 제도적으로 극복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정부가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결국 핵심은 시민의식과 사회적 신뢰다. 눈을 치우는 작은 행동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공공재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경제적 참여’이기도 하다. 모두가 조금씩만 책임을 나눈다면, 사회 전체의 효율은 더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개인의 이익도 커진다. 시장경제는 각자의 선택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선택이 모여 공동체를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균형을 찾는다. 하얀 눈 덮인 골목길은 바로 그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던져지는 경제학의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