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길라잡이] 쇄국정책

최승노 / 2019-04-29 / 조회: 5,802

"조선은 하멜 등이 표류해와도 세계를 알려하지 않았죠

개방시대에 쇄국정책에 매달리다 결국 식민지된 거죠"


『하멜 표류기』는 헨드릭 하멜이라는 네덜란드 한 선원이 제주도에 난파해 13년간 조선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원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대만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고 일본 나가사키는 일본이 쇄국정책을 쓸 때에도 네덜란드와의 교역으로 유명했던 도시다.


하멜이 네덜란드 선단에서 맡은 역할은 서기로, 항해 중 겪은 모든 일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글을 알고 기록을 남기는 데 익숙했기에 다른 선원과 달리 귀국한 뒤 표류기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조선에 대해 글을 쓴 목적은 서양 사회에 조선을 알리는 차원이 아니라 조선에 억류된 기간 못 받은 임금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한 일종의 자료 성격에 가까웠다고 한다. 뼛속까지 장사꾼 기질을 타고났다는 네덜란드인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제주도는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하멜 일행이 표류해온 용머리 해안 일대에 큰 범선 형태의 건물을 지어 기념하고 있다.


세계와 격리돼 지낸 조선


하멜의 기록에 묘사된 당시 조선의 상황은 지금 우리가 상상한 이상으로 세계와 격리돼 지내는 나라였다. 큰 키의 벽안의 남자들이 대거 상륙했으니 놀랄 법한데도 하멜 일행이 어디에서 왔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중국의 남쪽 남만에서 왔다고 치부했을 뿐이었다.


남만은 특정 지역을 의미하기보단 중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의 이민족을 각각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 부르는 의례적 표현이었으니 하멜 일행이 그저 중국인이 아니라는 의미 이상은 없었다. 하멜 일행은 그렇게 남만 출신이 돼 조선에서 모두 남씨 성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하멜 표류기』에서 하멜은 자신의 조선식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조선왕조실록』 효종 편에 남북산이라는 그의 동료 이름이 나와 있다. 남북산은 하멜에 앞서 조선을 탈출하려다가 죽은 인물이다.


당시 조선은 물 샐 틈 없는 쇄국정책을 써 외국인을 나라에 들이지 않았지만 한 번 들어온 외국인을 다시 외국으로 내보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십수년을 조선에서 보내다가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한 뒤 일본 당국의 조사로 이들이 네덜란드인인 게 밝혀졌고 그 사실이 다시 조선에 알려졌지만 조선의 반응은 무덤덤했다고 한다.


『하멜 표류기』가 출간된 후 유럽에서 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이 유럽에서 알려진 데다 당시 일본이 조선과의 중계무역에서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상인들의 나라 네덜란드가 이 발견에 가장 적극적이어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조선과의 직접 교역을 위해 1000t급 선박인 코레아호를 건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의 무역을 독점하기를 원했던 일본 에도막부의 반대로 코레아호는 조선으로 항해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사실 조선이 적극적이었다면 일본의 반대는 별 문제가 안 됐을 텐데 당시 조선 역시 외국과의 교역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쇄국정책은 실은 흥선대원군이 아닌 조선왕조 내내 유지돼온 시책이었던 것이다. 일례로 하멜의 표류 사건 이후 수십 년 뒤에 살았던 실학자 박제가는 “조선 400년간 딴 나라의 배는 한 척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탄하며 바닷길을 통한 통상을 주장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항해시대의 조선


당시 조선에 표류해 온 네덜란드인은 놀랍게도 하멜 일행만이 아니었다. 하멜 일행이 도착하기 20여 년 전에도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라는 네덜란드인 한 무리가 표류해 왔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조선에 정착한 최초의 유럽인이다. 먼저 도착한 네덜란드인이 있음에도 조선 정부가 하멜 일행의 국적을 알지 못했던 건 애초 박연의 국적이 어디인지 더 조사하지 않았던 탓이 크다. 박연도 『조선왕조실록』에 그저 ‘남만인 박연’으로 기록돼 있다.


이처럼 조선인은 이들이 왜 망망대해를 떠돌다 조선에까지 표류해 왔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유럽의 한 작은 나라의 사람들이 모험심을 갖고 전 세계를 탐험했던 시기, 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는 심지어 그들에게로 난파돼 온 사람들에게서조차 아무런 정보를 얻지 않았던 것이다. 대항해 시대 네덜란드는 스페인, 영국, 프랑스와 어깨를 겨누는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조선은 훗날 초라한 식민지로 전락했다.


■기억해주세요


유럽의 한 작은 나라의 사람들이 모험심을 갖고 전 세계를 탐험했던 시기, 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는 심지어 그들에게로 난파돼 온 사람들에게서조차 아무런 정보를 얻지 않았던 것이다. 대항해 시대 네덜란드는 스페인, 영국, 프랑스와 어깨를 겨누는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조선은 훗날 초라한 식민지로 전락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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