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가는 자 흥하리라"
위험과 기회가 함께하는 개방과 통상이 중요해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 칸은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가는 자 흥하리 라”라는 멋진 유언을 남겼다. 성을 쌓지 말라는 게 정확히 칭기즈 칸의 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 이 있다. 당시 몽골은 문자가 없었기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 이게 정확 히 칸의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게 칸의 말이라고 두고두고 회자되는 데는 다 이유 가 있을 것이다.
“성을 쌓지 말라”
원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칭기즈 칸의 이 유언을 충실히 따랐고 큰 성공을 이루었다. 다만 성을 쌓고 지키며 농사를 지어 살아가는 한족 문화에 젖지 않으려는 일련의 조치가 도를 지나쳐 화를 부르기도 했다. 원나라는 몽골인들과 한족을 구분하고자 몽골인, 색목인, 화북인, 남송인 순으로 계급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저항한 남송 사람들을 천시했다.
고급 관료는 몽골인 아니면 색목인뿐이었고, 화북인이나 남송인은 재주가 아주 뛰어나면 일부 특채되었을 뿐이었다. 이런 차별적인 통치가 결국 반발을 불렀고 제국의 수명이 백 년을 넘기지 못했다.
칭기즈 칸의 유언을 충실히 지켰던 후예들도 실은 칸이 남긴 정신의 껍데기만 따랐을 뿐이다. 길을 만드는 건 밖으로 열린 세계로 나아가고자 함인데 원나라의 황제들은 길을 추구하면서도 자신들과 한족들을 차별하는 닫힌 세계관 속에 살았다.
길을 닦았던 로마
로마제국은 새로 정복하는 곳에 도로를 먼저 만들었다. 이게 그 유명한 로마의 가도다. 로마인들은 “전쟁이란 병참으로 이기는 것”이라고 자신했을 만큼 수송과 보급을 중시했다. 그렇기에 도로 건설은 정복지의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이 만든 도로는 고대부터 유명했고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져 그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멀쩡히 사용되고 있다. 반면 성을 쌓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카이사르는 “로마는 침략받을 일이 없으니 성벽이 필요없다”며 허물어 버렸을 정도다. 지금의 로마 성벽은 2세기 말 로마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로마의 방비를 위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만든 것이다.
조선에서는 어디를 가도 쓸 만한 도로라는 게 없었다. 그 이유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놀라운데, 전쟁이 나면 도로가 적군의 침투 경로가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도로가 엉망이니 물자를 수송하는 데 필수인 수레를 사용할 수 없었고 당연히 상업도 발전하지 못했다. 개인이 물건을 직접 나르는 보부상 체제가 조선에서 운용되던 운송 체제였다. 물자 수송의 어려움을 이유로 도로 건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조선시대에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도로는 곧 물류
“타는 수레와 싣는 수레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수레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운반이 어려워 바닷가 사람들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새우와 정어리를 거름으로 밭에 내지만, 서울에선 한 움큼에 한 푼이나 주고 사야 되며, 영남지방의 아이들은 새우젓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나라가 가난한 건 국내에 수레가 다니지 못한 까닭이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은 수레를 만드는 기술이나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지 않고 한갓 글이나 읽고 있을 뿐이다.”
성이 안전하지만 닫힌 세계라면 길은 위험하지만 열린 세계다. 길은 인간에게 위험과 기회라는 모순되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공한다. 길은 수송과 보급을 원활하게 해 상업을 진흥하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이 걱정했던 대로 전시에는 적군의 침입 경로가 되기도 한다.
세계로 나가 무한경쟁을 하는 건 힘들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길을 대했던 자세가 달랐던 몽골과 로마, 그리고 조선에 각각 어떤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열린 사회로의 개방화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기억해주세요
칭기즈 칸은 성을 쌓지 말고 개척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닫힌 세계에 머물지 말고 열린 세계로 나가야 나라가 흥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정복한 땅으로 길을 먼저 냈던 로마도 그랬다. 자유무역은 일종의 열린 길을 가는 일이다. 제대로 된 길이 없었던 조선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은 세계로 열린 길에 오른 탓에 이만큼 살게 되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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