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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바로보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글쓴이
자유주의 입문 독서토론모임 2026-02-13

★ 자공비 독서모임 후기 / 미미


모임장소: 온라인 보이스룸
참석자: 미미 dpg 티베리우스 본투런 에스 Mori 선형 자유


<유대인 바로보기> (류모세, 두란노)와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를 읽으며, '유대인’이라는 존재를 민족적 범주를 넘어 역사적 조건이자 사유의 지층으로 마주하였다.



유대인은 우리의 생활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타자의 서술이나 매체를 통해 그들을 인지하게 된다.

그 지식은 종종 단편적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관념화되기 쉽다.

그렇기에 유대인을 '정보’로 아는 것과 그들의 시간과 조건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는 일 사이에는 간극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소 우리 '자공비’에서 다양한 책들이 거론되는데, 우리가 읽고 토론하는 사상들과 정치·경제 논의의 교차로엔 유대인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근대의 혁명과 자본, 종교와 세속, 비극과 재건의 역사 속에 유대인은 하나의 민족을 넘어

인류사의 응축과 확장으로 존재해 왔다.

유대인에 대해, 그리고 그들로부터 파생한 길고 넓은 현상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모리님의 소개로 이 책들과 함께하게 되어 감사하다.


최근 '자공비’의 몇 분이 <자유리더 아카데미 3기>를 수강하며 '제5공화국'에 대한 담론이 뜨겁다.

나는 그곳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 열기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전두광교'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내 마음의 존중에 애정을 담아 전하고 싶다.

이미 확고하다고 여기는 역사적 판단을 다시 끌어와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그것은 누군가를 미화하거나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피상이 아닌 진상을 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에 한 발 더 다가가 보려는 시각에 우아함을 느끼며, 그 시도들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베를린과 몇몇 도시를 순회하며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더듬어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했다. 숙연함조차 정해진 반응처럼 느껴졌다. 다만 나의 기억에 오래 담아두기 위해 노력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와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같은 영화를 보는 이유도 비슷하다. 보지 않고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마 그 고통에 대해 '이해’와 '공감’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겠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 의식이 있는 인간이 skeleton처럼 켜켜이 쌓여 죽어가는 비극, 사랑하는 사람이...동일한 고통과 죽음을 겪고 있는 비극을… 상상으로도 가늠해 볼 수 있을까?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를 인간 본질의 깊은 단계로 데려간다.

프랭클은 극단적인 조건 속에서도 인간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자유’에 대해 말한다.


모든 것이 박탈되고 물리력이 인간의 의지와 선택을 지배할 때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의미”였다.


모든 것이 박탈된 자리에서도 인간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
곧 그 "가치"가 나를 지킨다는 것

.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고 그 설명이 반가웠다. 그것이 나의 오랜 사고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의미"라고 나 역시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존엄 dignity"은 평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나는 나의 존엄을 지키려 노력하고, 그것이 손상된다고 느낄 때 분노한다.


"존엄"은, "존엄"이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어떻게 지켜지는가?

"존엄"이 없는 상황에서도 인간이 그 "의미"를 찾아낸다면, 인간은 "존엄"을 소유할 수 있다.

벌거벗겨져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가 거룩한 이유는 그 죽음이 지닌 "의미" 때문이듯이.


어쩌면 유대인이라는 존재를 사유하고, 5공화국이라는 역사적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고,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찾아가며 무거운 영화를 보는 이유는 모두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를 묻는 과정이다.

판단 이전에 이해를 시도하고, 단순화 대신 복합성을 견디며, 망각 대신 기억을 택하려는 태도.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가는 과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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