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시대에 ‘오프라인 족쇄’ 강화…유통 생태계 붕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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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자유기업원 2025-12-19 , EBN 산업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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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검증 없이 규제만 연장…일몰제 취지 무색
SSM 규제로 소상공인 부담…온라인만 반사이익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영업 규제가 4년 더 연장되면서 국내 오프라인 유통 생태계의 붕괴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국회가 일몰제의 본래 취지인 ‘합리적인 재검증’ 없이 사실상 규제를 유지하면서 변화하는 유통 산업 구조를 법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달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영업 규제 일몰을 4년 더 연장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출점 제한 등 기존 규제 틀 유지한 채 유효기간만 연장한 것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절차적 정당성’의 결여다. 일몰제는 본래 규제의 타당성을 재검토하라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상임위부터 본회의까지 찬반 토론이나 실질적인 공론화 과정 없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규제 완화를 추진하던 기존 기조를 뒤집으면서도 이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정책의 근거가 된 연구용역 데이터 역시 대표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산업부 용역 결과는 전국 487개 대형마트 중 단 8곳(1.6%), 1806개 SSM 중 9곳(0.5%)의 표본에 의존했다. 극히 일부 점포의 단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통 산업 전체의 중장기 효과를 재단한 셈이다. 사실상 실증적 분석이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규제 연장’이라는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가까웠다는 지적이다.
또 유통산업발전법 유지의 근거로 제시돼 온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을 보호한다’는 전제도 시장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수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동일한 소비자를 두고 직접 경쟁하는 관계라기보단 소비 목적과 구매 방식이 뚜렷하게 구분된 별개의 시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을 보면 대형마트는 주말이나 특정 시점에 이뤄지는 대량·계획 구매 수요를 흡수하는 채널인 반면 전통시장과 중소 슈퍼마켓은 일상적인 식료품을 중심으로 한 소량·근거리 구매를 담당한다. 다시 말해 대형마트의 영업을 제한한다고 해서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전통시장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의미다.
대형마트를 법으로 규제한 결과 대형마트와 SSM의 매출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 3사의 점포 수는 2017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전환됐다. 10년간 매출도 하락했다. 전통시장도 마찬가지다. 전통시장 수는 2013년 이후 되레 감소했다.
특히 SSM을 동일 선상에서 규제하는 현행 구조가 소상공인에게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국 SSM의 절반가량은 가맹점 형태로 운영되는 소상공인 사업장이다. 기존 동네 슈퍼를 운영하던 자영업자가 브랜드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러나 간판이 대기업 계열이란 이유로 대형마트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은 “정부 연구용역과 다수 실증 연구는 대형마트·SSM 이용이 제한될 경우 소비가 전통시장으로 이동하지 않고 온라인 쇼핑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면서 “결과적으로 대형마트 규제는 전통시장 보호에도 실패하고 오프라인 유통의 회복력을 약화시키는 반면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만 강화하는 간접적 정책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고 말했다.
고 정책실장은 “전통시장과 중소 유통업체 정책은 규제가 아닌 직접 지원과 경쟁력 강화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면서 “이제는 규제가 아니라 규제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